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국회가 응급실 수용거부 '정당한 사유'를 정의하기 위한 법안 논의에 나선다. 배후진료 불가로 환자를 수용하지 않은 병원에 내려진 행정처분 철퇴가 적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응급의료 현장이 분개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에선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오는 4일 제2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법안 19건을 심사한다. 이번 소위에는 지난달 논의하지 못한 법안이 상정됐다.
의료계가 주목하는 법안은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발의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응급의료종사자가 응급의료행위 중 발생한 사상에 대해 고의나 회피가능한 중대한 과실이 명백하게 입증되지 않은 경우 행사책임을 면제하는 내용 ▲응급의료기관이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를 법에 명시하는 내용 등 두 가지가 핵심이자 쟁점이다.
개정안은 응급실 수용거부 정당한 사유로 ▲응급실 병상 부족 ▲응급의료인력 부족 ▲협진 및 최종 치료과 부재나 해당 의료인력 부족 ▲필수 진단 장비 부족으로 응급의료 지연 위험이 있는 경우 ▲중환자실 병상 및 입원 가능 병상 부족 ▲전력·통신 장애로 응급의료 수행 불가능한 경우 ▲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유 등을 명시했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나 대한병원협회는 개정안이 응급의료기관 종사자 부담을 해소해 국민 생명·건강을 지킬 수 있는 실효적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응급의료현장에선 더 실질적인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메디파나뉴스와의 통화에서 "개정안 방향성엔 동의하지만, 법이 아닌 의학에 기초한 근본적 해법 마련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정당한 수용거부 사유를 규정하게 된 계기인 응급실 수용거부 금지 자체가 무리였다고 지적했다. 일괄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의학적 판단 영역을 법으로 정의한 뒤 법원에서 판단하다 보니 현장 상황과 판결 사이 괴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응급의학 전문의로서 제대로 된 응급치료를 하더라도 최종치료는 받지 못하고 환자가 사망하자 해당 전문의가 면허정지 처벌을 받는 사례가 발생하고, 이 같은 현실에선 최종치료 제공이 어려운 경우엔 환자 수용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법원이 최종치료를 할 수 없더라도 우선 환자를 수용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며 응급의료 현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르면, 최근 법원은 대구가톨릭대병원이 제기한 행정처분 취소 소송 청구를 기각했다. '최종치료를 할 수 있는 전문의가 없어 환자 수용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게 만들 수 있다'는 병원측 주장은 정당한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회장은 "최종치료를 못하면 응급의학 전문의가 처벌받는 현실에서, 이번 법원 판단으로 최종치료 불가로 환자를 받지 않아도 처벌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응급실은 이제 사면초가"라며 "응급의료에 대한 기본부터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위 뺑뺑이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환자단체는 이같은 의료계 입장과 엇갈린다.
먼저 응급의료종사자 형사책임 면책에 대해선 의료사고 원인과 결과를 피해자나 유족이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정부는 소극적 입장을, 환자단체는 우려 입장을 밝혔다. 정부와 환자단체는 정당한 사유 규정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보건복지부는 법안 취지에 동의하지만, 응급실 수용거부 정당 사유 문구를 각 취지에 따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수용거부 실효성 확보를 위해 모든 병원이 수용할 수 없을 경우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수용 병원을 지정하고 의료사고 면책을 규정하는 조항을 보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법무부는 응급실 뺑뺑이처럼 응급환자 거부 실태가 문제되는 상황에서 폭넓은 거부 사유 규정은 응급환자 거부를 정당화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개정안과 같이 사유를 규정할 경우 대부분의 응급의료기관이 정당하게 응급의료를 거부나 기피할 수 있게 돼 응급실 뺑뺑이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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