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항생제 신약 확보가 어려운 이유

최성훈 기자 (csh@medipana.com)2024-12-05 11:58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24년 기준 약 19.2%로, 내년에는 20%, 2050년에는 40%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여러 보건 문제가 예견고 있다.

면역력이 취약한 고령층이 증가할수록 대두되는 대표 보건 위기엔 '감염 질환'과 '항생제 내성'이 있다. 고령층은 면역 기능이 약해 각종 감염병에 취약하며 높은 사망률과 항생제 의존도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 증가는 '항생제 내성균'의 발생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공중 보건에 큰 위협을 초래한다. 

항생제 내성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인류 건강에 대한 최대 위협 중 하나로 지정한 심각한 보건 문제다. 우리나라 역시 다르지 않다. 한국의 항생제 내성률은 OECD 평균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다제내성균' 6종을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해 감시하고 있지만, 2023년 기준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감염병은 CRE 감염으로 나타났다.  

CRE 감염은 '최후의 항생제'로 알려진 카바페넴계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며, 특히 병원 등 의료기관 내 집단 감염 우려가 크다. 지난해 CRE 감염은 국내에서 3만8405명에서 발생했으며, 총 663명이 사망했다.  

또한 발생 건수는 2019년(1만5369건) 대비 2023년 기준 약 2.49배, 사망신고는 3.25배 증가해 그 위협은 커지고 있다.

항생제 내성균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상당하다. 직접적인 의료비와 간접 비용을 포함한 다제내성균 관련 사회경제적 손실은 연간 5500억 원에 달하며, 내성균 감염 환자 치료 기간이 길어질수록 의료 시스템의 부담이 가중된다. CRE와 같은 다제내성균에 효과적인 항생제 신약이 필요한 이유는 이처럼 분명하다.

그럼에도 항생제 신약 확보에는 여러 장벽이 존재한다. 막대한 항생제 신약 개발 비용에 비해 수익성이 낮아 제약사들이 적극적으로 신약 개발에 뛰어들기 어려운 현실이다. 

2017년 국제학술지 'Health Policy' 논문에 따르면 항생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약 15억 달러가 소요되지만, 연간 항생제 평균 매출은 460만 달러에 불과해 투자 대비 수익이 낮다. 이처럼 수익성이 떨어지다 보니 제약사들은 항생제 개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항생제 신약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실제 다른 질환군 대비 현재 임상 개발 중인 항생제 신약은 부족한 실정이다. 

개발된 항생제 신약이 국내 도입돼 실제 쓰이기까진 또다른 제도적 어려움들도 존재한다. 예컨데 어렵게 개발된 항생제 신약은 오래전에 개발된 저가의 기존 항생제와 비교할 경우, 경제성평가 기준을 충족시키기 매우 어렵다. 

일부 항생제 품목에 한해 경제성평가 면제가 가능하도록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최근 감염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진균 감염에 대한 항진균제 등 여전히 제도의 사각지대에 남아있는 의약품이 많다. 

경제성평가 면제를 받은 약제의 경우에도 '총액제한제도'라는 또다른 걸림돌이 있다. 총액제한제도는 건강보험 재정 지출을 관리하기 위해 약제의 연간 급여 상한액을 설정한 후, 이를 초과할 경우 제약사가 비용을 부담하는 제도다. 

특히 임상적 가치가 높은 신약은 시장에 진입하면 처방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총액제한의 연간 한도 초과분에 대한 부담은 온전히 제약사가 지게 된다. 힘들게 개발한 신약이 의학적 필요성에 의해 처방이 늘면 결국 제약사의 부담이 계속 가중되는 구조다. 

이같은 정책은 항생제 신약 개발 의지를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국내시장 철수를 고려하는 '코리아패싱'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

OECD는 고령화 사회에서 항생제 신약은 단순한 치료제를 넘어 공중 보건을 유지하는 핵심 자원으로 평가한다. 이미 다른 나라들은 항생제 신약 개발을 독려하기 위한 지원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렵게 개발된 신약 조차 시장진입을 어렵게 하는 재정 절감에만 초점을 맞춘 경직된 제도만 늘고 있다. 감염질환으로 인한 전체 사회적 손실 비용을 고려한다면, 연간 항생제 신약 비용 절감에만 집중하는 것이 과연 중장기적 정책결정인지 돌이켜봐야 한다. 

다제내성균에 효과를 보이는 항생제 신약 등 필수 의약품에 대해선 유연한 정책적 접근을 통해, 신약이 국내 공급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마련이 중요하다.  

제도적 유연화를 통해 가속화되는 고령화시대에 슈퍼박테리아 위협을 막고, 혁신 신약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도달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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