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의, 의료사고 시 유감표시 제도화 우려…법제화 난항 예고 

醫 "유감이라는 감정, 제도로서 강제할 수 없어"
환자단체, '의료사고 유감 표시 증거능력 배제법' 법제화 요구
유감 표시 법제화 받되…사망사건 포함한 민형사 면책권 시행 촉구

김원정 기자 (wjkim@medipana.com)2024-07-15 05:58

 
[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중중, 외상 등 수술을 집도하는 임상의사들을 중심으로 지난 11일 제5차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한 내용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고에 따른 유감이라는 감정을 제도로서 강제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법제화 추진 시 난항이 예고된다.

논란이 된 의개특위 논의 내용은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의 예를 갖춘 위로나 유감 표시를 제도화하는 방안에 대한 부분이다.

이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서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의 울분 해소를 위해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의료사고 유감 표시 증거능력 배제법' 법제화로,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에 대해 의사가 일정기간 이내에 사과·유감·위로 등을 표시하는 경우, 사과·유감·위로 등의 내용이 증거능력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13일 의료계 관계자는 메디파나뉴스와 전화에서 "미국 영국 등에서 의료진이 유감 표시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시행하는 곳도 있지만 소송 건수 감소 등의 효과는 불분명하다. 법으로 강제하는 것보다는 의료기관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시행하는 프로그램이 더 효과가 있다는 보도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간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인의 사과를 과실 인정으로 여겨 온 정서나 현실 등을 고려한다면, 의료인의 사과를 직접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하더라도 환자들이 승소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예측이 가능해 반대로 소송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A 대학병원 임상외과 교수는 "외상, 응급 분야 의사들은 환자들의 생명이 경각에 달해서 병원에 오는 경우들을 많이 본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일정 기간 안에 유감을 표시하는 것을 법제화한다면 굉장히 의사로서는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부분이 법제화 된다면, 더 어렵고 힘든 과에는 지원하지 않거나 기존 의사도 이탈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그런 과에 더 불이익을 많이 준다는 생각이 든다. 최선을 다했지만 살리지 못한 후 의사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인 데 환자에게 또다시 유감 표명을 법적으로 강제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B 대학병원 임상의는 "법은 도덕을 강요할 수 없다. 유감표명은 의사의 감정이 들어간 부분인 데 이를 법적으로 강제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언급했다.

그는 "지금도 의료사고 책임이 의사에게 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이에 대해 서로간에 합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사고가 소송까지 가는 것은 의사가 생각하기에 본인의 잘못이라고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데 어떻게 진심어린 유감 표명이 가능할 수 있겠나. 아무리 소송에서 법적인 근거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해도 무리가 있다"고 했다. 

◆ 유감 표시 법제화 받되…사망사건 포함한 민형사 면책권 시행 촉구
임상의사들의 우려와 다른 시각도 나온다. 증거능력을 배제한 유감표현을 하는 '의료사고 유감 표시 증거능력 배제법'을 받아들이면서 의료 사고 시 사망사건을 포함해 민형사 면책권에 대한 부분을 함께 법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의대 오주환 교수는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의료사고 유감 표시 증거능력 배제법'에 대해 "단어를 정확히 해야 한다. '유감'과 '사과'는 엄밀히 다르다. 유감은 결과가 안 좋은 것에 대한 표명이다. 아시아권이나 동양권에서는 안 좋은 일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는 원인 제공자가 아니라도 유감이나 위로를 표명할 수 있다. 그것을 이제 환자단체에서 의무화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아주 적절하다고 본다. 특히 유감 표명을 법정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유감을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예로, "미국 앤아버(Ann Arbor)에 있는 미시간대학병원(University of Michigan)에서는 불행한 결과가 생기면 의료진이 환자와 보호자 가족에게 사과하도록 지시가 내려졌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결과나 소송 등은 모든 부분을 병원이 책임지는 것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의료진은 병원 방침에 따라 유감을 표명했다. 이를 통해 환자와의 소송이 줄었다는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도 유감 표명을 할 경우 환자 울분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소송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된다. 또 소송을 한다고 해도 증거로 사용되지 못하기 때문에 의료진 입장에서는 안 받아들일 이유가 없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이 제일 난해한 부분은 사망사건이다. 필수의료 분야에서 헌신적으로 노력해온 사람들이 지금 점점 퇴장하고, 새로운 진입은 없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망사건을 포함해 민형사 면책을 하고, 재원은 배상책임보험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세금으로 조달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앞으로 논의가 이루어질 때 이러한 수준으로 안이 만들어지고 환자단체들이 요구하는 부분까지 병합해서 하나의 패키지로 움직여서 진전시켜야지, 일부만 진전시키는 것은 간호법 사태처럼 동의되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으로 전망했다.

◆ 감정위원 확대…"영국 GMC와 같은 전문 의료법정 대안될 수 있어"
제5차 특위에서 논의된 내용 중 감정위원 풀을 현재 300명에서 1000명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놓았다. 의료사고 감정에 대한 신뢰성 향상을 위해서는 감정위원 확대보다는 전문 의료법원의 성격을 갖춘 기관 설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주환 교수는 "이번 특위에서 논의된 감정위원 확대는 실효성이 별로 없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감정위원 숫자를 늘려서 될 문제가 아니다. 의학적 판단은 과학인 것이고, 의학적이지 않은 판단, 비의료인의 판단은 과학에 근거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가치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립적인 과학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사회적 가치를 그 자리에 메우는 것은 사회적인 손실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감정위원회의 대안으로 의료정책연구원 안덕선 원장님이 여러 차례 언급했던 영국의 제너널 메디컬 카운슬(General Medical Council, GMC) 모형을 제안했다.

오주환 교수는 "GMC는 영국의사협회 외부에 있는 기관으로, 상근하는 의사들로 구성해 법원처럼 1심 판정을 한다. 이곳에서 의사 실수를 확인하고 과오에 대해서 판정해 면허취소나 면허정지, 사과, 주의 등 다양한 수위의 결정을 한다. 이러한 결정은 의사들한테는 굉장히 강력하다. 의사들이 GMC 앞에서 시위를 할 정도로 굉장히 냉정하고 냉철한 조적이다. 노동법원처럼 전문 법원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한국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실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서 유감 표명의 경우에도 한국에도 GMC와 같은 기구를 만들어서 환자에게 사과를 하라고 한다면, 동료의사들의 판단해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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