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의료계 일각에서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 내용이 상식적 수준이고, 관점에 따른 해석이 상이할 수 있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이 지침에 대한 환자단체 입장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했다.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법적 리스크를 안고 의무적으로 환자를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19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정부에서 최근 발표한 '의료법상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에 대해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응급환자 수용의무 관련 지침'도 함께 발표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또 "국회와 정부는 골든타임 내 인근 모든 응급의료기관이 수용곤란 상황 시 인력·시설·장비 상황이 가장 좋은 권역응급의료센터 또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나 중앙응급의료센터 상황실에서 지정한 응급의료기관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마련된 일정 중증도 수준 이상의 중증 응급환자를 의무적으로 수용하고, 수용 후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필요적 감면하고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할 수 있는 입법적·제도적 조치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오후에 열린 '응급의료 일일 브리핑' 질의응답에서 환자단체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한 정부 의견을 묻는 질문에 정통령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응급환자의 수용 곤란, 그 지침 관련해서 그동안 소방청, 응급의학회를 포함한 여러 전문가들과 같이 논의를 해왔다. 어느 정도 진척된 부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논의들을 계속해서 추진하고 또 지침화 또는 제도화하기 위해서 노력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병원에 응급 환자가 많이 있어서 도저히 일부 환자들은 바로 치료가 불가능하고 대기하게 되는 상황들이 벌어질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조금 더 일찍 치료를 할 수 있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병원이 다 환자를 수용하기 어려워서 특정 병원에서 즉시 치료가 어려운 경우, 불가피하게 환자를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경우에는 그 병원의 여러 가지 책임을 조금은 제한을 두는 방안들을 고려하면서 이런 수용과 관련된 지침들이 정비돼야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醫, 진료거부관련 지침에 '실효성보다는 생색내기'
의료계 일각에서는 우선 정부가 공개한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에 대해 지속적으로 요구가 있었던 부분이기 때문에 긍정적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하지만 지침 내용이 상식적 수준이고, 지침 해석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법적인 부분에서 실효성이 없고, 의료진을 달래려는 생색내기용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A대학병원 교수는 메디파나뉴스와의 통화에서 "치료를 제공할 수 없으면 환자를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동안에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서 의료계에서 이에 대한 요구가 있어왔는데 안 해 줬다. 그런데 추석연휴기간인 16일에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이라고 발표했다. 이 지침은 의료진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여지긴 하는데 실제로는 너무 당연한 것이라서 추석연휴에 의료진 부담이나 불만을 좀 덜기 위한 생색내기식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사법적인 부분인데 실제로 이 기준이 면책에 대한 기준이 된다고 볼 수 없다. 예를 들면, 폭행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진료를 실제로 방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데 이를 두고 진료를 안 보겠다고 하면 면책사유가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지침의 내용만으로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내용들이다"라며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또 "환자에게 임시적인 치료를 하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려면 전화를 돌려야 하고, 그러다가 환자상태가 악화돼 사망하거나 부작용이 발생하면, 환자를 받은 병원에서 책임을 떠안게 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C대학병원 교수는 "예전부터 얘기해왔던 것이라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지침 이후 의료사고에 대한 판례에도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일단은 긍정적"이라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정부 지침에 맞춰 환자단체에서 요구하고 있는 '응급환자 수용의무 관련 지침' 마련에 대해서는 난감하다는 의견이 다수 확인됐다.
A대학병원 교수는 "동의가 안 된다"며 "무조건 환자를 받으라는 뜻과 같다. 그러면 역량이 되지 않는데 환자를 받아서 어떻게 하란 말이냐. 환자를 케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못 받은 것일 뿐이다"라고 토로했다.
아울러 "정부에서 내놓은 이 지침으로 인해 환자단체가 반발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이러한 파장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심사숙고해서 정책을 발표해야 하는데 환자들과 의사들을 편가르기 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B대학병원 교수도 "응급, 중증 환자를 보는 의료진은 리스크가 높은데 그것을 전혀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의무적으로 환자를 받아야 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의료과실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은 면책돼야 한다. 민사적 책임에 있어서도 공적 영역에서 보험을 지원하거나 펀딩을 마련해서 의료사고 보상을 하고 나머지 재원은 기관 등에서 일부 받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의료진에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부분도 없이 감면할 수 있다는 얘기는 와 닿는 것이 없다"고 했다.
C대학병원 교수 역시 "환자단체에서 주장하는 데로 하기에는 현재의 시스템이 받쳐주지 못한다. 응급의료체계뿐만 아니라 의료체계 자체가 완전히 뒤집어져야 한다. 전체 의료체계 안에서 응급의료는 일부분이다. 때문에 응급의료만 바꿔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결국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차근차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의료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역 거점 국립대를 중심으로 재정적,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규정 혁파가 중요하다. 우리나라 국립대는 규정에 얽매여서 아무것도 못 바꾸고 있다"며 "의대만 지원해서는 대학 자체의 경영난을 해소하기 어렵다. 각 국립대의 전체적 관점에서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근본적 의료사태 해결 위해선 "의대정원 증원 정책 철회해야"
추석 이후 응급의료 상황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대정원 증원 정책을 철회해야 하며,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119 대원들의 역량강화를 비롯해 의료체계 전체를 뒤집는 장기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B대학병원 교수는 "현재의 의료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허리를 담당했던 전공의들이 돌아와야 한다. 정부에서 의대정원 증원 정책 철회하고 의대교육체계가 제대로 돌아가게 하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119 대원들의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 대원들마다 역량에서 굉장히 차이가 나는 것도 문제다. 환자 정보를 누락시킨다거나 적절한 처치가 안 된 상태로 온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응급의료사태를 좀 더 면밀하게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구별하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피상적 부분만 사람들이 얘기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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