[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벌써부터 조짐이 보인다. 2024년 요양급여 비용 계약(이하 수가협상)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란 신호가 여기 저기에서 포착되고 있다.
현재 수가협상을 주도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이사장은 공석이다.
그리고 재정운영위원회가 늦어도 한참 늦게 구성이 되고 있다. 재정위는 수가 협상에 투입할 건강보험 재정 규모를 결정한다. 재정위는 일반적으로 3월 말에 구성돼 4월에 첫 회의를 열었으나, 전반적인 구성 일정 자체가 미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가협상 상견례도 통상 5월 초에 이뤄지던 것이 한 주나 늦게 잡혔다.
"올해는 제발 현실적인 수가 반영이 이뤄지길 바란다."
11일 마포 가든호텔에서 개최된 '2024년도 수가협상 상견례'에는 매년 똑같은 호소가 이어졌다.
2년 연속 건강보험 재정이 흑자인 상황에서 가입자는 보험료 부담을 우려해 최소한의 수가 인상을 요구하는 반면, 공급자는 경영상 어려움에 대한 보상 차원의 수가 인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견된다.
지난해에도 건보 재정이 흑자일 때 수가협상이 진행됐는데, 공급자 단체와 가입자 단체 간 합의점을 찾지 못해 진통이 있었다.
현재룡 기획상임이사(이사장 직무대리)는 올해 그간 제기된 제도 개선 요구에 대해, 수가 조정률 설정의 객관적 준거가 될 수 있는 모형과 협상 구조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 밝혔다.
건보공단은 이전부터 '제도발전협의체(가입자·공급자 등)' 의견 수렴을 거쳐 합의된 모형을 수가협상에 적용할 것이라 약속해 왔다.
실제로 공단이 제시하는 SGR 모형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수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작년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 SGR 개선 모형 2.GDP 증가율 모형 3. MEI 증가율 모형 4. GDP 인상률과 MEI 증가율 연계 모형을 제시한 바 있다.
현 이사는 "수가 조정 모형을 다양화할 것이다. 보건 의료 현황과 경제 상황이 반영되고 객관적으로 수가 밴드가 설정될 수 있도록 현행 SGR 모형과 함께 GDP 모형 등 4가지 개선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산출한 결과값은 수가 밴드를 결정하는 재정소위원회에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공단은 연례행사처럼 진행되는 밤샘 협상을 탈피하기 위해, 마지막 날 5월 31일 열리는 재정소위원회 개최 시간을 기존 저녁 7시에서 오후 2시로 앞당기기로 했다.
늦어지고 있는 제12기 재정운영위원회 구성은 오늘 혹은 내일 중 마무리가 될 전망이다. 공단은 빠른 시일 내에 공급자-가입자-공단 간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현 이사는 "건보 재정이 '21과 '22년 모두 흑자다. 가입자는 보험료를 더 낮추고 공급자는 수가 인상을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금년도 수가협상은 더 어려울 것이라 짐작한다. 전 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골든타임 내 진료받을 수 있는 필수의료체계 구축, 신종 감염병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의료 인프라 유지, 어려운 경제 여건 하에서 수가 인상이 보험료 부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방침이다.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아 윈-윈하는 수가협상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 윤동섭 회장은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노력한 병원계의 노고를 수가에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윤 회장은 "일상 의료체계로의 전환과 병원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병원은 의료 수입만으로는 운영이 어렵다. 이 가운데 지난해부터 물가 급등과 경기 침체라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필수의료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고심하고 있고, 병원계에 많은 협조와 정책 참여를 부탁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대응에 이미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노력을 기울인 병원계는 다시 한 번 운영상 어려움을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건강 보험 재정이 계속된 흑자로 안정된 누적 재정 상황(약 24조 원)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적극적인 재정 운영을 통해 안전한 진료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임을 강조했다.
윤 회장은 "현 수가계약제도는 제도적으로 정보의 접근성 등에서 공단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므로 협상 당사자인 의료공급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공단이 협상 당사자로서 실질적인 협상력을 발휘하고, 가입자와 공급자 사이에서 양측의 입장과 균형을 조율하는 가교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한의사협회 김봉천 대외협력 부회장은 비장한 각오로 상견례에 참석했다고 운을 뗐다. 본래 이필수 회장이 참석해야 했지만, 그는 최근 단식 투쟁으로 인해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김 부회장은 "2024년 수가협상 관련 의약단체 합동 간담회에 의협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의협으로 협상 권한을 위임받은 대한개원의협의회에서 지난해 수가협상을 끝으로 권한을 반납했다. 의협도 수가협상을 거부할 수 있다는 메시지 나올 정도로 의료계 내부에서는 여러 갈등과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의협의 최고 의결 기구인 제75차 정기대의원회 회의에서는 올해 수가협상에서 5% 이상 결과물 얻어내라는 주문도 있었다. 이러한 회원들의 요구는 그동안 협상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을 의미한다.
김 부회장은 "지난 정부와 달리 이번 정부는 필수의료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의료 현장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진료 현장 의사는 구속되고 칼에 찔리고 폭언에 시달리고 있다.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현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필수의료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단이 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협상은 통보가 아니어야 한다. 부디 본인이 마지막 협상 단장이 되질 않길 바라며, 이번에 시행되는 수가협상은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최선의 결과가 도출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대한치과의사협회 박태근 회장은 투쟁과 단식으로 인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하지만 회원들의 요구 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박 회장은 "치과계는 무한 경쟁으로 인해 비보험 진료가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이 분야도 블루오션에서 레드오션으로 바뀐지 오래 됐다. 정상적인 진료 정상 수가를 받는 회원이 오히려 비정상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치과 의료보험 정책을 대대적으로 손을 봐야하는 이유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치과계 수가 상황을 비교했다. 우리나라 수가는 미국의 1/20 수준이라고.
박 회장은 "우리나라 수가가 미국의 1/2만 책정돼도 치과계는 열광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료계에세 싼값에 적정 진료는 환상이다. 이제는 적정 수가를 보전해 줘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료인의 양심만 강조하는 것은 그만 멈춰달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신규 치과는 인건비 증가, 환자 요구 수준 상승 등으로 병원 경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올해 당장 획기적인 변화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3년, 5년 후에는 의료인 희생을 전제로 한 보험 제도가 아닌 의료인도 대접받는 제도가 되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한의사협회 홍주의 회장은 국민 건강을 책임지고 보호하는 데 당장의 치료 범위와 행위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주머니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 회장은 "코로나19 사태 3년 동안 국민들과 의료인들은 함께 극복해 나갔다. 그 노력과 어려움을 공단이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추나요법의 경우 비정상적인 본인부담이 적용되고 있으며, 2021년부터 시작돼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급여 비율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회장은 "공단은 재정 추계를 예측하기 어렵다면서 급여의 비율 정상화를 주저하고 있다. 이는 경제 논리를 떠나 다른 급여 행위에 대한 형평성과 맞지 않다"며 "무엇보다 한의계는 2014년 4.2%었던 진료비 점유율이 작년에 들어서 3.1%까지 하락했다. 한의계가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길 바라며, 새로운 모형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 최광훈 회장은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 속 약국의 조제 건수가 크게 증가한 것이 올해 수가협상에 약점이 될까 우려했다.
최 회장은 "약국의 경우 2022년 확진자 폭증으로 인해 조제 건수가 늘어나 행위료가 증가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이번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할까 우려가 된다. 표면적으로 볼 때 약국 조제 건수가 상대적으로 증가한 것은 맞으나 2022년만 단발적으로 발생했다. 올해는 확진자가 줄면서 약국의 조제 건수 및 행위료가 다시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따라서 최 회장은 이번 협상에 있어 전년 대비 올해 얼마나 늘었는가를 판단하지 말고, 3년 동안의 장기적인 상황을 반영해 달라고 제안했다.
최 회장은 "올해 수가협상에서 일말의 희망을 보여줬으면 한다. 2년 연속 건보 재정이 흑자인 상황인데, 재정 여유가 있을 때 수가 인상을 조금씩 현실화하지 않으면 풍선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올해는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는 합리적 협상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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