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조현병'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바라던 환경이 있다.
약물의 복약 순응도를 높여 환자가 일상생활이 가능해지는 것. 안정적인 약물 효과 유지로 환자들의 사회복귀에 도움이 되는 것.
그런데 이는 `장기지속형 주사제(Long-Acting Injection, LAI)`가 출시되면서 '가능한' 이야기가 됐다.
조현병 치료의 골든타임이라고 여겨지는 시간은 발병 후 5년 이내인데, 이 때 약물치료를 중단했을 경우 80% 이상이 재발한다. 재발을 거듭할수록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거나,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만성화' 상태가 나타난다.
이에 의사들은 조현병의 '재발'과 '재입원'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복약 순응도가 높은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주목했다.
그동안 사용됐던 경구제는 약을 처방받아도 외부에서 환자가 실제로 복용하는지 확인이 어려웠다.
반면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한 달, 혹은 세 달 주기의 투여로 약물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직접 병원을 내원해야하기 때문에 자의적인 약물 중단은 현저히 감소하게 된다. 이는 재발률의 감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정부에서도 꾸준한 조현병 관리를 위해 장기지속형 치료제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조현병은 의료급여 환자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정부는 이들이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처방 받을 수 있도록 지난해 6월, 의료급여 정신질환자 입원정액수가제도를 개정했다.
박병선 원장은 2019년 3월 7일, A 환자(남·1969년생)를 처음 만났다.
A 환자는 20대 초반에 조현병을 진단받아 30년 가량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박 원장을 찾아왔을 당시 A 환자는 이미 다른 병원 치료 이력이 많았고, 입원 경험도 여러 번 있었다. 게다가 보호자인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어 환자를 간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환자는 경구제로 치료하고 있음에도 본인에 대한 병식(본인의 병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 부족했다. 이에 증상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었고, 환자의 신체 능력 또한 계속 안 좋아지고 있었다.
환자는 증상이 급격히 악화되는 급성기 증상을 보였고, 주민들의 민원 끝에 사회복지사의 개입으로 응급 입원을 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투약하는 '인베가 서스티나(팔리페리돈 팔미테이트)'를 1년간 유지하면서 증상이 원활히 조절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혼자서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며, 환자 스스로가 평가하는 '삶의 질' 향상이 도드라졌다.
이제 A 환자는 3개월에 한 번 투약하는 '인베가 트린자(팔리페리돈 팔미테이트)'로의 전환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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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증이나 우울증과는 다르게, 조현병이 만성화되면 퇴행이 일어난다. 여기서 퇴행이란 환자가 본인의 연령에서 기대 받는 상태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A 환자는 입원할 당시 TV 소리, 누군가 나를 비난하는 소리 등의 환청 증상을 보였고 본인의 생각을 정확하게 정리하는 기능이 저하돼 있었다.
박 원장은 "A 환자는 증상 조절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예민하고 잠을 못 자며 화가 많았다. 또 자살 충동도 잦았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는 누군가 본인을 위협하고 찾아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변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놀이터에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환자의 상태가 경직되고 자연스럽지 못하다보니,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보호자들은 환자가 아이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해 민원을 넣었다.
박 원장은 "사회에는 여전히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있고, 그로 인해 지역사회 주민들은 환자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은 환자가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드는 자극이 되기 때문에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A 씨가 입원 병동에서 잘 치료하고 퇴원해도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A 환자에게 '인베가 서스티나'를 먼저 처방했다. 재발과 재입원 확률을 낮출 수 있는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선택한 것이다.
박 원장은 "환자는 기저질환으로 당뇨병이 있는데 당시 당 관리가 잘 안됐고, 비만 때문에 지방간이 있어 치료제 선택 시 간 부담을 줄이는 것도 고려해야 했다. 하지만 조현병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약을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다. 환자는 이미 병이 만성화돼 치료에 지쳐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박 원장은 간 대사를 거치지 않는 팔리페리돈 팔미테이트 성분을 처방했고, 장기지속형 주사제이기 때문에 환자가 퇴원한 후에도 재발을 방지하는데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인베가 서스티나의 사용으로 A 씨는 여러 기능이 좋아졌고, 환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불편함도 개선됐다.
무엇보다 박 원장은 A 씨가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것을 누리고 사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밝혔다.
박 원장은 "과거를 회상해 보면, A 환자는 진료할 때 망상이 심해 항상 누군가 나를 잡으러 온다고 느끼고 불안해했다. 스스로 약을 챙겨 먹는 것도 어려웠다. 이제는 증상이 좋아졌기 때문에 주변 현실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생기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이 해결돼 자기 관리가 가능해졌다. 몸이 좋아지면 정신도 편해져 불편함이 개선된다"고 말했다.
상태가 좋아지면서, A 씨의 면담 내용에는 좀 더 현실적인 부분들이 많아졌다. A 씨는 이제 박 원장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등을 묻는다.
"빨리 낫고 싶어요. 안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꿈이라기 보다는 현실적인 목표에요."
A 씨는 담담하게 기자에게 말했다.
환자의 말에 박 원장은 "환자가 말한 '아프다'는 의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통증이나 불편함, 신체적인 장애가 아니다. 조현병의 증상은 직접적으로 통증을 느끼거나 당장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환자가 말하는 '아프지 않는 것'의 의미는 환청이 안 들리는 상황 등을 의미한다. 그런 증상만 줄어도 일상생활을 하기가 수월해진다"고 해석해줬다.
박 원장은 A 씨에게 인베가 서스티나를 넘어, 3개월에 한 번 주사하는 '인베가 트린자'를 고려하고 있다.
인베가 트린자는 약물 농도를 3개월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해주는 장기지속형 치료제로, 10명 중 9명이 48주간 증상 재발을 겪지 않아 위약 대비 우수한 재발 방지 효과를 입증했다.
또한 복약 부담을 줄이고, 약물 순응도를 개선해 비약물치료(재활 치료) 병행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조현병 환자의 치료 결과 및 사회 복귀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박 원장은 "A 씨는 현재 인베가 서스티나와 경구제를 같이 병용하며 치료하는 중이다. 주사제를 병용하지 않았으면 경구 용량이 더 많고, 하루에 복약해야 하는 횟수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알약을 낮에 한 번만 먹어도 증상이 원활히 유지되고 있다. 향후 증상이 더 안정되고 순응도가 높아진다면 인베가 트린자 전환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현병 환자는 여러가지 이유로 조현병 환자가 아닌 사람보다 사망률이 높다. 그런데 이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환자의 사망률(motality)도 낮춰준다.
박 원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장기지속형 주사제가 신경망을 보호하고, 재입원율을 낮추고, 사망률도 낮출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치료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조현병 치료의 목표 '재발'과 '재입원' 줄이기
'재발'과 '재입원'을 막는 것. 박 원장을 이것을 목표로 조현병 환자를 치료한다고 답했다.
그는 "입원 자체를 '좋다, 나쁘다'로 평가할 수는 없다. 입원도 외래치료 만큼이나 꼭 필요한 치료 방식이기 때문이다. 환자의 증상이 입원할 만큼 위험도가 높거나 현실적인 판단력이 많이 떨어져 있을 때는 환자에게 노출되는 요소들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입원해서 치료하는 과정은 환자의 삶에 있어 가장 안 좋은 시기 중 하나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환자가 입원 치료를 하게 될 경우, 갇혀 있어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 한다. 아울러 입원은 환자의 증상이 그 정도로 악화됐다는 뜻이기 때문에 치료 과정이 여러모로 힘들어진다.
박 원장은 "반대로 입원하지 않는 것은 환자의 증상이나 기능이 다시 나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발이 많았던 환자들은 장기지속형 치료제와 경구제를 병용하지만, 장기지속형 치료제로 인해 재발률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A 환자는 증상 재발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처방받으면서, 경구제를 하루에 한 번만 복용해도 증상이 잘 조절된다. 혹시 약이 떨어질 경우에도 장기지속형 주사제로 혈중 농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도 개입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박 원장은 "A 환자가 현재 혼자 살고 있음에도, 주변의 부분적인 도움만으로 규칙적으로 내원하고 증상을 잘 관리하는 것이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지역사회의 개입, 장기지속형 치료제 병행, 환자 주변의 지원 체계(supportive system) 등의 균형이 잘 맞아 아직까지는 재발하지 않고 증상이 잘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조현병 치료가 결국 약을 꾸준히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조현병 치료는 첫 급성기 때 과도하게 분비된 도파민 농도를 안정화시키는 처치를 하기 때문에 환청, 망상, 불안, 불면 등의 여러 증상이 좋아진다. 그 후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정기 유지 치료를 한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안정기 유지 치료를 중단하면 재발할 확률이 50% 증가하며, 두 번 재발을 한 후 1년 이내에 세 번째로 재발할 확률은 80%까지 증가한다.
세 번째 이후부터는 약을 잘 먹고 치료한다고 해도 증상의 악화와 호전이 반복되는 '만성화'를 겪게 된다.
박 원장은 "만성화로 자리잡는 것은 뇌에 있는 신경세포가 파괴돼 숫자가 감소한다는 것이고, 이 경우 약이 작용할 수 있는 뇌 부분이 줄어들기 때문에 약의 효과는 줄어들고 부작용은 커진다. 복용하는 알약 개수가 1-2알일 때도 먹기가 힘든 환자들이 많은 개수의 알약은 더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조현병 초발 환자들이 본인의 병을 받아들이는 병식이 생기는 기간이 빠르면 3년, 평균적으로는 5년 정도가 걸린다. 병이 생기고 그 병에 대한 인식을 하기까지 꽤 오랜 기간이 걸리는 셈인데, 그 사이에 재발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박 원장은 "조현병의 골든 타임은 3~5년인데, 모순적이게도 병에 걸렸다고 해서 병식이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조현병에 대한 병식이 생긴 후에는 이미 여러 번의 재발을 겪어 때가 늦어버리는 케이스가 많다. 이 애매한 시기에서 장기지속형 치료제는 그 끈을 놓지 않게 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장기지속형 치료제는 한 달에서 세 달까지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 개입을 할 수 있으며, 주사 처치 후 증상이 좋아지면 대화로 설득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재발했을 때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현병은 이제 신약이 출시됐을 뿐 아니라, 의료 급여환경도 나아지고 있다. 장기지속형 치료제가 급여 적용이 되고, 조현병 환자의 입원 치료도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조현병 환자의 입원 치료에 보험급여 적용이 되고, 입원한 의료급여 1종 환자는 무료로 장기지속형 치료제를 투여받을 수 있다.
인베가 트린자의 약가를 한달로 나누면 월 30만원 수준으로, 산정특례를 적용 받으면 인베가 서스티나와 트린자 모두 월 1만 1천원에서 2만 9천원 정도 가격이다.
장기지속형 치료제의 등장으로 조현병 치료환경이 더 개선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원장은
'Yes'라고 답했다.
"치료는 방향이 중요하다. 과정이 힘들어도 방향이 맞다면 그 자체로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장기지속형 치료제라는 옵션은 뇌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정신건강의학과, 특히 조현병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에 굉장히 좋은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길잡이가 된다.
A씨의 경우도 지난 25년 간 지속적으로 증상이 재발했기 때문에, 장기지속형 치료제가 없었다면 이번 치료에서도 분명히 재발을 겪었을 것이다. 장기지속형 치료제를 투약한다고 해서 의료진의 개입이 없을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는 희망적이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치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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