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의 의료‥'사필귀정' 외친 의료계가 바라는 건 '정상화'

의료계, 계엄령 기억 떠올리며 탄핵 인용에 "정의 실현됐다"
의대 정원 확대·실손보험 개편까지‥누적된 정책 갈등에 의료계 '정상화' 요구
대선 정국 속 정책 동력 약화‥이제는 의료계가 주도해 청사진 제시할 시점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4-04 11:55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헌법재판소가 4일 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면서, 의료계는 이를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평가했다. 정의가 실현됐다는 환영과 함께, 이제는 의료 현안을 해결해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사건에 대한 입장이지만, 그 속에는 장기간 누적된 의료정책 피로와 갈등, 그리고 변화에 대한 갈망이 자리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공식 입장문을 통해 이번 탄핵 인용이 "의료계에도 청명(靑明)과 같은 날이 되길 바란다"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번 탄핵 선고가 의료계에 큰 의미를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지난해 12월 3일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령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의사 집단행동'을 이유로 계엄을 선포했고, 포고문에는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의료인은 48시간 내 복귀해야 하며, 위반 시 계엄법에 따라 처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의료계는 이를 '국가 폭력'으로 인식하며 강하게 반발했고, 이후 지금까지도 긴장 상태를 이어오고 있다.

의료계를 관통하는 가장 큰 갈등은 '의대 정원 확대'다. 정부는 필수의료 인력 확충을 목표로 정원 증원을 추진했지만, 의료계는 교육의 질 저하와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고 반박해왔다.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제출했고 의대생 다수는 단체 휴학에 들어갔다. 최근에는 '복귀하지 않으면 제적'이라는 경고까지 나오며 갈등은 정점을 향하고 있다.

의협은 "대학은 학생을 보호하는 최후의 울타리여야 한다"며 "제적은 학생을 울타리 밖으로 내모는 행위이자, 스승과 제자의 연을 끊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실손보험 개혁도 새로운 충돌 지점이다. 정부는 비급여 진료에 대한 ‘적정 관리’를 명분으로 정책 개입을 강화하고 있으며, 의료계는 이를 '관리급여'라는 형태의 가격 통제 시도로 해석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탄핵이 인용됐음에도 의료계 내부의 기대감은 크지 않다. 그 이유는 '조기대선'이다. 향후 두 달간의 대선 정국은 사실상 모든 사회 이슈를 빨아들이는 '정치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정치권은 의료 문제를 해결보다는 활용 대상으로 삼아왔다. 이대로 조기대선까지 의료현안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진다면, 의대생과 전공의의 피로감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협상력 약화도 문제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전공의 군 복무 논란'을 계기로 의료계는 강경한 단일대오를 형성했지만, 최근엔 내부 갈등과 피로 누적으로 대응 동력이 약화됐다는 분석이다. 메시지 분산으로 정부와의 협상 주도권도 떨어졌다는 평가다.

물론 대통령의 파면을 계기로 보건의료 정책 전반에 대한 리셋(re-set)을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 탄핵으로 인해 현 정부의 정책 추진력이 약화되거나 일부 기조에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권 자체가 유지되는 만큼, 보건복지부 등 유관 부처의 기존 정책 방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국회에서 이미 통과된 관련 법안들도 다수 존재하는 상황이다. 결국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상징의 변화만으로는 의료 현장의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의료계는 단순한 반대를 넘어, 현실적인 의료정책 청사진을 스스로 제시해야 할 때라고 보고 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정책을 내놓으라거나, 정부안만 보고 판단하겠다는 안일한 태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향후 두 달의 대선 정국은 마지막 기회이자 최고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의료계가 선제적으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법적 판단은 내려졌지만, 의료계가 바라는 '정상화'는 여전히 정치와 사회의 몫으로 남아 있다.

의협은 이번 탄핵을 계기로 의료 정책 전반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탄핵 인용을 계기로 의개특위 등에서 추진되던 잘못된 의료정책들을 중단하고,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정책 패키지 등을 합리적으로 재논의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좌절했던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의료현장과 교육현장으로 돌아오는 단초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의협은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의료농단 사태를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하며, 전문가단체와 함께 의료 정상화를 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대한민국 의료는 지금껏 의료인의 헌신과 희생에 의존해 유지돼 왔다. 젊은 차세대들에게 더 이상 잘못된 구습과 관행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의사가 사람을 살리는 사명에 충실할 수 있도록 보편타당한 법과 제도, 안정적인 의료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협은 "이번 헌법 절차에 따른 선고 결과를 성숙하게 수용하고, 정치적 혼란과 사회 갈등이 하루속히 안정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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