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치료는 세계 최고, 수술은 꼴찌‥뇌전증 '수술 로봇' 지원 절실

국내 수술 가능한 병원 6곳 뿐‥서울대병원도 로봇 없어 어린이 수술 1년째 중단
보건복지부-수술병원-뇌전증지원센터 참여하는 '뇌전증수술센터 관리위원회' 제안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3-10-31 06:04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굴지의 병원조차 '수술 로봇'이 없어 뇌전증 수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뇌전증 약물 치료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꼽히지만, 수술은 꼴찌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다.

대한뇌전증센터학회 홍승봉 회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위암, 갑상선암, 전립선암의 로봇 수술은 환자들의 선택 사항으로 로봇이 없어도 수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뇌전증 로봇 수술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항경련제들을 처방할 수 있고 의료보험이 된다. 그러나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은 수술 이외에 치료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뇌전증 수술이 가능한 병원은 현재 국내에서 6개 뿐이다. '수술 로봇'이 있는 병원들만 수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심성서울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은 수술 로봇이 있어 뇌전증 수술을 할 수 있으나, 서울대병원은 로봇이 없어 어린이 뇌전증 수술을 1년째 못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뇌전증 수술을 받으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하고, 수술 인력의 부족으로 더 이상 수술을 예약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대한뇌전증센터학회를 비롯, 많은 뇌전증 전문가들이 정부 측에 수술 로봇의 지원을 요청해 왔다.

간곡한 요청에 다행히 보건복지부는 움직였다. 2021년에 삼성서울병원(7억 원), 2023년에 해운대백병원(7억 원)에 수술 로봇을 지원한 것.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2024년에는 로봇 지원 예산이 없어졌다. 복지부는 뇌전증 거점 치료 센터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지원에 대해서는 아직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게는 약물 치료보다 수술이 보다 '비용효과적'임을 피력하고 있다.

수술 로봇 한 대의 정부 지원금은 약 6-7억 원이다. 로봇은 한번 구입하면 10-20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1년에 3천만 원을 지원하는 꼴이다.

반면 뇌전증 환자의 1년 약물 치료 비용은 약 1500억 원(추정치)이지만, 2015년 NECA 연구들에 의하면 뇌전증 수술 2-5년 후에 약물 사용량은 26%, 전체 의료비는 50% 감소했다. 이는 곧 뇌전증 수술을 지원하면 의료 비용이 훨씬 더 절감됨을 의미한다.

홍 회장은 "중증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은 수술을 받지 못하면 돌연사 위험이 30배 높다. 로봇 한 대는 매년 수십 명 뇌전증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고, 10년 동안 수백 명을 살린다"고 설명했다.

다만 뇌전증 수술은 인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치료법으로 정부가 관리하지 않으면 감소하게 돼 있다.

뇌전증 수술 로봇은 1년에 사용 빈도가 10-30건으로 수지가 맞지 않아 병원이 구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뇌전증 수술팀이 있어도 수술 로봇이 없어 수술을 못하는 경우도 흔했다.

더불어 뇌전증 수술은 어려운 기술이 필요함에도 수가가 낮고 병원에 지원이 없어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뇌전증 수술은 신경과, 소아신경과, 신경외과, 전문간호사, 신경심리사, 신경영상의학과, 신경핵의학과로 이뤄진 전문팀이 필요하고 전문간호사, 비디오뇌파검사 장비 및 기사 인력 등 갖춰야 할 것이 많다. 일반적으로 수술 시간이 4-6시간이라면 뇌전증 수술 준비에 필요한 시간은 150-200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뇌전증 수술을 담당하고 있는 신경과, 소아신경과, 신경외과 전문의들은 정년으로 인해 1세대는 줄줄이 퇴직을 하고 있다. 숙련된 의사들이 사라지면서 조만간 엄청난 진료 공백이 예상되고 있다.

그러므로 홍 회장은 "뇌전증 수술을 모니터링하고 지원하는 보건복지부-수술 병원-뇌전증지원센터가 참여하는 '뇌전증수술센터 관리위원회'가 빨리 구성돼야 한다. 정부는 뇌전증 수술을 활성화하기 위해 장비와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뇌전증 수술을 해외와 비교했을 시, 우리나라는 현저하게 차이가 나고 있다. 뇌전증 수술 건수는 미국이 년 3500건, 일본 1200건이지만, 한국은 100건 수준이다.

국내 뇌전증 환자는 약 36만 명으로 집계되는데 그 중 약 70%는 약물 치료에 의해 발작이 잘 조절되므로 일상생활에 큰 문제가 없다. 

이 가운데 나머지 30%는 약물치료에도 조절이 되지 않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으로 구분된다. 2가지 이상의 항뇌전증약을 복용해도 경련 발작이 재발하는 악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는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과 장애를 겪는다. 약물 난치성 뇌전증은 약으로 치료할 수 없으나 뇌전증 수술을 받으면 돌연사를 1/3로 줄이고, 사망률은 1/2로 줄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국내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 수를 고려했을 때, 1년에 300-400건의 수술이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홍 회장은 "뇌전증 수술은 너무 힘들어서 한 개 병원이 1년에 10-30건밖에 못한다. 한국에서 뇌전증 수술이 시급히 필요한 중증 난치성 뇌전증 환자 수는 약 3만7000명이고, 수술을 고려해야 하는 환자 수는 약 12만 명이다. 더욱이 매년 약 1000명의 수술이 필요한 뇌전증 환자들이 새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뇌전증 수술을 늘리기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중장기적으로 전국에 15개 이상의 중증뇌전증치료센터를 지정하고 수술 로봇과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분명한 것은 수술 로봇이 없으면 뇌전증 수술은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뇌전증 수술 로봇은 20년 전에 개발되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뇌전증 수술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스위스 Ryvlin 교수는 수술 로봇이 없으면 정확도가 떨어지고 뇌출혈 위험이 높아진다고 보고한 바 있으며, 삼성서울병원 신경외과 이승훈 교수와 세브란스병원 장원석 교수도 뇌전증 수술에는 로봇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홍 회장은 "뇌전증 수술 전극 한 개를 뇌 안에 삽입하는데 약 30분이 걸리는데 20개를 삽입하려면 600분(10시간)이 걸리고 부정확해 진다. 하지만 수술 로봇이 있으면 100분 안에 20개 전극을 뇌 안에 정확하게 삽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5년 동안 60억 원을 투자하면 2024년 로봇 2대, 2025∼2028년 8대, 총 10대를 지원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수술 로봇은 한 번 도입 후 10-20년 사용하기 때문에 더 이상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는 "5년간 60억 원을 투입하면 매년 300명 이상의 어린이와 젊은 뇌전증 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복지부와 6개 뇌전증수술병원 의사들의 회의가 시급히 필요하며, 정부는 뇌전증 수술을 하는 의사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수술을 안 해본 의사는 수술 가능성, 수술 방법, 어려움과 중요성을 잘 모른다. 6개 뇌전증 수술 병원 의사들은 보건복지부와의 수술 대책 회의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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