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만성림프구성백혈병에 걸리는 연령대의 환자들, 어르신들이 힘들게 노력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고령 환자들이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윤덕현 교수
<사진>는 최근 메디파나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만성림프구성백혈병(chronic lymphocytic leukemia, CLL)'의 급여 확대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혈액암의 일종인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은 희귀 고령 질환 중 하나다. 2020년 기준 CLL으로 치료받은 환자 82%가 60대일만큼 고령 환자 비율이 높기 때문.
국내에서는 매년 160~180명이 새로 만성림프구성백혈병 진단을 받는다. 이 병의 특징은 환자수가 최근 지속 증가하고, 재발도 잦다는 점이다. 실제 1차 치료를 잘 마치더라도 환자의 약 절반은 3년 이내에 재발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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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CN도 1차 치료에 임브루비카 등 권고
2011년부터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전문의로 근무하며, CLL 환자를 치료해 온 윤 교수도 이러한 부분을 지적했다.
1차 치료가 현재의 치료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그에 따르면 1차 치료제는 '클로람부실'이나 '플루다라빈'과 같은 세포 독성 항암제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최근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의 최신 지견에서는 B세포의 신호 전달 경로를 차단하는 BTK(브로톤 티로신 키나제) 억제제 '임브루비카(이브루티닙)'와 같은 표적 치료제가 개발돼 임상에서 매우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가이드라인에서도 불량한 예후인자, 고령, 동반질환 여부에 상관없이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의 1차 치료에 BTK 억제제를 '카테고리1(category1)'으로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NCCN 등 서구의 진료 가이드라인에서 1차 치료에 항암화학요법을 우선하지 않고, 이브루티닙 등 표적치료제를 더 권유하는 이유는 결국 더 좋은 치료제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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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1차 치료를 했더라면…
그러면서 윤 교수는 BTK 억제제와 관련한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윤 교수는 "만성림프구성백혈병 2차 치료로 임브루비카를 투약 받은 환자가 서울아산병원 병원장에게 주치의인 나를 칭찬하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그는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이 재발해 굉장히 낙담한 채로 우리 병원에 내원한 환자였다"고 말했다.
그 환자가 쓴 편지는 처음 암 진단을 받고 난 뒤 힘든 항암치료를 받고도 좋은 결과를 못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다 윤 교수에게 왔더니, 그가 먹는 약으로 치료해줬는데 부작용도 별로 없고 효과도 좋더라. 먹는 약으로 치료받게 돼 너무 놀랍고 윤 교수에게 고맙다는 칭찬이었다.
윤 교수는 "사실 이 내용은 내가 받을 칭찬이 아니다. 한국 (보험 급여)시스템적 한계 때문에 1차 치료는 독성이 있는 항암화학요법으로 한다"면서 "만약 그 환자의 1차 치료를 내가 담당했다면 내가 욕을 먹고, 2차 치료를 담당한 선생님이 칭찬을 받았을 것"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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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환자도 좋은 치료 받을 환경 마련해줘야
그 정도로 임브루비카를 위시한 BTK 억제제의 효과는 우수하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실제 지난해 12월 개최된 '제64회 미국혈액학회(ASH 2022)'에서도 임브루비카는 CLL 및 비호지킨 림프종 영역 1차 치료제로서 가장 많이 다뤄진 약제로 각광받았다.
뿐만 아니라 윤 교수도 이러한 치료 환경 변화에 대해 "미국에서 BTK 억제제를 사용했던 리얼-월드 데이터가 나왔다. BTK 억제제들이 승인돼 있는 치료제뿐만 아니라 개발되고 있는 여러 치료제들도 있다"면서 "BTK는 만성림프구성백혈병, 외투세포림프종에서 굉장히 중요한 타겟이다. 이런 질환에서 BTK 억제제들이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치료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국내 만성림프구성백혈병 환자들도 이제 편하고 좋은 치료를 받을 환경이 마련될 때가 됐다"고 제시했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림프종 환자는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만성림프구성백혈병 치료 환경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급여 확대 장애 요인으로 환자가 고령인 탓도 있을 거라 조심스레 추측했다.
가령 B세포 급성 림프성 백혈병에 대한 소아 환자의 희귀 혈액암 치료는 보험 급여가 잘 이뤄지지만,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은 고령 질환이고 환자 수가 적어 보험 문턱을 쉽사리 넘지 못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분석.
하지만 이들 역시 누구보다 보험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일군 세대인 만큼, 좋은 치료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사회적 책무라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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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L 환자에게 전하는 윤 교수의 희망 메시지
만성림프구성백혈병 치료를 앞둔 환자들에게도 윤 교수는 "용기를 잃지 말고 잘 이겨내 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에 승인돼 있는 치료제들이 시간은 걸리겠지만 국내에 들어올 것이다. 더 좋은 소식은 다른 기전의 경구제, 복합요법에 대한 결과들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면서 "또 차세대 경구치료제 등도 개발되고 있으니, 조금 답답하고 어려움은 있겠지만 용기를 잃지 말고 잘 이겨내 달라"고 응원했다.
마지막으로 윤 교수는 환자들에게 신약 임상시험에 전향적으로 참여해 달라고도 강조했다.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은 다양한 신약 임상연구가 진행되는 질환이기 때문에 환자분들이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는 "임상시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경우도 있는데, 임상시험은 이미 전임상 단계에서 굉장히 많은 검증 단계를 거쳐서 임상 단계로 넘어온 약이다. 또 3상 임상의 경우는 1상, 2상 임상의 단계들을 거쳐 안전성과 효과가 검증된 약제"라고 설명했다.
특히 "3상 임상은 FDA나 EMA에서 승인을 목표로 하는 임상시험이기 때문에 비교군 자체가 미국, 유럽의 표준치료다. 이는 국내에서 보험급여가 안되는 굉장히 고가이고 효과가 좋은 치료제를 쓸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신약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선입견 없이 주치의와 충분히 논의한 후 판단하시면 좋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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