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의사·간호사·약사는 공무원이 아니다

이정수 기자 (leejs@medipana.com)2023-07-03 06:00

[메디파나뉴스 = 이정수 기자] 지난 5월말, 보건의료계를 오랫동안 크게 뒤흔들었던 간호법 제정은 결국 'No!'라고 외친 정부 손짓 한 번에 그저 없던 일로 끝이 났다.
 
의료계와 간호계 간에 숱한 논리 싸움이 벌어지고 국회 내에서도 지난한 과정 끝에 어렵게 통과됐지만, 얼마 전부터 제정 반대 의사를 본격적으로 표명했던 정부 입장이 사태 결말로 이어졌다.
 
시각에 따라 다소 일방적으로도 비춰질 수 있는 정부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러 논란 속에서 끝내 61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강행됐다. 자연스러운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사안이었다고는 하더라도, 결국은 윤석열 정부 뜻이 관철된 정책 중 하나로 남게 됐다.
 
또 지난달 말엔 복지부가 '앞으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의사인력 확충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의사인력 확충은 소비자단체, 환자단체, 언론계, 각계 전문가 등 다각적인 의견수렴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것이 이유다. 그간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정 간에 논의되던 사안은 정부 방침 하나로 실상 협의체 손을 떠나게 됐다.
 
의료계에서 필수의료 강화 방안으로 요구해왔던 '의료사고처리특례'도 결국 정부 방침에 꺾인 사례가 됐다. 최근 복지부는 의료사고처리특례 대안으로 '의료분쟁조정중재제도 활성화' 카드를 꺼냈다. 조규홍 장관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해당 내용을 언급해 정부 방침으로 공식화하기도 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보고 있자면, 정책이 그저 정부 방침 하에 일변도로 추진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최근 정책 중 보건의료계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뤄진 것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는 생각마저 든다. 비대면 진료도 재진 등이 담겼다고는 하지만, 본래 의료계는 반대했던 사안이지 않나.
 
더 큰 문제는 이후라는 점이다. 이미 정부는 방침을 정하고 그 방침대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간담회로 의견을 수렴하고, 협의체로 논의를 할지언정 결국은 정부가 세운 방침이 곧 '정답'이자, 정책이었다.
 
어쩌면 대한의사협회도, 대한간호협회도, 대한약사회도 모두 그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들러리에 그쳤던 셈인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사례를 하나 덧붙여본다. 지난 5월 복지부는 지난 3월 대구에서 발생한 10대 응급환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4개 응급의료기관에 응급의료법 위반과 행정처분을 결정했다. 그 영향으로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피의자가 됐다. 의료계가 즉각 설득에 나선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응급의료법 위반 결정이 뒤집어질지는 의문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적했듯, 이같은 정부 방침은 곧 전공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악의 없는, 오로지 선의로 이뤄진 진료임에도 정부가 '법 위반'이라고 지목해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면 그 누가 선뜻 진료에 나설 수 있을까. 법 위반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영역은 더욱 기피 대상이 될 것이고, 그런 영역이 많은 필수의료 영역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와 관련된 정책은 심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보건의료는 분명 공공 영역이지만, 보건의료를 짊어진 의사, 간호사, 약사 등 대부분은 공무원이 아니다. 그들은 경제영역에 놓여있다. 경제적 여건은 차치하고 '워라밸'을 중시하는 경향은 점차 짙어지고 있다. 정책이 정해졌다고 해서 따르는 시대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만약 정책 일변도로 필수의료를 비롯해 공공 영역이 끝내 무너지고야 만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정부에게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책이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중간한 '통보'보다는 분명한 '합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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