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이번엔 로슈진단에서 미팅을 하자고 찾아왔습니다. 최근 회사가 디지털 병리학(Digital Pathology)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면서요. 무척 영광이었습니다. 로슈 내부 프로토콜에 따라 최종 계약이 이뤄지기까지 약 2년이 걸린 것 같아요."
딥바이오 김선우 대표이사는 글로벌 진단 기업인 로슈진단과 협력하게 된 과정에 대해 이같이 술회했다.
최근 김 대표와 회사로선 크나큰 경사를 맞았다. 인공지능 기반 디지털 병리진단 기업으로 사업을 시작한 지 9년, 꿈에 그리던 '라이선스 아웃(기술 수출)'에 성공하면서다.
로슈진단은 지난달 11일(현지시각) 글로벌 보도자료를 통해 자사 디지털 병리 플랫폼인 '네비파이(navify)'에 딥바이오 전립선암 분석 AI 알고리즘인 '딥디엑스 프로스테이트((DeepDx Postate)'를 탑재한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디지털 병리진단을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 플랫폼에 국내 AI기술이 탑재된 건 딥바이오와 루닛 단 두 곳뿐이다.
미국 정부에 이어 글로벌 진단 기업까지 딥바이오의 기술력를 인정한 순간이다. 앞서 딥바이오는 미국 암 정복 프로젝트인 '캔서문샷(Cancer Moonshot)'수행을 위해 설립된 민관 협력체인 '캔서엑스' 멤버로 지난해 초청받아 현재까지도 활동 중에 있다.
전문가 격한 반응에 아이디어 얻어 연구 시작
AI 병리분석 솔루션 국내기업이라고 하면 흔히 루닛을 떠올리지만, 사실 딥바이오가 먼저 진출한 분야다.
딥바이오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부를 졸업한 뒤 네이버, KT 전략기획실 소속 해외투자 팀장 등을 거치며, IT와 경영에서 내공을 쌓은 김선우 대표가 2015년 창업한 회사다.
시작은 단순했다. 김 대표만의 딥러닝 기술을 가지고 있던 차에 우연찮게 갖게 된 약대 교수와의 식사가 계기가 됐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제가 AI 기술 중 딥러닝이 이미지 분석을 매우 잘해서 암도 찾을 수 있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엄청나게 흥분하시더라고요. 전문가가 흥분하는 걸 보면서 이걸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그는 전 세계 최초로 병리진단에 AI를 접목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김 대표는 2016년 2월 전립선암 진단에서 활용되는 코어 바늘 생검 슬라이드 200개를 갖고, 알고리즘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학습이 된 알고리즘을 병리학 교수에게 보여줬더니 "3개월 정도 공부한 레지던트 수준"이란 평가를 받았다.
추가로 생검 슬라이드 800개 정도를 받아 학습을 시켰더니 "이제 3년 차까지 올라왔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생검 슬라이드를 지속 추가하면서 학습에 학습을 거듭한 결과, 탄생한 제품이 전립선암 분석 AI 알고리즘 딥디엑스 프로스테이트다.
딥디엑스 프로스테이트는 조직 검사를 통해 얻은 고해상도 영상(whole slide tissue image)을 분석해 실제 암 병변 부위를 식별 및 분할하고, 이에 따른 정확한 종양 위치 파악, 진단, 예후 등 다양한 핵심 지표를 제공한다.
딥디엑스 프로스테이트가 암 진단 AI 솔루션으로 식약처로부터 인허가 받을 당시, 학습된 생검 조직 슬라이드는 약 70만개 이상이다. 그에 따르면 15년~20년 차 병리학 전문의 수준으로까지 진화한 셈이다.
논문 등 임상근거 쌓이자 로슈 먼저 연락
그렇다고 연구 개발에만 몰두하지는 않았다. 딥디엑스 프로스테이트 연구 제품을 만드는 과정부터 그는 일찌감치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처음 찾은 곳은 로슈진단 USA였다.
"마침 스탠퍼드 대학교랑 미팅도 있어서 겸사겸사 로슈진단을 찾았죠. 거기 박사님이 기술도 좋아 보인다면서 극찬을 했지만, 잘 안 됐어요. 로슈는 인허가를 받지 않은 제품에 대해선 협업을 안 한다 하더라고요. 당시 저희가 아는 게 없다보니 인허가나 논문으로 임상적 유효성을 검증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도 몰랐었죠."
이에 김 대표는 다음 단계로 해외 유수 의대와 연구계약을 맺고, 논문 발행 작업에 매진했다. 스탠퍼드 의대와 존스홉킨스 의대, 하버드 의대 연구소 등과 연구 계약을 맺고 기술 검증에 들어간 것. AI 병리조직진단보조 소프트웨어로 의료기기 국내외 인허가를 받은 것도 마침 그즈음이다.
반전의 계기가 마련된 건 2022년 유럽 유럽병리학회(ECP)였다. 당시 스위스 로슈진단 본사 임원들이 딥바이오 전시 부스를 찾아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그 뒤로부턴 로슈진단 내부 프로토콜에 따라 협력이 진행됐다. 계약 작성부터 기술문서, 마케팅 플랜, 배상책임보험 범위 여부 등 하나하나 서로 주고받고 조율하기까지 과정은 2년 정도가 소요됐다. 이에 따른 딥바이오-로슈진단 최종 공급계약 발표는 지난달 11일이었다.
"해외 판매 모델을 만들었으니 이제는 유의미한 매출 확대가 가능해졌습니다. 특히 미국에선 우리가 전립선암 진단 보험 코드가 이미 있거든요. 그게 환자 당 50~60만원 정도예요, 미국에선 전립선암으로 인해 검사하는 환자가 1년에 100만명이 넘습니다. 그중 1%만 우리 제품을 사용해도 50~60억, 2%면 100억대가 나옵니다."
HER2·PD-L1·c-MET 등도 정량 판독 가능
김 대표는 딥디엑스 솔루션을 활용해 유방암이나 폐암까지 진단 영역을 더욱 확장할 계획이라 했다.
실제 딥디엑스 솔루션은 면역조직화학(IHC) 검사를 통한 타 고형암 세포막이나 세포액, 세포질 분석 슬라이드까지 딥러닝을 마쳤다는 전언이다. 이에 면역항암제 바이오마커로 쓰이는 PD-L1부터 ADC 항암제 바이오마커인 HER2, 상피세포수용체(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에서 내성 원인으로 꼽히는 c-MET 돌연변이까지 그 발현도를 정량화할 수 있다.
즉, 딥디엑스 솔루션을 거치면 신약 개발 기업들이 임상에서 적합도가 높은 환자군을 명확하게 식별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에 최근에는 국내 바이오텍 기업인 에이비온에 'AI 기반 c-MET IHC 판독 서비스'를 제공키로 했다.
에이비온은 3세대 EGFR-TKI 억제제 '렉라자(레이저티닙)'에 불응하거나 내성이 생기는 환자를 극복할 방안으로써 자사 바바메킵(ABN401)과 레이저티닙 병용하는 임상시험을 진행 중에 있다.
"신약 파이프라인에 들어가는 모든 바이오마커 분석을 우리가 해줄 수 있습니다. 성공 사례 데이터를 논문으로 발표하게 된다면 글로벌에서도 상당히 좋은 반응이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글로벌 빅파마와 계약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직원 스스로가 재밌어 하는 조직 만들 것"
마지막으로 그는 상용화까지 함께 고생한 임직원들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김 대표가 직원들에게 바라던 덕목인 '상호 존중'과 '고객 만족' 부분에서 그를 믿고 잘 수행해 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스스로부터가 먼저 지키려 하는 철칙이기도 하다. 이에 딥바이오는 유연근무제서부터 재택근무, 자율복장까지 근무환경은 무척 자유로운 편이다.
인터뷰 말미에 만난 딥바이오 직원들도 "대표님부터 스스로 직원들에게 존중과 배려를 몸소 실천했기에 만들어진 결과"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저희 같은 스타트업에서는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지키기가 어려워요. 사실 한국 정서상 상호 존중이 힘들잖아요. 나이, 직급 등 그런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최대한 없애야 저희 같은 회사는 조금이라도 더 생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고객 만족 역시 우리 회사 밖에 있는 고객뿐만 아니라 내 팀원이나 다른 팀원 역시 고객이거든요."
"이러한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결국 내가 일을 제때 해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본인 스스로가 일을 재밌게 해야 하고. 일에 만족해야 해요. 억지로 일찍 회사에 나와 일하는 건 전 개인적으로 배임이라 생각합니다. 차라리 몇 시간 쉬다 와서 일에 몰입하라고 해요. 서로 몰입을 통해 플러스 알파의 일을 하는 그런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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