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이정수 기자] 지난달부터 시행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계도기간이 절반 정도 지난 상황이지만, 각계 입장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양측은 시범사업이 졸속 시행됐다는 점에 한해 공감대가 형성됐다.
15일 대한의사협회 지하1층 대강당에서 비대면진료를 주제로 열린 '제2회 바른의료연구소 토론회'에서는 결국 양보 없는 각계 입장만 재확인됐다.
의료계에선 시범사업까지 시행됐음에도 여전히 비대면 진료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놓지 않았다. 특히 필요성 측면에서 공감을 이루지 못했다.
조병욱 바른의료연구소 위원은 "비대면 진료가 도입돼야 할 필요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환자에 대한 의학적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직접적인 접촉 여부는 중요하다"며 "직접 느끼는 것과 간접적으로 보는 것은 다르다. 모니터링까진 인정되더라도, 치료와 교육이 필요한 진료는 어디까지는 환자를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한다. 이는 아무리 산업이 발달해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안전띠가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챙겨야 하는 불편함이라면, 대면 진료도 마찬가지다. 비대면 진료를 통해 일어나는 불상사는 극히 적겠지만, 그럼에도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대면 진료라는 불편함은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화 대한개원의협회의 의무부회장도 "대면진료가 원칙이 돼야 한다. 자율주행도 안전성을 이유로 허용되지 않고 있지 않나. 정부가 환자 안전에 무관심하다는 것에 경악스럽다. 그렇게 긴급한 것이었는지 물어보고 싶다"며 "입법되지 않은 것을 행정에서 추진한다는 것은 과도한 권력남용이다. 의정합의체 등에서 제대로 된 비대면 진료를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의사는 환자 안전을 가장 먼저 1차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보수적이고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엄격한 잣대를 대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기에 쉽게 비대면 진료를 찬성할 수 없는 것"이라며 "특히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 의료보험이 잘 돼있고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비대면 진료는 더욱 숙고해야 하고, 시스템을 더 다듬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들과 달리 의료계 측 패널로 참석한 이세라 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은 '조건부 비대면 진료 찬성'과 '비급여 적용'을 내걸었다.
이세라 부회장은 "조건부로 비대면 진료를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하면 대다수 의사들이 비난을 할 수 있고, 반대로 원격의료산업협의회 분들도 비난할 수 있다. 그만큼 어려운 난제다. 이런 조건들이 맞아떨어진다면 비대면 진료도 할 수 있다고 본다"며 "의사들은 비대면 진료를 최대한 안전하게 하는 방법들을 다 알고 있다. 다만 저수가 구조가 지속하는 한 비대면 진료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기가 복용해오던 약을 처방해달라고 요구하는 때가 있다. 그럴 땐 비대면 진료를 비급여로 하는 것을 제안한다"며 "만약에 비대면 진료를 비급여로도 하겠다고 하면 의사가 책임지는 만큼 비용을 받으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비 급증이나 과다 이용 등 많은 문제들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의료계 '수용 불가'에 산업계선 '데이터 활용해야'
이에 맞서 산업계에서는 한시적으로 적용되면서 확보된 데이터를 활용해 비대면 진료 활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장지호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공동회장(닥터나우 이사)은 "지난 3년간 이뤄진 한시적 비대면 진료에 대한 평가가 나오지 않았다. 성과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범사업이 밀어붙여진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한시적 비대면 진료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여러 데이터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현행 시범사업에는 이같은 데이터를 참고한 부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이미 한시적으로 적용되면서 시범사업 과정을 거쳤다고 본다. 성과를 평가하는 자리를 갖고 효용성을 분석해서 안전성을 담보로 한 비대면 진료 대책이 나와야 한다"며 "극히 제한돼있는 기준보다는 일상생활 중 대면 진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보조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선재원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이사(메라카플레이스 공동대표)는 "현재 시범사업은 비대면 진료가 제대로 되지도 않으면서 의료기관에 부담만 많이 주는 형태다. 환자가 여러 조건에 맞아야만 비대면 진료를 볼 수 있는데, 그 검증 과정을 의료기관에서 진행해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진행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약 배송 문제엔 '받아 들이기 힘들다'
이들은 이처럼 비대면 진료에 대한 시각이 엇갈린 것과 달리 '약 배송' 문제에 대해서는 합치된 의견을 내놨다.
이영화 의무부회장은 "진료는 비대면으로 하는데 약은 직접 가서 받으라고 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약국이 편의점처럼 걸어서 몇 백미터만 가면 다 있고 24시간 365일 문 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진료만 비대면으로 해야 하나. 결국 정치 문제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세라 부회장은 "약물 선택권을 환자에게 주고 선택분업으로 가야지만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면서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비대면 진료를 의사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적어도 비대면 진료라면 병원에서 '약국 대신 택배로 보내드릴까요'가 가능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변경돼야 그나마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지호 공동회장은 "약사회에서 '안전하지 않으니까 반대하겠다' 외에 합리적인 비판이나 우려에 대해 말씀해주신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며 "비대면 진료가 일부 이렇게 걸음을 떼고 있는 상황에서 약은 대면으로 받는 것이 일반 국민 상식에 과연 부합할지 의문이다. 더 발전된 토론이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선재원 이사도 "비대면 진료만 되고 약 배송은 안 되고 있는 황당한 상황이다. 어떤 우려가 있다면 불식시키고 함께 논의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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