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上)] 국산 신약, 국내서 뿌리 못 내리는 까닭은

해외로 먼저 가는 국산 신약, 정부 '낮은 약가' 유지가 원인 중 하나
"신약 개발에 많은 시간·자본 필요…손해 보면서 판매 지속 어려워"
글로벌 제약사 '코리안 패싱'까지…해외 사용 중 신약, 한국 도입 못하는 경우도

최인환 기자 / 장봄이 기자2025-01-06 05:59

[메디파나뉴스 = 장봄이 기자·최인환 기자] 지난해 ▲P-CAB 제제 '자큐보정' ▲비마약성 진통제 '어나프라주' 등 2개 신약이 식약처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으며 2년 만에 국산 신약이 탄생했다. 이 중 자큐보정은 약가급여등재까지 마친 상황으로, 이들 신약이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반면, 최근에는 국내 개발 신약임에도 해외에서만 발매되거나 글로벌 판매되는 신약이 국내에 도입되지 않는 사례도 잦다.

일례로, 국내개발 신약 24호 동아에스티 '시벡스트로'는 기술수출 이후 미국·유럽 진출 성과를 내고 국내 허가도 받았지만 낮은 약가 등을 이유로 상업적 성과를 내지 못한 채 2020년 허가 5년만에 허가를 자진 취하했다. SK바이오팜 '세노바메이트'는 현존하는 뇌전증약 중 글로벌에서 최고의 찬사와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국산신약으로, 미국에서 2019년 허가 뒤 2020년 5월부터 실제 뇌전증 환자들에게 처방되고 있으며, 이후 유럽, 캐나다 등에서도 꾸준히 뇌전증 환자에게 처방되며 SK바이오팜의 매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는 도입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 외에도 해외에서는 이미 표준치료의 한 축으로 사용되는 여러 신약이 한국에는 도입되지 않거나 급여가 되지 않아 쓰지 못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김석진 대한혈액학회 이사장(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사진=메디파나뉴스

김석진 대한혈액학회 이사장(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은 지난해 11월 열린 대한혈액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과거에 비해서 새로운 약들이 많이 도입이 되고, 급여도 적용되는 등 개선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표준 치료는 외국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는 것들이 많다"며 "외국에서는 이미 표준치료의 한 축으로 사용하는 여러 신약이 한국에는 도입되지 않았거나 급여가 되지 않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의사의 입장에서 약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환자에게 쓸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임호영 대한혈액학회 학술이사(전북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같은날 정책 세션 발표에서 "다발성골수종은 초기치료 및 조기재발시 치료의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으며, 신약 개발이 매우 활발해 치료 성적이 매우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며 "다만, 고가 항암제 급여가 지연되면 최적의 효과를 갖는 최고의 병합 요법으로 약제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생긴다"고 말했다. 또한, 신약의 개발 과정에서 연쇄적으로 최근 개발된 혁진적 신약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게 되며, 본인부담 치료 시 충분한 치료를 하지 못해 적절한 치료 반응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렇게 국내 환자들이 효과 좋은 신약을 접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의 낮은 약가 등으로 인해 출시를 꺼리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 현상이 심화되면서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외 주요 국가들이 약가를 산정할 때 한국 신약 가격을 참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한국 정부가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해 의약품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데다 약값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에서 먼저 신약 가격을 낮게 책정하면, 다른 나라가 이를 근거로 약값을 더 낮추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려 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 시장 진출을 늦추거나 아예 진입을 포기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A 제약사 관계자는 메디파나뉴스와 통화에서 "해외에서는 의약품을 판매 시 그래도 이익이 남는 수준임에도 국내에서는 약가를 낮게 측정하면서 오히려 개발과 생산, 판매를 할수록 오히려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제약사 입장에서는 치료제를 개발해서 환자에게 공급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 및 비용이 필요하다.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면서 판매를 지속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B 제약사 관계자는 "과거 신약 약가산정 우대 제도가 존재했을 때 자사 신약이 해당 제도로 약가우대 평가를 받은 바 있다"며 "국내 약가 역시 경쟁 품목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편으로, 회사 내에서는 해당 제도를 통해 국산신약이 내수용이 아닌 글로벌 수출을 한다는 전제하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글로벌 진출 신약 우대기준 조항은 현재 폐지된 제도로 2018년 한미 FTA 개정 협상 당시 트럼프 정부 요구로 신약 우대조건을 폐지한 바 있다. 이후 국산 신약들이 약가 우대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C 제약사 관계자는 "약가 결정은 심평원 자료제출 및 절차 등에 따른 것으로 회사의 저가전략 등에 따른 것은 아니다"며 "해외 시장의 경우 별도 파트너사를 통해 각국 절차에 맞게 약가 결정되는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국내 혁신신약 의약품에 걸맞는 혁신적인 약가등재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요구되고 있다. 국산 신약은 일반적으로 한국 시장을 발판으로 글로벌 진출을 도약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국내 약가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라며 "국산 개발 신약의 경쟁력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내 제약산업 확대와 글로벌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국내 개발 신약이 해외로 먼저 나가는 것이 꼭 약가 때문은 아니라는 입장도 존재한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메디파나뉴스와 통화에서 "세노바메이트가 미국에서 우선 출시한 것은 약가 때문은 아니다"며 "SK바이오팜이 판권을 기존처럼 다 외국에 넘기면 자립이 좀 힘들겠다 싶어서 가장 큰 시장인 미국만큼은 직판을 하자는 생각 하에 직판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그 외의 시장은 각 시장에 맞춰 파트너를 선정, 순서대로 프로세스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국내의 약가 체계나 수가 등에 대한 고려는 없었으며, 한국을 포함하는 아시아 시장에 세노바메이트의 빠른 출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메디파나뉴스 : 최인환 기자 / 장봄이 기자

기사작성시간 : 2025-01-06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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