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혈우병은 혈액응고인자 결핍으로 인해 나타나는 출혈성 질환이다. 혈우병은 대부분 성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되지만 혈우병 환자의 약 30% 가량은 가족력 없이 새로이 발생한(de novo)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혈우병은 X 염색체에 관련된 유전 질환이라 주로 남성에게 발병한다는 특징이 있다.
▲인하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박정아 교수
혈우병 치료는 현재 정기적으로 혈액응고인자를 주입하는 예방요법을 통해 일상생활을 무리없이 유지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그럼에도 혈우병은 질환 관리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고 환자들이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돕는 전문 인력 및 기관이 필요하다. 출혈 및 합병증 예방을 위해 꾸준한 관리가 필요해서다.
특히 혈우병을 앓고 있는 소아청소년 환자의 경우 더욱 그렇다. 사춘기를 맞은 환아의 경우 주변 친구들에게 자신의 질환을 숨기고 싶어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인하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박정아 교수
<사진>는 "환아들이 자신의 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혈우병이 있어도 각자의 개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례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인천광역시 내에서 유일하게 소아청소년 환아들을 대상으로 혈우병 치료를 활발히 전개해고 있는 인물.
특히 그는 병원 내 '혈우병 어울림 교실'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혈우병 인식 개선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혈우병 인식 제고를 위해 "터놓고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질환을 숨기다 보면 만성 통증 등 만성 합병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신건강의학과와의 협진을 통해 어울림 교실 내에서 혈우병 환아들이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박정아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Q. 혈우병은 어떤 질환인가?
= 혈우병이란 혈액의 지혈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외상으로 인해 출혈이 있을 경우 혈관이 수축하고 혈소판이 달라붙어 응고되는 작용이 필요한데, 이 때 응고 작용의 역할을 하는 혈액응고인자의 결핍으로 인해 발생한다.
혈액응고인자가 결핍된 혈우병 환자는 지혈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출혈이 멎지 않는 증상이 나타난다.
혈우병은 선천적 혈우병과 후천적 혈우병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의 경우 환자의 약 50%가 가족력이 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혈액응고인자 8인자가 결핍된 A형 혈우병 환자이다. 후천적 혈우병의 경우 혈액응고인자 8인자에 대한 자가면역항체가 생기는 경우를 말한다.
Q. 국내 혈우병 환자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 전 세계적으로 약 17만 명의 혈우병 환자가 있으며, 아직 진단을 받지 않은 환자까지 포함할 경우 약 40만 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는 약 2,200명의 혈우병 환자가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로 경증 혈우병 환자의 경우 아직 질환을 진단받지 못한 경우도 있어 약 4,0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집계된 2,200명 중 혈액응고인자 8인자의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는 A형 혈우병 환자가 약 80%, 혈액응고인자 9인자의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는 B형 혈우병 환자가 약 20%를 차지한다.
Q. 혈우병 치료 요법 중 필요 시 보충요법과 예방요법에 대해 설명해달라.
= 대표적인 혈우병 치료 요법에는 출혈 시 주사하는 보충요법과 출혈 예방을 위해 미리 정기적으로 주사하는 예방요법이 있다. 성인인 경우 규칙적으로 혈액응고인자를 주입하는 번거로움으로 인해 대다수가 필요 시 보충요법을 시행하고 있으며, 소아의 경우 대부분이 예방요법을 시행하고 있다.
전체 환자의 50%가 예방요법을 시행한다고 보면 되며, 중증 환자의 경우 60% 이상, 중등증 및 경증 환자의 경우 5~25% 내외에서 예방요법을 시행 중이다.
Q. 혈우병 환자는 정맥 주사 시 병원 내원이 필수적인가?
= 환자 스스로 정맥 주사가 가능하도록 자가주사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일정 시간, 일정한 양을 투약해야 하므로 많은 제약사가 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인하대학교 병원에서도 환자 및 보호자 자가주사 교육을 통해 질환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반감기 연장 제제가 나오면서 A형 혈우병 환자의 경우 3~5일에 한 번 투약, B형 혈우병의 경우 7~14일에 한 번 투약으로 투약 간격이 늘어나 환자의 편의성이 개선됐다.
Q. 혈우병 치료에서 예방요법의 이점은 무엇인가?
= 출혈 시 보충요법은 출혈이 발생하고 난 후 혈액응고인자를 주입하기 때문에 관절병증 등의 합병증 발생 위험이 높다. 반면 예방적 차원에서 혈액응고인자를 주기적으로 투여해 혈액응고인자 최저치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예방요법은 장기적으로 관절 보존, 합병증 예방, 사전 출혈 예방 효과 등의 이점이 있다.
Q. 혈우병 환자들에게 질환 관리에 있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 일정한 혈액응고인자 최저치를 유지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규칙적인 투약을 강조한다. 예방요법을 시행 중인 환자들에게는 특히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예방요법을 시행할 것을 강조한다.
또 소아 환자의 경우 정맥을 찾기가 어려워 투약 시 병원에 내원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에 소아 환자 보호자는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활동을 어느 정도까지 제한할 것인지에 대한 어려움을 마주한다.
활동량이 많은 환자도 예방요법을 시행하면서 활동량이 특히 많은 날에 혈액응고인자를 추가 투약하는 방법을 권장하고 있다. 아울러 스스로 혈액응고인자 수치를 확인하는 약물동태학 검사를 통해 스스로 질환 관리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환자 중 혈액응고인자 최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수영, 축구, 농구 등 무리없이 일상을 생활하는 환자들이 있다. 혈우병이 활동을 제한하는 질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Q. 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진료 중인 혈우병 환자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 A형 혈우병 및 B형 혈우병 이외 폰 빌레브란트병 등의 출혈 질환 환자를 포함해 약 40여 명이 인하대병원에서 추적 관찰 및 치료를 받고 있다.
인천 및 서부권역에 거주하는 혈우병 환자들이 주로 인하대병원을 방문해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인천은 서울과 가깝다 보니 서울에 있는 한국혈우재단 부설의원을 통해 치료를 받는 분들도 있다.
Q. 올해부터는 혈우 환자들을 위한 '혈우병 어울림 교실'도 열었다.
= 이전에는 환자와 환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활발했으나 코로나의 장기화로 인해 모두 중단된 상황이었다.
올해부터는 코로나로 인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혈우병 환자와 가족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환자 혼자가 아니라 가족, 의료진, 지역사회 모두가 함께 극복하는 질환임을 알 수 있도록 정보 공유의 장을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정보 공유를 통해 환아들이 자신의 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혈우병이 있어도 각자의 개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례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혈우병을 소재로 한 웹 무비 '안나푸르나'도 어울림 교실에서 상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한 환자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 반응이 좋았다. 주로 소아 환자와 환자 보호자들이 참석하다 보니 환자 보호자들의 경우 나중에 우리 아이가 안나푸르나 주인공과 같은 상황을 겪게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의료진도 마찬가지로 환자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고민을 가지게 될 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혈우병 환자의 이야기를 담은 웹무비 안나푸르나 주요 장면.
Q. 국내 혈우병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해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 정기적인 교육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사교적인 소모임 등을 통해 서로 정보를 교류하는 기회가 마련되면 좋겠다. 혈우병의 경우 한국코헴회에서 매년 여름 환자들이 모여 여름 캠프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연령대가 조금 높다 보니 나이가 어린 혈우병 환자를 위한 캠프 프로그램이 별도로 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소아청소년과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환아들이 청소년기를 겪으면서 자신의 질환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사춘기를 맞은 환자는 주변인에게 자신의 질환을 숨기고 싶어는 경우들이 많다.
질환을 숨기다 보면 만성 통증 등 만성 합병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질환에 대해 터놓고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먼저 청소년기를 겪은 혈우병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소아 정신건강의학과와도 협진을 통해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
혈우병 환자는 이제 일반인들과 평균 수명이 비슷해졌으며, 치료제와 사회적 보장 제도의 발달, 사회적 인식 개선을 통해 치료 환경도 과거보다 매우 개선됐다. 예방요법을 통해 질환을 꾸준히 관리한다면 혈우병 환자도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혈우병은 혼자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질환이 아니다.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 의료진, 국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며, 교육 시스템, 사회적 보장 여러 요소가 필수적이다. 혈우병 환자는 사회적 측면에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도 잠재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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