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故임세원 교수의 '의사자' 지정에 대한 논쟁에 사법부가 의료계의 손을 들어줬다.
'의로운 죽음'에 대한 기준 및 판단의 주체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던 이번 사건에 대해, 똑같은 CCTV와 목격자 진술 등을 근거로 의사자 지정 요건을 심의한 사법부와 복지부가 다른 판단을 내려 관심을 모은다.
지난 10일 서울행정법원은 오후 2시 故임세원 교수의 유가족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의사자 인정 거부처분 취소 소송 선고에서 의사자 인정 거부처분을 취소하라고 선고했다.
사실상 복지부의 故임세원 교수에 대한 의사자 지정 심의 결과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故임세원 교수는 지난 2018년 12월 31일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 환자를 진료를 하다가, 가방 안에 칼을 숨기고 병원을 찾은 환자 A씨로부터 피습 당해 목숨을 잃었다.
고인은 예약도 없이 불쑥 병원을 찾은 환자 A씨를 진료하기 시작한 지 3분만에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지만, 동료 간호사 등을 대피시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사건은 진료실 내 의료진 안전 문제에 경종을 울렸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이하 대신정)를 비롯해 전 의료계가 함께 애도를 표하며 재발 방지책 마련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사건 당시 故임세원 교수가 자신의 목숨을 건사하기 위해 A씨를 피해 병원을 탈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동료 간호사 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사실이 알려지며 의료계는 유가족을 도와 故임세원 교수의 의사자 지정을 위해 노력했다.
고인의 부인은 "저희 가족이 남편을 아빠를 황망히 잃게 되었으나, 그래도 남편이 그 무서운 상황에서도 간호사나 다른 사람들을 살리려한 의로운 죽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 지지 않고 의사자로 지정이 되면 저희 가족, 특히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힘이 될 듯 합니다"라고 밝히며 의사자 신청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유족들은 조의금 1억 원을 대한정신건강재단에 기부하는 등 고인의 유지였던 '안전한 진료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위한 소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보건복지부는 의사상자 심의위원회에서 故임세원 교수의 의사자 지정 건을 한 차례 보류하는 등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신정은 그해 6월 7일부터 탄원 서명 운동을 실시했고, 4,121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와 변호사 자문을 담은 의견서, 특히 그로부터 치료를 받고 위로를 받았던 환자들이 직접 쓴 편지 등을 복지부에 전달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2019년 9월 24일 보건복지부 의사상자 심의위원회는 최종적으로 故임세원 교수의 의사자 지정신청을 불허하는 결정을 내렸다. 고인이 '의사상자 지정'의 요건에 부합하지 않다는 판결이었다.
'의사자'란, 위기에 처한 제3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 행위를 하다 숨진 사람을 의미하는데, 복지부는 이러한 관점에서 임 교수가 타인을 구하기 위해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했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이후 대신정을 비롯한 의료계는 깊은 유감을 표했다. 대신정은 "의사자란 직무 외의 행위로서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구조행위는 자신의 생명 또는 신체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급박한 위해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행위를 말한다"며, "피의자에게 흉기로 위협받는 밀폐된 방은 이미 진료 현장이라 부를 수 없는 범죄 현장이다. 임세원 교수는 흉기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명보다 간호사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유가족은 대신정 등 의료계의 지지 속에 복지부의 의사자 지정 거부에 대한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복지부의 의사상자 심의위원회의 판결에 문제가 있었는지 살펴봤다.
재판 과정에서 사건 당시 CCTV와 목격자, 동료들의 증언 등 심의과정에서 제출된 근거들이 제출됐고, 재판부 역시 이를 바탕으로 고인이 '의사자' 요건에 해당하는 '구조행위'를 했는 지 여부를 판단했다.
실제로 사건 당시 CCTV에서 고인은 방을 나오면서 간호사가 있는 쪽으로 피하지 않고 반대편으로 피했고, 본인의 안전을 우선 생각하여 계속 뛰지 않고, 멈추어 뒤를 돌아보아 위험에 처한 간호사의 안전을 확인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계속해서 탈출하지 않고, 멈춰 서서 다른 간호사에게 '빨리 피해! 112에 신고해!'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실제로 이렇게 간호사들을 위한 고인의 소리에 간호사를 위협하려던 환자 A씨가 임 교수 쪽을 돌아보고, 다시 임 교수를 쫓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故임세원 교수 유가족 측 변호인인 법무법인 원의 김민후 변호사는 심의 당시에는 언론에 드러나지 않았던 당시 현장 의료진의 증언 및 CCTV 내용을 공개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고인은 A씨를 피해 진료실을 나와 가장 먼저 탈출할 수 있는 비상대피 계단이 있었음에도, 일부러 먼 복도 쪽으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탈출로로 선택한 복도 방향에는 간호사 스테이션이 있었고, 당시 고인은 다른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손짓을 하는 등,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 보다는 타인의 대피를 우선시 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민후 변호사는 "(고인은) 위험을 감수하려다가 범인의 표적이 됐다. 고인은 단순히 도망가라고 외친 정도가 아니라, 직접적 적극적으로 타인을 대피하려는 행위를 했다. 즉, 본인의 의지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사실이 충분히 드러난 것이다"라며, "서면은 물론, 동영상 자료, 사건 재연 동여상 등을 재판 과정에 제출했고, 판사 3명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이렇게 증거가 명백함에도 복지부는 왜 고인의 의사자 지정을 거부한 것일까.
복지부는 고인이 먼 복도 쪽 방향인 간호사 스테이션에 간 이유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구조요청을 하기 위해서였으며, 대피하라는 외침 역시 사회 통념상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상호협력 상 수준의 행위를 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똑같은 근거를 놓고 복지부는 재판부와 전혀 판단을 내린 것이다.
결국 행정 소송에서 판사 3명이 복지부의 의사자 지정 거부 처분이 문제가 있다며,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행정청은 판결 취지에 따라 의사자 지정 신청에 대한 재처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민후 변호사는 "판결 취지와 내용을 복지부가 제대로 이행한다면, 당연히 고인에 대한 의사자 지정 신청은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판결을 놓고 의료계는 환영의 뜻을 표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 센터장(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합리적 판단을 해준 사법부에 감사를 표하며, "故임세원 교수는 본인의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에도 생명을 구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사회가 안타까운 죽음에 함께 애도 하고 기억함으로서 보다 안전하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편에서는 해당 사건이 행정 소송까지 가야했던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한 평생 환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헌신하다, 환자를 진료하던 중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의사를, 주변 동료들과 환자들까지 나서 '의사자'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굳이 복지부가 거부하는 판단을 내려 논란을 만들었어야했나 아쉽다"며, "해당 사건은 의료진 진료안전 문제,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 체계의 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경종을 울린 사건으로 의의가 있는 만큼 정부가 앞장서서 의사자 지정을 위해 노력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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