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프랑스는 비정형 용혈성 요독 증후군(aHUS) 치료제 사용에 대한 접근성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투약이 가능하다."
프랑스 파리 네케르 병원 줄리엔 쥐베르 교수(aHUS 연구모임 공동의장)는 최근 메디파나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고가 희귀질환 치료제를 대하는 자국의 시선은 '똘레랑스(Tolérance, 관용)'라고 답했다.
똘레랑스는 예로부터 프랑스 사회를 대표하는 말이다. 개개인의 견해나 가치관 등이 서로 다른 만큼 서로가 타인을 존중하자는 이유에서다. 타자(他者)를 관용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프랑스 국민들이 바라보는 희귀질환에 대한 시선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서로가 관련 '보험료를 분담하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고가 치료제라도 보험급여 적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고가 약제더라도 급여 대상이면 의료진 진단 및 처방에 따라 100% 국가 보험 재정으로 치료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환자 부담금은 0%인 셈이다.
이와 반대로 국내 고가 희귀질환 치료제들의 접근성 향상 문제는 늘 숙제다. 의료계나 환자단체 등이 해마다 지적할 정도로 이들 치료제의 실사용은 여전히 '먼 나라 얘기'라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낮은 사전심사제도 승인율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고가 약제의 명확한 사용 기준을 정립하고, 약제 남용을 방지하고자 2012년부터 희귀질환 약제 사전심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연간 3억원 이상 약제에 해당하는 희귀질환 치료제들은 이 제도를 통해 건강보험 급여권에 진입했다. 대표적으로 '솔리리스'나 '스핀라자', '울토미리스', '스트렌식', '졸겐스마' 등이 그렇다.
그중에서도 가장 낮은 심사 승인율을 보인 약제가 aHUS 치료제인 솔리리스다.
aHUS는 만성적으로 제어되지 않는 보체의 활동으로 혈전과 염증이 몸 전체에 있는 작은 혈관에 지속적으로 손상을 입히는 극희귀질환이다.
미세혈관병증으로 인해 aHUS를 진단 받으면 뇌, 심장, 신장 등 주요 장기가 손상돼 급성신부전, 뇌졸중, 심부전 등 생명을 위협하는 여러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솔리리스 심사 승인율은 지난 10년간 21.6%에 그쳤다. 이를 두고 의료 전문가들은 솔리리스의 복잡한 급여 기준을 지적했다.
실제 해당 환자에게 솔리리스를 급여로 사용하기 위해선 ▲혈소판수 ▲분열적혈구 유무 ▲헤모글로빈 수치 ▲신장 손상 여부 ▲신경계·심장·소화기계·폐 손상 유무 ▲혈액 샘플에서 ADAMTS-13 활성이 10% 이상 ▲대변 STEC(Shiga toxin-producing E.Coli) 결과 음성 등 그중 4가지 대조건을 모두 충족하면서, 9가지의 제외 기준에 해당되지 않아야 치료를 승인해주고 있다.
간략하게 나열했음에도 무척 까다로운 기준. 때문에 의료진들도 급여기준을 다 알지 못해 번번이 사전승인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특히 지난해 1월~8월 신청된 솔리리스 급여 신규 신청 건수 총 35건 중 33건은 불승인 처리됐다.
이에 대해 쥐베르 교수는 "한국의 솔리리스 급여 기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진 않지만, 한국 의료진들로부터 분열적혈구(Schistocyte) 유무가 필수적이라고 들었다"면서 "신장 이식 후 환자가 혈전미세혈관병증(TMA)가 발생하면 분열적혈구가 잘 관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분열적혈구 관찰 여부나 일정 수준의 혈소판 수치를 모두 충족하려면 치료 적기를 놓칠 수 있다"며 "이러한 엄격한 기준이나 부담스러운 제한 요소들은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솔리리스 투약 여부나 기간에 대해 프랑스는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앞서 언급했듯 극희귀질환이나 소아 중증질환 등 치료비 부담이 큰 질환의 경우 "국민 세금을 바탕으로 치료비 부담을 분담해야 한다"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기 위해선 해당 약제가 충분한 임상 유효성이 입증돼야지만 가능하다고 전제했다.
심사 약제가 어느 정도 임상적 혜택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급여 지원 등급이 설정되기 때문이다. 즉, 과거 치료 환경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지대한 치료 변화를 가져왔냐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 가운데 솔리리스는 가장 높은 등급을 받았다.
쥐베르 교수는 "aHUS는 신부전 발생 위험이 큰데, 프랑스는 솔리리스 도입 후 4년 만에 aHUS로 인한 투석 환자 비율을 절반으로 줄였다"면서 "신장 질환 치료제 중 이 정도로 큰 변화를 가져온 치료제는 없었다. 혈액학적인 개선 역시 치료 일주일 내로 완전히 회복이 됐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급여 정책은 어느 나라든 당면 과제지만, 프랑스는 명확한 급여기준과 경증질환 급여 비중을 줄여가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중이라 했다.
쥐베르 교수는 "프랑스도 과거에는 한국처럼 경증질환에도 모두 급여를 지원했으나, 지금은 급여 비중을 서서히 줄이고 있다"면서 "또 과거에는 치료 효과가 과학적으로 완전히 입증되지 않더라도 신약이면 되도록 급여를 해줬지만, 이제는 게임 체인저 수준으로 충분한 유효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현재 존재하고 있는 표준 치료법(Standard of Care. SoC) 대비 얼마나 월등한 치료제인지 등이 평가 기준이며, 이후 위원회와 수많은 논의를 거치게 된다. 이 기간이 EMA 승인 후 최소 1~2년 정도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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