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下)]경증질환 보장 낮추고 중증질환 혜택 넓혀야

의료 전문가들 "나도 암 걸릴 수 있다" 공감대 형성돼야  
산정특례 본인부담률 올리는 대신 신약 치료 기회 확대가 중요 
선등재-후평가 방식 통한 혁신신약 임상현장 도입도 필요

최성훈 기자 (csh@medipana.com)2024-12-05 05:59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국민 의료서비스 보장 측면에서 비교적 잘 설계 됐다는 평가를 받는 축에 속한다. 하지만 지출구조로서 접근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준조세 재정 특성상 지속성과 투명성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신약 급여는 늘 보수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글로벌 제약업계 입장에서 한국은 매력적인 시장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코리아 패싱'도 이에 기인한다. 이로 인해 국내 중증·희귀질환 환자의 혁신신약 접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건강보험 지출구조 개선을 통해서 중증·희귀질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향은 없는지 들여다본다. 


(상) 갈 길 먼 국내 중증·희귀질환 치료 접근성
(중) 연간 치료비만 5억…삶 포기하는 환자들 
(하) 경증질환 보장 낮추고 중증질환 혜택 넓혀야

[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국내 의료 전문가들은 현행 건강보험 지출구조 개선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다. 개선 방향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신약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는 지금보다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다만 건보 지출구조 개선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 마련은 필요하다고 전제했다. 국민 대다수가 경증질환보다 중증질환 중심의 지출구조 개선에 찬성하고 있지만, 보험료 상승 또한 부담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분당차병원 혈액종양내과 문용화 교수는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경증 질환에 대한 보험 혜택은 낮추고, 중증 질환에 대한 보험 혜택은 높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나이가 들면 내게도 언젠가 암이 생길 수 있고, 그 때 생명을 살리는 비싼 표적 치료제를 맞아야 할 수도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 

그런 측면에서 경증질환보다 정말 필요한 암환자들에게 건강보험 급여 적용되는 약제가 더욱 많이 늘어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문 교수는 "표적 치료제를 맞아야 하는데 건강보험 급여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 본인이) 1년에 1억원을 갑자기 내야 하는 상황이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은 분들이 했으면 좋겠다"면서 "(중증 질환에 대한 보험 혜택을 높이자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제도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부분에 대한 홍보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제시했다. 

산정특례 5% 부담 점진적으로 올려야 

현행 산정특례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산정특례는 고액의 비용과 장기간 치료가 요구되는 특정 질환 진료 시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금액을 경감시켜주는 제도다. 

대상은 암이나 심장, 뇌혈관, 희귀, 중증난치, 중증 화상, 중증 외상, 중증 치매, 결핵, 잠복결핵감염이다. 암환자는 5년간 본인부담률 5%, 희귀질환 환자는 본인부담률 10%만 내면 보험 급여 등재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호흡기내과 박순효 교수는 산정특례 본인부담률을 조금 높이는 대신 신약 급여 등재를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하자고 했다. 

한정적인 우리나라 보험 재정상 거시적 접근도 중요한 만큼, 최대 10%까지는 본인 부담을 점진적으로 올려도 충분하다는 의견이다.  
그러면서 효율적인 치료제가 있는 환자군에 대한 급여화를 우선 고려하자고 했다. 가령 같은 폐암 환자라도 PD-L1 고발현 여부에 따라 일부 면역항암제가 타 면역항암제보다 관해율이 더 좋은 만큼, 효율적이란 제언이다.    

박 교수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대상이 되는 환자 수가 많은 치료제보다 희귀질환에 대한 급여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어떤 면역항암제는 대상이 되는 환자가 고발현형 환자로 한정적이어서 급여화를 하더라도 보험 재정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에 반해 효과는 좋게 나타나고 있어 이러한 케이스에 급여를 해주는 것이 오히려 더 효율적이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화순전남대병원 혈액내과 양덕환 교수(대한혈액학회 림프종연구회 위원장)도 본인 부담률을 늘리더라도 최신 치료제에 대한 급여 적용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문학적인 암 치료 비용을 국가가 모두 부담하는 데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혁신신약 도입이 지속적으로 늦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즉, 이제는 환자가 어느 정도 경제적인 부담을 추가로 지더라도 치료 접근성을 높이도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양 교수는 "본인부담 비율을 현재 5%에서 20~50%로 늘리더라도, 최신 치료제가 많이 도입돼 급여 적용이 되도록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치료 반응률이 좋고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혁신 신약이 있다면 최대한 빠르게 도입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국민도 중증질환·신약 건보 확대 공감  

국민들 역시 건보 지출구조 개선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특히 중증질환 중심으로 건보 혜택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미래건강네트워크가 지난해 한국갤럽에 의뢰해 국민 5039명을 대상으로 한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85%는 경증질환보다 중증질환 중심으로 필수의료 혜택을 현재보다 확대하는 것에 대해 동의했다.

또 국민 87.9%가 암, 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신약에 대한 건강보험을 신속히 적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국민 83.8%는 전체 약제비 중 신약 보장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의 생명을 살리거나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91.2%),' '보장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다른 의료비용 또는 요양비용, 사회경제적 부담 등 손실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87.1%)'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미래건강네트워크 강진형 이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종양내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실제로는 꼭 필요한 부분에서는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난 만큼 보완이 필요하다"면서 "예를 들어 경증질환이나 도수치료 등 보다는 중증질환 치료에 재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신약, 선 진입 임상환경 마련돼야   

그런 측면에서 해외 약가시스템도 참고해볼만 하다.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결국 신약 평가에 따른 정밀한 약가제도가 밑바탕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선등재-사후평가'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제약사가 원하는 가격으로 신약을 출시한 뒤, 1년 후 혁신성과 사용량을 평가해 환급율 및 할인율을 협상한다. 

혁신신약에 해당하는 의약품은 더욱 파격적이다. 참조가격제 적용을 받지 않고 정부와 환급률 및 할인율을 협상할 수 있게 했다. 

영국은 '혁신신약 제도(HST, Highly Specialized Technology)' 운영을 통해 희귀질환을 관리하고 있다. 

특히 이 HST의 가장 큰 특징은 ICER 임계치를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질환 특징이나 임상적 유용성, 근거 수준 등 여러 특성들을 전부 고려해 급여 상한선에 다르게 적용하는 셈이다. 

프랑스도 신약을 쓰고 나서 사후 평가를 통해 제약사에게 환급 받는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또 신약의 부가적 임상 가치(Clinical Added Value)를 5개 등급으로 구분해 평가하고, 그 결과를 약가 설정 시에 고려하게 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국내도 생명과 직결된 신약은 먼저 보험으로 쓰고, 향후 리얼월드 데이터를 통한 환자 치료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선등재-후평가' 방식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최근 허가신청-급여평가-약가협상 병행제도를 통해 콰지바가 신규 건보 등재됐다"면서 "생명과 직결된 혁신신약에 대한 글로벌 보험 정책은 선등재-후평가가 최근 각광받고 있다. 환자별 치료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에 합당한 약값을 지불하는 약가제도 도입을 통해 중증질환 신속 사용과 건강보험 재정 관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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