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2017년 9월. 어지러움증을 느껴 혈액검사를 했더니 덜컥 `만성림프구성백혈병(Chronic lymphocytic leukemia, CLL)`이란 진단을 받았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먹는 것에도 신경을 써왔기 때문에 70대이지만 나름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는 허기만 씨(1942년생·사진). 치료를 하면 희망이 있는지, 증상이 개선될 수 있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모두 불투명했다.
첫 진단 시 백혈구 수치가 24만이 넘는다는 사실도 당황스러웠지만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이 이렇게 급속도로 진행된다는 것도 매우 충격적이었다.
허기만 씨는 본인이 CLL임을 확인한 뒤,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3개월동안 의식불명 상태였다.
의식을 되찾은 후 허기만 씨는 바로 서울성모병원 혈액종양내과 엄기성 교수를 찾아갔다. '희망의 끈'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 익산에서 서울행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 허 씨는 백혈구 수치가 안정적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웃고, 손주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2018년 4월부터 급여가 돼 복용을 시작한 얀센의 `임브루비카(이브루티닙)` 덕이다.
◆ 주치의의 말에 용기내서 치료 시작, 희망의 씨앗
허기만 씨가 CLL을 진단받은 것은 이제 막 1년이 넘었다. 2017년 어느 순간부터 걷기가 힘들 정도로 어지럼증이 심했다는 그.
그래서 찾아간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했더니 백혈구 수치가 24만 대로 측정됐다. 병명은 만성림프구성백혈병.
CLL은 상대적으로 느린 림프구성 혈액암이지만, 주로 60대 이상에서 발생하는 고령암이다. 그만큼 치료가 까다로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엄기성 교수는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은 '만성'이라는 진단명 그대로 질환의 진행이 매우 느리거나 아주 일부 환자에서는 평생 진행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다. 천천히 진행하는 대신 재발이 꾸준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치료 종료 후에도 장기간 경과 관찰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허 씨는 백혈구 수치가 높아지면서부터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만성콩팥병과 확장성 심근병증 치료를 받던 중 심부전과 폐혈증이 병발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가까스로 퇴원할 수 있었다.
허 씨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당시 80일 가량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단 채로 입원해 있었다. 그때 성대가 망가져 목소리도 과거와 많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의식을 되찾은 후 조금씩 회복해 11월 말에 중환자실을 나온 허 씨는 곧바로 서울성모병원의 엄기성 교수를 찾아갔다.
엄 교수는 처음 허 씨를 만났을 당시 상태를 정확히 기억했다.
엄 교수는 "허 환자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나를 찾아왔을 당시엔 중환자실에서 이제 막 퇴원했을 때였고,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이 동반돼 빈혈 등으로 인한 전신상태 악화와 숨이 차는 증상을 호소했다. 또 거동이 어려워 휠체어를 타고 처음 외래를 방문했다"고 회상했다.
허 씨에겐 엄 교수가 하나의 희망과도 같았다. 본인의 상태가 최악인 상황에서 용기를 준 사람이기도 했다고.
허 씨는 "엄 교수를 처음 만난 날,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해보자고 독려해줬다. 치료방법도 잘 모르고, 결과에 대해 확신도 없던 상태에서 주치의 말이 정말 힘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CLL은 재발이 잦아 치료가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다.
허 씨는 엄 교수와 함께 전신상태 저하와 동반된 질환으로 인해 항암치료를 시작하지 못하고 보존적인 요법으로 경과를 관찰했다. 그러던 중 빈혈이 악화돼 혈색소 수치가 3.5 g/dL (정상치: 남자 13.0 g/dL 이상)까지 감소했고 이후 경구항암제인 클로람부실(chlorambucil)과 스테로이드를 함께 투여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엄 교수는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은 고령의 환자에서 주로 발생하며 미국 등 서양에서는 진단 시 평균연령이 70세에 가까운 질환이다. 이들 고령의 환자들은 플루다라빈 포함 항암화학요법을 견뎌 내기가 어렵다. 항암치료를 받는다 해도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용량을 많이 줄여야 되고 이에 따른 항암효과 감소를 감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1일 1회의 알약으로 CLL 증상 완화‥"기적이 일어났다"
엄 교수가 허 씨에게 '임브루비카'를 제안한 것은 2018년 2월이었다. 임브루비카는 기존 항암제에 비해 이상반응 발현수가 낮고 우수한 안전성, 내약성을 입증했기 때에 고령 CLL환자들에게는 최적이었다.
무엇보다 임브루비카는 1일 1회의 단일요법을 통해 환자들의 복용편의성 및 순응도를 높일 수 있다. 아울러 경구제로서 기존 치료제와 달리 입원이 필요가 없어 환자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엄 교수는 "임브루비카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아주 심각한 부작용은 매우 드물다. 또한 재발 및 불응성 만성림프구성백혈병에서 상당한 효능을 가지고 있음이 여러 연구결과에서 이미 입증했다. 고령 또는 동반하는 질환을 가지고 있어 강력한 항암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의 생존기간을 연장시켰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먹는 항암제여서 항암치료를 위한 혈관을 잡거나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항암치료를 위해 별도로 주사실을 내원하거나 입원할 필요가 없다. 일부 환자에서 피부자반(피부출혈), 부정맥 등이 나타날 수 있지만 경미한 경우가 대부분으로 부작용이 적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임브루비카는 환자와 의료계의 많은 요구가 있었음에도 꽤 오래도록 비급여 상태였다.
허 씨는 "처음 임브루비카를 제안받았을 때에는 비용적인 문제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그러다 올 4월부터 임브루비카가 재발/불응성 만성림프구성백혈병 환자에게 기적처럼 급여가 적용됐다.
곧바로 허 씨는 임브루비카를 복용했고, 현재 혈색소 수치는 최대 11.0 g/dL까지 회복됐다. 식욕증가에 이은 체중증가와 전신상태 호전으로 현재는 주위의 도움 없이 자유롭게 보행이 가능할 정도다.
기자와 만난 날에도 허 씨는 밝은 표정으로 스스로 걸어 약속장소에 나왔다.
과거 휠체어로 이동하고, 식욕이 없어 체중이 급속도로 빠졌던 때와 완전히 다른 삶이 시작된 것이다.
엄 교수는 "임브루비카에 반응을 보이는 경우 백혈병세포의 숫자가 감소하게 됨에 따라 전반적으로 식욕이 증가하고 식사량이 많아지면서 체중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골수내 백혈병세포의 감소로 인해 조혈기능이 회복되고 이에 따른 빈혈 등의 개선으로 운동에 대한 기능도 좋아진다. 거동이 가능하게 되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체력이 조금씩 회복된 허 씨는 스스로 운동을 하며 이 삶을 유지하려 노력중이다.
허 씨는 "처음 쓰러졌을 때, 병원에서 3개월동안 입원해 누워있으면서 앉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 다녔다. 퇴원한 후 서울성모병원을 처음 내원했을 때만 해도 휠체어를 타고 다녔는데, 3월부터 아내와 함께 지팡이를 짚으며 조금씩 걷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임브루비카 덕분에 증상이 많이 호전됐다. 지난 달 병원을 내원했을 때는 백혈구 수치가 2만 1천까지 급속도로 떨어졌고 현재는 3만 2천 정도다. 정말 나에게 딱 맞는 치료제라는 느낌이다"고 덧붙였다.
◆ 고령환자에겐 최적의 치료제, 급여가 신의 한 수
젊은환자의 경우 대안치료제를 통해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과거 고령의 CLL 환자들은 치료 중 재발하게 되면 강한 부작용으로 인해 기존 항암제를 사용하는 치료 자체를 포기해왔다. 그러나 임브루비카가 나오면서 고령환자도 지속적인 치료가 가능해졌다.
특히 임브루비카가 급여가 된 이후, 이 최초의 경구용 브루톤 티로신 키나제(Brutons Tyrosine Kinase, BTK) 단백질 억제제의 혜택을 보는 이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엄 교수는 "내가 속해있는 병원에서 임브루비카를 복용하고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고령의 환자들이다. 심지어 80세 넘는 환자도 여러 명이 있다. 이전이었으면 적극적인 치료를 포기하고 보존적 요법만 받았을 환자도 전신상태와 빈혈의 호전, 체중증가 등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직 처방기간은 7개월 정도로 짧지만 지금까지 본원에서 임브루비카를 처방 받아 복용하고 있는 10여 명의 환자 중 질환의 진행을 경험한 환자는 1명, 폐렴이 발생한 1명의 환자를 제외하고는 큰 부작용 없이 약물을 복용 중이다. 이중 두세명은 짧은 복용기간에도 불구하고 혈액학적 및 영상의학적 검사와 전신상태에 있어 뚜렷한 호전을 보이고 있다"고 전해왔다.
허기만 씨의 경우도, 이 임브루비카의 혜택을 온전히 보고 있는 환자 중 하나다.
허 씨는 이제 손주들을 포함, 가족들과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그는 "앞으로도 임브루비카를 꾸준히 복용하면서, 더 나은 삶을 유지하고 싶다. 1년 전만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었는데, 나를 치료해주고 있는 주치의와 제약사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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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2018.11.19 12:01:45
희망뉴스 애독자입니다. 환우가족으로서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희망뉴스의 나온 모든 분들,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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