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조현병 환자`를 기다린다‥ 좋은 치료법이 있으므로"

[연중기획 희망뉴스] '치료제를 만나 삶이 바뀐 환자들'
`장기지속형 주사제`로 조현병 환자의 '사회 적응' 가능성 높여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18-10-25 06:05

 

이만큼 편견이 가득한 질환이 있을까 싶다. '조현병'이라는 단어 한마디에 사람들의 표정에서 여러 복잡한 감정으로 뒤섞이는 것이 보인다.
 
`조현병(Schizophrenia)`은 과거 정신분열병이라고도 불리었다. 그런데 이 조현병은 100명 중 1명 정도가 걸릴 정도로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다시 말해 조현병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흔한 병이라는 뜻이다.
 
조현병은 지리, 문화적 차이와 관계없이 전 세계적으로 인구의 1% 정도의 유병률이 일정하게 나타난다. 이를 통해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약 50만명 정도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현병을 치료하려는 환자나 보호자의 움직임은 소극적이다. 전문가들도 국내 조현병 환자 중 5분의 4 가량은 아직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고 바라봤다.
또 발견도 늦다. 환자나 보호자가 해당 증상에 대해 가볍게 여기거나,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병원 방문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난 40년간 효과적인 치료방법들이 꾸준히 개발돼 왔다. 그리고 이제 한달에 1번, 혹은 1년에 4번 주사를 맞으며 조현병 환자도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을 받게 됐다.
 
나는 나의 환자 사례를 통해, 조현병에 대한 편견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싶다. 또 조현병 환자도 조기에 치료하고, 꾸준히 약물을 복용한다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 송파미소병원 정재용 원장의 진료일기 中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송파미소병원의 정재용 원장<사진>은 어느 날, 1994년생 미국 시민권자인 A를 만났다. 2년 전 미국에서 조현병을 진단받았다는 그는 발병 이후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등교를 거부하는가 하면, 폭력성까지 보였다.

증상이 발발한 뒤 미국에서 올란자핀(Olanzapine)을 처방 받아 복용하긴 했으나, 최근 1년 간은 기숙사 생활 속 약 복용의 부담감으로 인해 자의적으로 약을 중단한 상태였다.

방학을 맞아 한국으로 여행을 왔던 A는 할머니 집에서 삼촌과 함께 지내던 중 '기도원에 가야 한다'는 환청을 계속 들었다. 이에 실제로 기도원을 여러 번 다녀왔으며,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 등의 증상을 보였다. 또한 집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삼촌을 폭행하는 등 여러 사건들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정재용 원장이 A를 직접 만났을 때에도 병원 보호사의 쇄골부위를 이로 물고 공격하는 행위를 보였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한 정 원장은 바로 환자를 입원시켰고, 리스페리돈 4mg을 일주일 정도 투여하다 `장기지속주사제(Long Acting Injection, LAI)`로 출시된 `인베가 서스티나` 150mg을 투약했다.

서스티나 투여 후 3주 후부터는 A를 괴롭히던 환청 증상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공격적인 성향 및 망상 등도 사라졌다. 이후 국내에서 2달간 LAI 치료를 지속했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태가 됐다.

현재 A는 미국에서 서스티나로 치료를 계속하고 있으며,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 `조현병` 발견이 늦어지는 이유

A가 94년생이라는 말에, 조현병이 발병한 나이치고 굉장히 젊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기자가 넌지시 이런 말을 하자 정 원장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답했다. 조현병의 경우 20대 초반에 많이 발생하며 빠르면 10대 후반부터 발병하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한국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조현병이 군대에서 많이 발병되곤 하는데, 이는 군대에 입대하는 시기와 조현병의 발병 시기가 겹쳐서 생기는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조현병은 평균적으로 20대를 기준으로, 빠르면 10대 후반에 발병하기 시작해 20대 중반까지 발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조현병의 증상을 자각한 뒤 병원 방문은 빠르게 이뤄지는 것일까? 내심 짐작은 했지만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정 원장은 "환자들이 질환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알아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자기 병에 대해 드러내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첫 치료가 굉장히 늦은 편이다. 환자가 문제를 일으킨 후에야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게다가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지속되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정 원장은 "환자들이 조현병을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약을 잘 안 먹으려 한다. 만약 약을 먹고 증세가 사라지면 나았다고 생각해 약을 중단하는 케이스도 많다"고 설명했다.

정 원장을 찾아온 A도 올란자핀을 투약하다가 1년 간 중단한 경험이 있다.

정 원장은 "환자 역시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경구제를 투여할 경우, 룸메이트가 매일 무슨 약을 먹는지 궁금해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 때 환자 입장에서는 곤혹스럽다. 친구들 앞에서, 그리고 사회 생활 하다 보면, 어떤 약은 하루에 한 번, 많게는 세 번 이상 먹어야 하는데, 매일 감기약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않다. 장기지속형 주사제의 경우 이런 점에서 굉장히 도움이 된다, 상대방이 무슨 약을 먹는지 노출을 안 시켜도 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조현병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너무 늦게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 또 중간에 치료를 중단해 재발한 경우엔 치료효과가 떨어지고 만성화될 수 있다고.

조현병 환자의 사회 복귀를 위해서는 조기에 진단해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적으로도 '잠재적 환자'를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 마련에 관심을 가져야했다.

◆ 치료 패러다임 크게 바뀌어‥`주사 치료`로 가능한 일상생활

조현병은 신약이 등장하면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바로 `장기지속주사제`의 등장 덕분이다. 이 LAI는 복약순응도를 크게 높이면서 조현병 환자의 사회복귀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정 원장의 입장에서 장기지속형 주사제의 등장은 정말로 반가운 일이었다. 현재 국내에는 1개월에 한번 맞는 '인베가 서스티나'와 연 4회 맞을 수 있는 '인베가 트린자'가 출시돼 있다. 이들은 모두 급여권에 들어와 있고, 의료급여 수급권자 환자에 대한 접근성도 지난해 3월 시행된 의료급여법 개정으로 개선됐다.

조현병 환자는 치료의 지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동안 사용됐던 경구제는 약을 처방받기만 하면 외부에서 환자가 실제로 복용하는지 확인이 어렵다. 반면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직접 병원을 내원해야하기 때문에 자의적인 약물 중단은 현저히 감소하게 된다. 이는 재발률의 감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렇다고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단순히 '효과가 오래 가는', '병원에 자주 가지 않아도 되는' 약이 아니다. LAI는 조현병의 재발률을 낮추고, 이는 재입원율의 감소로 연결되며, 궁긍적으로 환자가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즉, 환자들이 자신의 원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 원장은 "약물에 대한 순응도, 영어로는 Compliance라고 하는데, 약을 안 먹는 사람들에게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이 Compliance를 높여준다. 경구제를 복용할 시 부모랑 같이 사는 환자는 복용여부를 확인할 수 있지만, 혼자 사는 경우에는 스스로 약물을 끊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주사제가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기숙사 생활을 하는 A의 케이스도 장기지속형 주사제 치료가 적합했다. 룸메이트에게 약 복용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부모가 매일 감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상적인 치료를 이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주사제는 청소년 환자가 사용할수록 효과가 크다. 정신질환을 가진 청소년은 뇌 자체가 완전 성숙되기 전부터 주사제를 적용하면 월등히 호전된다. 나이가 어릴수록, 그리고 초발일수록 뇌기능을 올리는게 쉬우므로 향후 주사제의 역할이 중요한 셈.

정리해보면, 조현병은 예방은 어렵지만 재발을 줄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남에게 노출시키지 않고 자기 생활을 계속 하면서, 약효가 지속되기 때문에 재발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정 원장은 "이제는 삶의 질을 따지는 시대다. 옛날처럼 먹을 것이 없어서 고민하는 시대가 아닌,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고 맛있는 걸 먹는지 고민한다. 이런 시대에서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그동안 환자들이 겪었던 섬세한 고충들을 해결할 수 있어 가능한 빨리 사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사회적 편견`으로 치료를 못받는 일은 없어야

그러나 조현병 치료를 받는 환자는 절반도 되지 못한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병원을 방문하기까지의 언덕이 높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근 여러 사건사고를 통해 조현병 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쌓여있는 상태다.

정 원장은 사회적 편견으로 환자가 받아야할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조현병은 잠재적 환자까지 포함에 국내에 50만명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흔하고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병할 수 있는 질병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제때 환자가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편견으로 환자를 숨게 만드는 것보다, 치료를 통해 일상생활이 가능한 케이스가 많이 비춰져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아직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조현병 환자는 자꾸 숨게 되고, 결국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조현병 환자를 우리 사회가 배타적으로 대할수록 환자는 숨게 되고, 이는 곧 증상을 악화시켜 사고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관에 가서 이상하게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래도 불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 원장의 시각이다.

그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조금 이상하더라도 무섭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를 자연스럽게 여긴다면 환자는 더 이상 숨을 이유가 없다. 조현병 환자들을 손가락질하고 격리시키려고만 한다면 이 환자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정신질환에 대한 강한 편견으로 인해 치료 시작 시기가 외국에 비해 상당히 늦은 편이다. 이는 불량한 예후와 연관된다. 이미 국제적인 흐름을 보면 조현병 환자에 대한 관리와 지원은 적극적인 편이다.

한 예로, 영국 총리는 국민의 정신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5년간 약 10억 파운드(약 1조 7천억 원)의 추가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모든 병원의 응급실에 24시간 정신질환 진료서비스를 갖추는데 4,000억 원 이상을 투자하고, 처음으로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치료 시작을 앞당겨 조기에 치료받도록 하는 것을 핵심 정책으로 발표한 것.

호주에서는 2011년부터 5년간 약 4,000억 원을 투자하여 청년층의 초기 조현병 치료와 예방을 위한 기관을 설립하고 서비스를 확대해가고 있다. 이러한 조기중재 모델은 약 2조 규모의 국가정신보건개혁방안에 포함됐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몇번의 이슈가 발발하자 국가적인 관심은 높아졌으나,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제도는 없다.

정 원장은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좋은 치료방법과 의료제도를 갖추고 있다. 그러니 질환이 발병하면 숨기보다는 바로 병원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특히 최근에는 장기지속형 주사제와 같은 좋은 치료법도 있으니 적절한 치료를 받아 정상적인 삶을 영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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