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의료원은 국내 첫 민간 주도 전주기 백신개발 플랫폼인 '백신혁신센터'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 백신주권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20일 밝혔다.
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18년 스페인독감(H1N1)부터 가장 최근에 발생해 현재까지 708만 명의 사망자를 낸 코로나19까지 신종감염병은 항상 주기적으로 찾아와 인류를 위협했다.
이에 다음 팬데믹에 대한 사전 대비 필요성을 절감하고 고려대의료원이 설립한 것이 바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백신혁신센터'다.
백신혁신센터는 효과적이고 안전한 백신 개발을 통해 다음 감염병에 대비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정희진 교수(구로병원 감염내과)를 수장으로 센터 운영을 담당하는 연구지원부, 기초·비임상연구를 추진하는 혁신연구부, 임상시험 연구를 맡은 개발추진부로 진용을 짜고 고려대의 감염병 연구 핵심 인력들을 모두 투입해 백신개발을 위한 최적의 구성을 갖췄다.
가장 먼저 연구의 기반이 될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백신개발에 써달라며 100억원을 기부한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명예 회장의 이름을 딴 메디사이언스파크 정몽구관으로 2025년 상반기 이전 예정인 백신혁신센터는 국내 최고 민간 백신개발연구소 목표에 걸맞는 첨단 인프라를 구축하고 연구실 오픈을 앞두고 있다.
연구실에는 위험한 신종병원체를 안전하게 다루며 백신을 연구할 수 있는 대규모 생물안전 3등급(Biosafety Level 3; BL3 / Animal Biosafety Level 3; ABL3) 시설이 들어선다.
연구자들이 다양한 유형의 신종병원체를 종합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유전체 분석, 세포 배양, 면역 화학 분석 및 단일세포전사체 분석 장비 등 최고 수준의 장비를 갖춘 거대한 규모의 중앙실험실이 구축된다.
IVIS 광학영상시스템, 이미징 기반 초고속 세포 분석 장비, G3 로봇 워크스테이션 등 고가의 첨단 장비에 과감히 투자해 최상의 백신 연구개발 환경이 조성됐다.
임상시험검체 분석에 대한 정부의 공식인증을 의미하는 GCLP(Good Clinical Laboratory Practice; 임상시험검체분석 관리기준) 시설도 구축된다. 해당 시설들은 전처리, 검체분석 및 실험, 자료 보관 등 최상의 실험 장비를 도입해 교차오염을 방지할 수 있는 분리 독립 공간이다.
고려대의료원은 대학 연구기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BL3/ABL3를 보유하게 됨으로써 GCLP 인증 이후에는 백신개발에 반드시 필요한 임상시험검체 분석 기능을 포함해, 고위험 신종 병원체의 백신 연구개발 전주기 과정을 모두 실행할 수 있는 독보적인 역량을 갖춘 연구기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4년간 성장해온 백신혁신센터, 모더나와 협력
지난 2021년 설립 후 백신혁신센터는 여러 기관 간의 협업을 통한 유기적인 백신개발 체계 구축에 사력을 다해 왔다. 고려대의료원 산하 안암, 구로, 안산병원을 포함해 전국 8개 대학병원이 함께하는 HIMM(Hospital Infection Morbidity Mortality) 네트워크가 그것으로 이 체계를 통해 환자검체를 확보하고 검체로부터 병원체를 분리해 일종의 뱅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후 병원체 유전체 분석, 변이주 분석이 이뤄지고 이후 백신항원디자인 및 개발, 항원효능평가 전임상시험 등 기초연구가 진행된다.
국내 최초 민간 백신 플랫폼 콘트롤타워이기도 한 HIMM을 통해 백신혁신센터는 현재까지 임상에서 확보된 호흡기 검체 472건에서 35건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103건의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를 확보해 유전체 DB로 구축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부터는 HA 및 NA 유전자에 대한 분자계통학 분석을 완료해 H3N2바이러스임을 확인하는 성과도 거뒀다. 센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8개 유전자에 대한 빅데이터 기반 분자통계학 분석과 지속적으로 유행하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 변이 바이러스에 대해 세포주 기반 시험관내 성장 특성 연구도 진행할 예정이다.
확보된 백신 후보 물질이 실제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는 백신으로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임상시험이 필수적이다. 고려대의료원 백신혁신센터는 그간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인플루엔자백신 및 국산 신종인플루엔자백신, 스카이코비원 승인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다양한 임상 연구 경험과 노하우를 확보해 국제적으로도 최고 수준의 임상시험 능력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7월 모더나 최고의학책임자(CMO)인 프란체스카 세디아가 고대의대를 방문해 초대 백신혁신센터장이던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를 만났다. 바로 mRNA 기반 한타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는 사업인 '프로젝트 H'를 위해서다. 가장 혁신적인 백신개발 플랫폼인 mRNA기술을 보유한 모더나와 세계 최초로 한타바이러스를 발견한 고대의대 미생물학교실 이호왕 박사의 연구 유산을 이어받은 고대의대 연구진이 힘을 합치는 것이다. 현재 소동물을 대상으로 비임상 효능시험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연구진들은 2027년 임상1상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타바이러스는 세계보건기구(WHO)와 대한민국 질병관리청이 앞으로 인류에게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감염병, 즉 '질병 X(Disease X)'로 선정한 바이러스 중 하나이다. 프로젝트 H를 통해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mRNA 기반 한타바이러스 백신이 개발돼 상용화된다면 국민 건강뿐 아니라 글로벌 감염병 위기에 대한 대비와 대응에 커다란 기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모더나 외에도 백신혁신센터는 국내 바이오기업들과 활발히 협력하고 있다. 이미 지난 2022년 SK바이오사이언스와 손을 잡고 신종·변종 감염병에 대한 감시, 임상네트워크 구축 및 병원체 유전체 DB구축, 특성 분석 등 3년 50억 규모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바이러스 벡터 기반 항원 발현 연구, 국내 기술 기반의 mRNA 백신 플랫폼 개발, 원천기술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고려대의료원은 가까운 미래에 현재보다 한층 고도화되고 발전된 백신 플랫폼을 마련해 팬데믹 발생 시 신속한 백신 개발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인재양성을 통한 국내 백신 R&D 생태계 확대도 꿈꾸고 있다. 백신혁신센터 설립 이래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백신 전문가 양성가 교육 프로그램'이 그것으로 지난 3년간 약 850명의 대학, 연구기관은 물론 정부기관과 기업체 관계자들이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또한 국제 심포지엄과 세미나도 활발히 주도하고 있어 국내외 유수기관들과의 학술적 협력 가능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윤을식 의무부총장은 "진정한 의료기관이라면 눈앞에 질병 해결에만 급급한 것이 아닌 다가올 질병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코로나19 때 절감했다. 백신 개발에는 2~3년의 단기 연구 과제가 아닌 10년 이상의 장기 연구를 통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만큼, 메디사이언스파크와 백신혁신센터를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전주기 백신개발 플랫폼을 구축해 대한민국 의료계에 새로운 모델을 창조하겠다. 또한, 세계에 통용될 수 있는 안정적인 백신 개발을 반드시 성공시켜 대한민국 백신주권 확보와 글로벌 보건위기 대응에 기여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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