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전 재발열 증후군 환자와 가족은 매일 아프다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정대철 교수

메디파나 기자2022-09-21 06:03

소아 환자 치료의 궁극적 목표는 환자를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특히 희귀질환 소아 환자의 치료전략을 수립할 때에는 신체적 건강 외에도 정신적 건강은 물론 환자 가족의 삶의 질까지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희귀질환은 다른 질환에 비해 진단과 치료가 상대적으로 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질환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우울증, 고립감 등 심리적 스트레스에 경제적 부담까지 더해져 삼중고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엔 정부에서도 소아 희귀질환자의 삶의 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약제 급여 적정성 평가에서 경제성평가 자료 제출을 생략할 수 있는 약제에 '대상 환자가 소수여야 한다는 조건으로 '소아의 삶의 질 개선을 입증한 의약품'을 추가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소아 환자에게 발견되는 대표적인 희귀질환이자 치료 환경 개선이 필요한 질환 중 하나는 '유전 재발열 증후군'이다. 국내 20여 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 재발열 증후군은 출생 직후 알기가 매우 어려우며, 성장 과정에서 반복적인 발열과 전신 염증 소견이 수 차례 나타난 이후에야 의심할 수 있어 진단이 늦는 경우가 많다. 심해질 경우에는 청각 이상, 시력 상실, 근골격계 이상, 및 전신성 아밀로이드증 등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일으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무서운 질환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 유전 재발열 증후군 환자가 사용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은 매우 제한적이다. 유전 재발열 증후군 치료에 사용 가능한 약제로는 아나킨라(Anakinra)와 일라리스(Ilaris)가 있다. 일라리스는 8주 간격으로 주사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체 약제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급여가 되지 않아 실질적인 사용이 어렵다. 이로 인해 현재 국내 유전 재발열 증후군 환자들은 매일 스스로 아나킨라를 피하주사 해야 하는 상황이다.

유전 재발열 증후군은 평생 관리해야 한다. 평생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다 보니 신체적으로 큰 고통이 따른다. 부모들은 매일 최대한 아프지 않은 부위를 찾아 헤매지만 아이들의 몸이 워낙 작다 보니 자주 맞는 부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잦은 주사로 인해 피부가 딱딱해지고 통증이 발생하는가 하면 자가 주사 과정에서 부정확한 용량 투여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매일 주사는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소아 환자가 건강한 사회 구성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도 난항을 겪게 한다. 소아 환자가 장기적으로 치료를 잘 받기 위해서는 주 보호자인 부모와의 관계 형성 및 상호 작용이 매우 중요한데, 매일 아픈 주사를 놓는 부모가 악역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부모 자녀 간 관계 형성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보호자도 비전문가로서 자녀에게 주사를 놓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용량을 투약해야 하는데, 환자의 컨디션에 따라 용량이 조금이라도 적게 들어가면 발열, 발진 등의 CAPS(크리오피린 관련 주기적 증후군)  증상이 바로 나타난다. 또한 아이가 자랄수록 더 많은 용량의 약제를 주사해야 하기 때문에 주사 횟수는 1일 1회보다 더 많아지기도 한다.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소아 환자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일라리스가 보험급여 등재돼 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의 국가에서는 일라리스를 유전 재발열 증후군 또는 CAPS 치료에 널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는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환자들이 일라리스를 사용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일라리스는 유전 재발열 증후군의 다양한 세부 질환 중 TRAPS(종양괴사인자 수용체 관련 주기적 증후군) , HIDS/MKD(고면역글로불린 D 증후군/메발론산 키나아제 결핍증) , 콜키신으로 조절되지 않는 FMF(가족성 지중해 열) 에도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유일한 치료제다.

정부가 소아 삶의 질 개선을 입증한 의약품이면서 환자 수가 소수인 경우 경제성평가 자료 제출 생략을 고려해보겠다 밝힌 현 상황에서, 유전 재발열 증후군은 해당 조건에 부합하는 질환임이 분명하다. 유전 재발열 증후군 환자가 매일 주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삶의 질을 개선해 줄 수 있는 치료 옵션에 대한 접근성 개선 검토가 필요하다.

아울러 최근 유전자 진단기법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전신 염증질환이나 면역결핍질환이 진단되고 있다. 문제를 일으키는 유전자로 인한 병리 생태를 확인하고 기존 약제를 사용해 치료할 수 있으나, 이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구체적 경로가 없기에 해당 환자 치료와 보험 적용에 매우 큰 한계가 있다.

기존 약제의 허가사항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새로운 치료법에 대해 보험 적용을 빠르게 논의한다면,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선진국으로서 국가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기고]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정대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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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작성시간 : 2022-09-2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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