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이정수 기자] 지난해 1월, 국내에서 3세대 EGFR TKI(티로신 키나아제 억제제)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전까지 대다수 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에는 1세대 또는 2세대 약제가 사용돼왔다. 하지만 1·2세대 약제는 '뇌혈관장벽(BBB)' 투과율이 낮아 뇌 전이에는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이에 전신 병변은 안정적이지만, 뇌로만 국한돼 병이 진행되는 환자가 상당히 많았다.
결국 1·2세대 약제를 활용한 1차 치료에 실패한 환자 중 일부에게선 내성 인자인 'T790M' 변이가 발현하는데, T790M 변이 양성 환자에게는 2차 치료로 3세대 약제 처방이 가능하다.
반면, T790M 변이 음성인 환자의 경우 그동안 2차 치료에 마땅한 옵션이 없었다. 특히 뇌전이나 연수막 전이를 동반한 환자의 경우 치료 예후가 좋지 않을뿐더러 국소 치료에 의존해야 하는 등 한계가 있었다.
이에 연세암병원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는 1·2세대 약제 치료에 실패해 뇌전이 또는 연수막 전이가 나타난 후 무증상 또는 경미한 증상을 보이고 있는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3세대 약제인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를 단독 투여해 치료효과를 보기 위한 단일군, 비무작위 2상을 진행했다.
그 결과, 렉라자 투여군에서 두개강 내 객관적 반응률(iORR)이 43%로 나타났다. 두개강 내 무진행 생존기간 중앙값(miPFS)은 15.4개월이었다. 이는 T790M 변이 양성인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miPFS 15.2개월과 유사한 수준이다. 이에 연구진은 렉라자 단독 투여가 T790M 변이 음성이면서 뇌전이나 연수막 전이가 있는 고위험 환자에게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치료 혜택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연구 성과는 2024년 8월 미국의학협회에서 발간하는 암 분야 세계적 권위 학술지인 'JAMA Oncology'에 온라인으로 게재됐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에는 렉라자가 EGFR TKI 중 단독요법으로는 유일하게 뇌전이 또는 연수막 전이를 동반한 T790M 변이 음성인 환자에서도 처방이 가능하도록 '허가초과요법'으로 인정되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국산 항암제 3세대 약제인 렉라자는 현재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와 EGFR T790M 변이 양성 환자의 2차 치료'에 허가돼있다. 여기에 더해 이번 허가초과요법 승인으로 '1·2세대 EGFR TKI 치료 실패 후 T790M 변이 음성이면서 뇌전이 혹은 연수막 전이를 동반한 수술이 불가능한 3-4기 비소세포폐암 환자'에게도 처방이 가능해졌다.
이에 해당 임상 책임자(PI)이자 교신 저자인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 김혜련 종양내과 교수<사진>를 만나 진료 현장에서 이번 연구 의도와 성과가 갖는 의미, 향후 연구 방향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다.
김혜련 교수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세브란스병원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조교수(2016-2019)와 부교수(2019-2024)를 거쳐 현재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을 맡고 있다.
Q. 우선 본론 전에, 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 T790M 변이 음성이면서 뇌 전이나 연수막 전이를 동반하게 된 경우 이제까지 어떤 치료를 고려해볼 수 있었는지.
그동안 해당 환자에겐 선택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이 거의 없었다. 화학항암제나 뇌 방사선 치료, 감마나이프 같은 국소 치료가 유일한 대안이었지만, 그조차 인지 기능 저하나 체력 감소 등의 부작용으로 인해 환자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 뇌 전이는 뇌 실질 전이와 연수막 전이로 구분되는데, 연수막 전이 환자의 경우 '타그리소(오시머티닙)'를 비급여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뇌 실질 전이가 훨씬 흔하게 동반되기 때문에 더욱 폭넓고 효과적인 치료 옵션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Q. 해당 환자 수는 어느 정도 되나.
일반적으로 1·2세대 EGFR TKI를 사용한 후 질병이 진행되는 경우, 약 40%의 환자에게서 T790M 변이가 확인되고 나머지 약 60%에서는 T790M 음성이 나타난다. 또 이들 중 약 30%가 뇌 전이를 동반한다. 정리하면, 전체 EGFR 변이 환자 중 약 15~20% 정도로 볼 수 있다. 결코 적은 수치는 아니다.
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는 전체 폐암 환자의 약 40%를 차지하며, 실제 외래에서도 여전히 1세대나 2세대 약제를 사용하고 있는 환자들이 많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전신 반응이 우수하지만, 뇌 전이 부위에서 약효가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1·2세대 약제의 BBB 투과율이 낮기 때문이며, 바로 이런 환자들이 새로운 치료의 주요 타겟이 될 수 있다.
Q. 결국 이번 연구는 그 새로운 치료를 찾기 위한 시도였을 텐데, 결과에 대해 자평해보자면.
현장에서 보면, T790M 음성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렉라자에 좋은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사례는 많다. 다만 허가되지 않은 적응증에 약제를 사용하는 것은 임의 비급여로만 가능하고, 자칫 불법 치료로 간주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료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를 마련하기 위해 이번 연구를 기획하게 됐다.
연구 설계 당시 기대했던 객관적 반응률(ORR)은 약 20% 수준이었지만, 실제 결과는 40% 이상으로 나타났다. 특히 반응이 일시적이지 않고, 뇌 전이 부위에서 장기간 약효가 유지되는 경향을 보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렉라자의 뛰어난 뇌 투과력이 실제 반응률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임상적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무진행생존기간(PFS)도 평균 15개월로, 1차 치료 실패 이후에도 1년 이상 병이 진행되지 않았다는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다. 이 환자군의 특징은 뇌 외의 병변은 안정적인 반면, 뇌에서만 병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렉라자가 뇌 전이 조절에 효과적으로 작용하며 환자의 생존 기간을 연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덧붙여, 이번 연구는 대한항암요법연구회(KCSG) 산하 9개 기관이 함께 참여한 다기관 공동 연구로 진행됐다. 연세암병원 뿐만 아니라 각 기관에서 환자를 등록하고, 필요한 환자에게 약제를 투여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했다. 연구가 계획대로 마무리되고, 수준 높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참여한 모든 연구자들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역시 이 연구를 단독 프로젝트가 아닌 공동의 성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논문에서도 제1저자뿐 아니라 주요 공동연구자들을 함께 저자로 등재했다.
Q. 왜 렉라자를 선택했는지.
렉라자는 우리 기관에서 비교적 오랜 기간 연구해 온 약제로, 전임상 단계부터 뇌 투과율이 높다는 결과를 확인한 바 있다. 특히 마우스 모델을 활용한 연구에서 뇌혈관장벽을 잘 통과하는 특성이 관찰됐고, 초기 임상과 이후 리얼월드 데이터(RWD) 결과를 통해서도 해당 특성이 재확인됐다.
이번 임상연구는 뇌 전이에 대한 반응률이 1차 평가지표였기 때문에, 뇌 투과력이 입증된 약제를 중심으로 설계했다. 뇌 투과율 자체는 렉라자와 타그리소를 1:1로 직접 비교한 연구는 없지만, 현재까지의 임상적 경험상 두 약제 모두 뇌로 잘 전달되는 특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번 연구는 기존 치료 옵션이 사실상 부재한 환자군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렉라자가 중요한 치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연구자 주도 임상으로 해당 연구를 설계할 수 있었던 지원 체계 역시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Q. 병용요법도 고려해볼 수 있지 않았나.
이번 연구에 포함된 환자군은 대부분 전신 질환은 안정적인 상태였고, 뇌 전이가 주요 문제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항암 화학요법은 뇌혈관장벽을 잘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뇌에 높은 투과율을 보이는 렉라자 단독으로 충분한 효과가 기대된다면 굳이 병용요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환자의 삶의 질을 고려했을 때, 가능한 한 부담이 적은 단독요법으로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봤다.
Q. 이번 연구로 렉라자 단독요법이 '허가초과요법(off-label use)'으로 승인됐다. 소감은.
이번 연구 결과는 자마 온콜로지(JAMA Oncology)라는 영향력 있는 SCI 저널에 게재됐다. 해당 저널에 논문이 실렸다는 것은 학계에서 이 연구가 충분한 임상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로도 논문 발표 자체도 기쁘지만, 무엇보다 실제 환자들이 이 치료를 근거 기반으로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큰 보람이다.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렉라자가 T790M 음성 뇌 전이 환자에서 허가 초과 요법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고, 비급여이긴 하지만 일부 환급 프로그램이 마련되면서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실질적인 치료 옵션이 생겼다. 그동안 근거 없이 사용하기 어려웠던 현실에서 이번 연구는 임상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이 매우 뿌듯하다.
치료 반응 측면에서도 매우 고무적이다. 해당 환자군은 기존 항암제를 사용할 경우 반응률이 10% 미만, 무진행생존기간(PFS)은 6개월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뇌 전이가 있는 환자들은 병의 진행 속도가 더 빠르고, 방사선 치료까지 병행하면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렉라자가 보여준 반응률과 생존 기간은 임상적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이며, 표준 치료 옵션으로 고려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과라고 판단한다.
Q. '표준 치료'라 함은 향후 급여나 정식 허가를 의미하는 것인가.
표준 치료라고 해서 모두 급여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연구 대상인 환자군이 전체 폐암 환자 대비 적은 편인 점도 있고, 최근에는 렉라자 단독요법, 타그리소 단독요법, 렉라자+리브리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 병용요법, 타그리소+항암제 병용요법 등 보다 효과적인 1차 치료 옵션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 앞으로 1·2세대 약제를 먼저 사용하는 환자군은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표준 치료라 한 것은 현실적으로 여전히 1·2세대 약제를 먼저 사용한 후 내성이 생기고, T790M 변이 없이 뇌 전이가 발생하는 환자들이 존재하고, 임상 현장에서는 이들을 위한 해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허가초과요법은 당분간 이 환자군에게 의미 있는 치료 옵션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를 통해 렉라자 단독요법이 허가초과요법으로 승인되면서, 제도권 내에서 안전하게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게 됐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인 성과라고 생각한다.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 김혜련 종양내과 교수
Q. 결국은 1차부터 3세대 약제를 써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 현재 치료 가이드라인에서도 대부분의 환자에게 1차 치료로 3세대 EGFR TKI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엑손 19 결손이나 L858R 같은 전형적인 EGFR 돌연변이를 가진 환자의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세대나 2세대 약제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 임상에서도 1·2세대 약제는 점점 사용 빈도가 줄고 있으며, 치료의 표준은 이미 3세대로 전환된 상황이다.
Q. 이번 연구는 렉라자 활용 가치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듯하다.
EGFR 변이 환자에서는 렉라자와 타그리소 모두 다양한 치료 전략에서 점차 사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렉라자는 현재 재발성 또는 전이성 환자군을 중심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타그리소는 이미 수술 전후 보조요법 영역까지 임상 근거가 확보되며 치료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연세암병원에서도 현재 EGFR 변이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 전 단계에서 렉라자를 투여하고, 수술 후 3년간 유지요법을 시행하는 연구자 주도 임상을 진행 중이다. 총 160명을 목표로 한 다기관 연구이며, 현재 약 1/4 정도 환자 등록이 완료된 상태다. 연구 결과가 도출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향후 렉라자의 적응증 확장을 위한 의미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결국 EGFR 변이가 확인된 환자에게는 진단 시점부터 전이 여부와 관계없이 EGFR 억제제가 치료 전주기에 걸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 EGFR 억제제들이 그 역할을 수행해 왔듯, 렉라자도 앞으로 치료 전반에 걸쳐 더 넓은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Q. 마지막으로, 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치료와 관련해 관심 있는 연구가 있다면.
현재 가장 중요한 연구 방향 중 하나는, 치료 반응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구분해 맞춤형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최근 폐암 치료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으며, 단독요법만으로 치료받던 환자도 병용요법을 권장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모든 환자에게 병용치료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환자는 단독요법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치료 전략의 세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현재 유전자 검사나 혈액 기반 바이오마커를 통해 미세잔존질환(MRD)을 측정하고, 병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를 평가해 치료 강도를 조절하려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p53 같은 나쁜 예후 유전자가 확인된 경우, 뇌 전이나 간 전이가 있는 경우, 또는 치료 후에도 체내에 암세포 유전자가 남아 있는 환자의 경우 병용요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결과가 있다. 이러한 예후 인자 기반의 선별 치료는 환자의 불필요한 부담을 줄이고,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인자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단순한 기준만으로는 치료 전략을 결정하기 어려우며, 이때 인공지능(AI)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임상적 요인과 유전자 정보를 종합해 예측 모델을 구축하는 방식의 연구들이 점차 의료 전반에서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전향적 임상시험 데이터를 후향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이었지만, 최근에는 이를 전향적으로 설계한 임상연구도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면, 앞으로는 EGFR 변이 폐암 환자에게도 단순히 '표적치료'가 아닌, 환자 개별 특성에 따라 최적화된 '세분화된 정밀 치료'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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