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가는 '약가'가 있어야 오는 '신약'이 있다

이정수 기자 (leejs@medipana.com)2024-12-02 05:50

[메디파나뉴스 = 이정수 기자] 최근 제약업계로부터 뜻깊은 소식이 연달아 들린다. 하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유한양행은 매년 1건 이상 기술수출 등 R&D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 매출 20%를 연구개발비로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LG화학은 신약을 '3개 신성장동력'으로 지정하는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하면서 투자 의지를 드러냈다.
 
국내 신약 R&D 분야에서 비교적 앞서 있는 유한양행은 올해에만 2000억원 이상을 R&D에 투입했다. 그에 더해 올해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2조원대 매출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매출 20%까지 투자를 끌어올리면, 한 해 연구개발비 규모는 4000억원에 이를 수도 있다.
 
제약업계에서 R&D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제는 한 업체가 투입하는 연간 R&D 규모가 1000억원을 훌쩍 넘어 수천억원을 따져야 할 정도가 됐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같은 변화는 그만큼 신약 개발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제약업계에 확산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제약업계에서 신약개발 투자 규모를 키우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면에서는 약제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정부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점차 사회가 고령화되고 있는 점, 급여가 적용되는 고가 신약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점은 약제비가 늘어나는 대표적 요인이다. 이에 더해 의료개혁과 비상진료체계로 건보재정 관리에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이에 정부는 사후 약가관리 제도를 통한 약제비 억제를 지속하고 있다. 내년에도 새로운 약가인하 체계인 외국약가 비교재평가 제도 시행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제도 시행을 위한 기준을 공고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업계 이목이 집중돼 있다.
 
이에 더해 사용범위가 확대된 품목에 대해서도 약가 협상대상 선정기준을 예상추가청구액 100억원에서 50억원으로 낮추고, 사전조정 인하율 상한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이미 급여적정성 재평가, 기등재약 상한금액 재평가, 실거래가 약가인하 등 여러 약가인하 제도로 내수 제약업계 시장이 한껏 움츠러든 상황에서 압박 수위가 더 높아지는 것을 보니 걱정이 앞선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듯이,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것이 있는 법이다.
 
신약개발 사업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정부 고민과 정책, 예산이 나오는 것은 환영한다. 그러나 제약사가 피부로 느끼기에 충분한지는 의문스럽다. 그보단 생존과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약가와 관련한 입장과 목소리를 반영해주는 것이 이들에게 더 절실하지 않을까.
 
만약 이들 목소리를 형식적으로 듣는 것에 그친다면, 온갖 약가인하 속에서 어렵게 꿋꿋이 살아남은 제약업계로선 점차 국내 정부와 의약품 시장에 대한 의존도에서 벗어나고자 할 수도 있다.
 
의약품 분야에서도 '코리아 패싱' 우려가 나온 지 한창이다. 다국적제약사 사이에선 이미 국내 시장 철수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고, 글로벌에서 판매되는 신약이 우리나라에서 허가 신청조차 되지 않는 상황까지 빚어지고 있다.
 
국내 제약사도 다르지 않다. 자체개발보다는 기술수출로 우회해 해외에 먼저 진출하거나, 자체개발까지 성공했다고 치더라도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먼저 허가받는 사례가 이미 존재하며,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이는 의약품이 갖는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백신 주권이 있듯, 신약 주권도 있다. 의약품은 공공재로 평가되지만, 제약사는 엄연히 냉정한 경제 논리 하에서 생존해나가야 하는 '기업'이다. 정부는 최소한 국내 제약사가 해외 시장에 대한 의존 없이 국내 시장에 주저 없이 신약을 개발해 내놓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수치에 연연해 소통과 공감을 무시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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