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필수의료의 붕괴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의대생들의 휴학, 필수의료 기피 현상까지. 의료계는 1년 넘게 거센 반발을 이어오며 거대한 의료 공백을 만들어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정부가 꺼낸 카드가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대책'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의료계와 시민·환자단체 간의 갈등은 더욱 격화되는 양상이다.
대책에는 ▲ 형사처벌 특례 ▲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신설 ▲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 확대 ▲ 책임보험 확대 등이 포함됐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의료계는 '필수의료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 주장하는 반면,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는 '의료인의 특혜'라며 반발하고 있다.
과연 이 대책은 필수의료를 살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메디파나뉴스는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소속 박호균·이정민 변호사가 짚은 문제점을 정리했다.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박호균·이정민 변호사
형사처벌 특례, 평등원칙 위배?
형사처벌 특례는 '의료사고 형사처벌법(가칭)'으로 불리며 현재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해당 법안은 중과실에 대해서만 기소(합의 여부 및 필수의료 여부와 무관)하도록 하되, 중과실이 아닌 경우 필수의료 영역에서 발생한 상해(중상해 포함)는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불기소하고, 사망의 경우 합의하면 불기소, 합의하지 않더라도 형을 감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정부는 2024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모방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을 추진했지만, 당시에도 적지 않은 비판이 제기됐다.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는 이번 법안 역시 이름만 바꾼 유사한 내용이라고 보고 있다.
박호균 변호사는 "피해자 보호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의료인에게 지나친 특혜를 부여하는 것은 평등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며 "정부 정책 및 법안 방향이 국민적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형법상 과실범은 예외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원칙이며,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침해한 경우 일반인도 과실치상·과실치사죄로 처벌받는다. 이는 생명과 건강이 법적으로 강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법익이기 때문이다.
또한 형법은 명시적으로 '중과실치사상죄'와 별도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규정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현 제정안대로라면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 규정을 의사에게만 적용하지 않겠다는 뜻인데, 이는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며 "스포츠 선수나 아마추어 선수도 경기 중 사고로 사람을 사상케 하면 중과실이 아니더라도 업무상 과실이 인정될 경우 처벌받는다. 그런데 의사에게만 예외를 두겠다는 것은 환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크게 희생하라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박 변호사는 "정부가 이 법안을 도입하면 타 직역에서도 특례법안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며, 이를 막을 명분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필수의료행위라는 개념으로 헌법 위반을 피할 수 있는지 여부도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변호사는 "필수의료행위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추상적이다"라며 "예를 들어 성형외과나 피부과는 일반적으로 필수의료 분야로 간주되지 않지만 중요한 의료행위가 적지 않다. 반면 소위 필수의료 분야로 분류되는 산부인과, 외과, 소아과, 흉부외과의 모든 의료행위가 형사처벌 면제 대상이 돼야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변호인팀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봤을 때, 의료사고 관련 형사책임을 무겁게 지는 경우는 필수의료 분야 의사보다 비필수 분야, 즉 미용·성형의료 영역의 의사들이 대부분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 변호사는 "필수의료 분야 의사 보호를 위해 형사처벌 특례를 논의하는 것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특례가 도입된다고 해서 필수의료 분야 의사 수가 증가할 것이라는 객관적 근거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의료사고심의위 신설, 실효성 있나?
정부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신설해 필수의료 여부 및 의사 과실(중과실 여부)을 판정한 뒤 검·경 수사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변호인들은 현재 경찰과 검찰의 의료사고 수사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정부의 대책이 수사 및 기소 역량 보완보다 오히려 수사 자체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정민 변호사는 "의료사고심의위가 중과실 여부를 판단해 극히 일부 사건만 수사 및 기소하도록 한다면, 향후 의사들은 형사책임에서 사실상 자유로워질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임상 현장에서 윤리적 기준이 허물어지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따라서 변호인은 의료사고 수사, 기소, 공소유지 역량을 강화해야 할 때이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억울하게 수사와 기소가 되는 의료인을 구제해 줄 수 있다고 바라봤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 확대, 제대로 시행될까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는 분만, 중증 외상, 심·뇌질환, 중증 소아 치료를 '고위험 필수 진료행위'로 분류해, 의사 과실이 없는 의료사고 발생 시 국가가 최대 10억 원까지 보상하는 제도다.
불가항력 사고에 대한 보상제도는 이미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에 있는 제도이므로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다만 국가의 보상제도를 확대한다는 방향은 의료사고 영역 외에도 사회 각 영역에서 국가의 재정이 허락하는 한 확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대안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이 변호사는 "정부의 재정이 허락하는 한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 확대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과실이 인정돼야 배상책임이 부담되는 '책임법'과 달리, 아무런 잘못이 없는 보상 영역에서 보상금이 더 많다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소송 없이 합의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한도를 3억원으로 확대하고 보상액, 지급방법 등 세부기준은 고시로 정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이 변호사는 "향후 시행령이 실제로 시행되는지, 이후 실효성 있는 제도 운영이 될 것인지, 책임법과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등에 대해 지켜봐야 한다. 당장 무리한 형사처벌 특례를 추진하기 위해 보여주기식으로 보상을 확대한다는 내용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라면, 향후 적지 않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책임보험 의무화, 의료사고 피해자 보호 효과는?
책임보험 도입은 민간보험과 공제조합 가입을 의무화하고, 현행 의료사고보상심의위가 보험 상품 및 배상 운영을 감독하는 방식이다.
이 변호사는 "이미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손해배상금 대불제도가 있는 만큼, 피해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제도라고 보긴 어렵다. 반면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됐을 경우 의료기관 측의 경영상의 어려움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로서 의료인 측에 도움이 되는 제도이다"고 말했다.
그는 "근래에 일부 사건에서 배상범위가 과거보다 확대되는 경우가 있었다. 규모가 작은 개인 의료기관의 경영상 어려움을 막기 위해 보장범위와 금액을 증액하는 방향으로 배상보험 혹은 공제를 운영한다면, 영세한 규모의 의료기관에는 의료기관의 지속가능한 운영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변호사는 "책임보험 가입을 확대하는 정책이 형사처벌 특례 도입 근거가 될 수 없다. 입증책임 전환을 논의하지 않은 채, 마치 책임보험이 피해 구제를 더 충실히 하는 정책인 것과 같은 기사나 발표는 더 이상 계속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인은 그동안 의사가 민·형사소송에 휘말릴까봐 소신 진료를 못 하고, 아예 필수 진료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특례법안을 추진하기 위해 의료인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 및 수사 관련 자료가 있다면 정부가 먼저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의료인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 및 수사 관련 자료는 없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형사범죄 영역 보다 오히려 의료인의 경우 관대한 수사와 처벌을 하고 있다는 것이 국민의 일반적인 감정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과거 20년간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한국의료법학회지(2021)의 '의사의 업무상과실치사상 책임에 관한 실증적 분석과 정책적 함의'(이진국, 김기영) 연구에 따르면 의사에 대한 형사기소는 연간 15건 내외로 추정할 수 있다.
박 변호사는 "최근 정부에서 진행 중인 용역사업이 진행 중에 있으므로 공식적인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의료사고 관련 진료과목별 기소 현황 등 세부적인 내용까지 검토해 세밀하게 정책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과도한 형사처벌이 이뤄지고 있다는 비약적인 전제 하에서의 논의는 자제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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