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암'에 대한 치료 접근성‥우리나라도 변화가 필요한 때

대한항암요법연구회 희귀암 분과장 김호영 교수
'희귀암' 환자 레지스트리 구축을 통해 연구와 진료 향상 필요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0-08-27 06:04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느리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된 듯 보인다.
 
'희귀암'에 대한 치료 접근성 향상이 필요하다는 의사들이 늘어났고, 이를 위한 정책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곧 해당 분야의 치료제 개발과 빠른 허가를 가능하게 하는 '첨단재생바이오법'이 시행된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 희귀암 분과장인 김호영 교수(한림대학교 성심병원 혈액종양내과·사진)는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치료제 개발 우선순위에서 뒤쳐지거나, 정부 정책에 외면되는 '희귀암'의 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해외에 비해 희귀암 환자 데이터가 정비되지 않았으며, 관련 연구 지원도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희귀암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면서도, 의사들이 희귀암에 적극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환경 마련을 촉구했다.
 
◆ 치료제 개발과 정책에서도 소외받은 '희귀암'
 
 
'희귀암'은 아직까지 국내에 정확한 기준이 없다. 그렇지만 유럽 등의 정의를 적용한다면 10만명 당 6명 미만의 발생을 보이는 암을 희귀암으로 정의한다.
 
희귀암으로 분류된 암은 전체 암 발생의 약 16%를 차지할 뿐이다. 희귀암의 가장 흔한 계통은 소화기계통이며, 다음으로 여성생식기관, 혈액암, 피부암, 두경부암, 중추신경계 순이다.
 
그러나 발생 빈도가 낮다는 이유로 희귀암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희귀암은 통계연구나 임상연구가 드물 수 밖에 없고, 있다 하더라도 산발적인 연구만이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신약 개발, 정책 및 제도 등이 주요 암 위주로 이뤄지고 있어 희귀암 환자들은 진단은 물론 검사, 치료 등 진료과정 전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희귀암에 대한 전문적, 개별화된 치료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고 있으며, 기본적 역학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희귀암은 호발암 대비 전체 생존율, 5년 생존율 모두 저조하게 나타났으며, 암 진단 이후 사망 전까지 발생하는 1인당 평균 의료비 면에서도 호발암 대비 희귀암에서 지출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Q. '희귀암'은 정확히 어떻게 정의되는가? 국내 희귀암 발생률은 어느 정도인지.
 
김호영 교수 = 희귀암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암세포의 기원이나 분화도가 특이적으로 드문 형태이며, 두 번째는 일반적인 암종 중에서 조직학적 혹은 분자유전학적 아형이 드문 형태다. 최근에는 분자유전학적인 진단 방법이 보편화되면서 두 번째 의미의 희귀암 종류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희귀암에 대한 정의는 국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국가나 지역 단위로 환자 레지스트리가 구축돼야 이를 바탕으로 희귀암 발병 현황을 파악하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희귀암 정의를 내릴 만큼 환자 레지스트리 구축이 안 돼 있다.
 
환자 레지스트리 구축이 가장 잘 된 유럽에서는 연간 발병이 10만명 당 6명 이하 빈도를 보이는 것을 희귀암으로 정의하고 있다.
 
유럽 기준에 따라 최근 2009년부터 2016년까지의 국내 암 발생을 조사한 결과, 희귀암은 전체 암 발생의 약 16%를 차지했다. 희귀암 발생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로, 전체 암발생에 비해 희귀암의 비율도 매년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6년 기준 국내 희귀암 환자수는 약 2만여명이다.
 
Q. 대표적인 희귀암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김호영 교수 = 전체 암 발생 계통 중 희귀암의 비율이 높은 암종은 두경부암, 혈액암, 골 및 관절의 암, 흑색종 및 기타 피부암, 중피성 및 연조직 암, 눈, 뇌 및 중추신경계 암, 원발 미상암 등이다.
 
Q. 희귀암은 드물게 나타나는만큼 '치료 방법'도 다양하지 않다고 들었다. 치료는 주로 어떻게 이뤄지나.
 
김호영 교수 = 희귀암은 각 암종별로 각기 다른 임상 소견, 병리, 유전자 변이 등을 보인다. 그래서 암마다 수술 범위, 항암제 치료 종류도 다르다.
 
대부분의 희귀암은 아직 표준 치료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의사의 견해와 관련과 간 협력을 바탕으로 한 다학제적 접근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화학요법, 특히 유전자변형에 기반한 표적치료제 등을 고려하는데, 최근에는 추가로 면역관문억제제나 CAR-T 치료제 등이 새로운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 '희귀암'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
 
 
다행히 희귀암에 대한 치료제 개발은 점차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희귀의약품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분야는 항암 치료제다. 과거보다 다양한 신규 기전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한 기전으로 여러 적응증을 획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암 치료는 미충족 수요가 높고, 질병 발병 기전과 증상이 고도로 세분화돼 있어 환자 수가 적은 틈새 적응증이 많다. 특히 희귀의약품 개발에 있어 첨단바이오의약품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곧 '첨단재생의료 및 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 법률(첨단재생바이오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첨단재생바이오법은 현재 이용가능한 치료법이 없거나 다른 치료법과 비교해 현저히 효과가 우수할 것으로 예측되는 치료법이 고려된다.
 
▲대체치료제가 없고 생명을 위협하는 암 등 중대한 질환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 ▲희귀질환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 ▲생물테러감염병 및 그 밖의 감염병의 대유행에 대한 예방 또는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상이다.
 
이를 통해 암 등의 중증 질환 및 희귀 질환 치료제의 신속한 개발과 허가·심사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처럼 희귀의약품 개발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기반이 확충되고 있음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희귀암 환자들의 치료제 접근성은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에서 허가된 희귀의약품 156개 중 건강보험을 적용받은 약제는 총 88개로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신약의 개발과 급여는 환자의 생존율, 삶의 질 등 실질적인 변화에 기여하기 때문에, 치료의 중요한 척도로 여겨지고 있다.
 
더군다나 희귀암 환자의 암환자 생존율(Overall Survival)은 61.09%로 일반암(70.88%) 대비 전체적으로 저조하다. 1년 생존율 78.52%에서 5년 생존율 62.9%로 일반암 대비(1년 생존율 83.68%, 5년 생존율 72.32%) 그 격차가 크게 나타났으며, 암 진단 이후 사망 전까지 발생한 1인당 평균 의료비용도 일반암 대비 희귀암에서 그 지출이 더 많았다.
 
이는 여전히 희귀암 환자가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희귀질환' 정책에서도, '암 관리' 정책에서도 희귀암 관리는 소외돼 있다. 
 
의사들은 환자들의 생존을 위해 한국형 희귀암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환자 레지스트리 구축, 치료제 개발과 허가/급여까지 국가적 차원의 고민을 더 미뤄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Q. 현재 국내외 희귀암 치료제 개발 및 허가 현황은 어떠한가? 
 
김호영 교수 = 글로벌의 희귀의약품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희귀항암제가 연구개 발을 주도하고 있다. 치료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높고, 질병 발병 기전과 증상이 고도로 세분화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18년 FDA의 승인을 받은 34개 희귀의약품 중 약 38%인 13개가 항암 치료제, 10개가 유전질환 치료제, 4개가 감염 관련 치료제였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첨단바이오의약품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국내 희귀의약품 시장 역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개발하고 있는 희귀의약품은 93개 성분, 106개 임상 프로젝트 등으로 파악된다. 개발 중인 첨단 바이오 의약품 중 50%가 암 질환 영역으로 글로벌 동향과 유사하게 나타났다.
 
Q. 희귀암 환자들을 직접 대면하는 임상의로서, 우리나라 희귀암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김호영 교수 = 희귀암은 약제 개발 단계에서부터 허가, 급여에 이르기까지의 각 단계별로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치료의 접근성이 여타 호발암에 비해 낮은 편이다.
 
희귀암은 워낙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약제 개발 시 타깃 환자군을 찾기 어렵다. 또한 찾는다 하더라도 임상을 통해 약제의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환자군을 모집하고 결과를 도출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허가를 받는다고 해보자. 우리나라는 치료제가 보험 적용이 돼야 실질적으로 환자에게 약제 처방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부의 희귀항암제, 희귀질환 의약품 허가 대비 급여 등재 비율은 낮다. 지난 10년 동안(2007년-2019년) 국내에서 허가된 희귀의약품 156개 중 건강보험을 적용 받은 약제는 총 88개로 절반을 겨우 넘는다.
 
희귀의약품 급여 지출 규모로 따졌을 땐, 우리나라처럼 선별등재를 도입한 타 유럽 국가의 10년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희귀암은 일반암보다 1년, 5년 생존률이 더 저조하고, 1인당 평균 의료비용 지출이 더 많다. 이는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기존 암관리종합계획에 따라 국가적으로 질병부담이 가장 큰 질환인 10대 호발암의 보장성은 꾸준히 개선돼 왔다. 
 
이제는 희귀암 환자 치료와 보장성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Q. 이제 곧 '첨단재생바이오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희귀암 치료에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질 수 있을까?
 
김호영 교수 = 희귀암은 일반암에 비해 개발된 치료제부터 많이 부족하다.
 
첨단재생바이오법이 시행되면 희귀암을 타깃으로 한 여러 치료제 개발 및 임상 등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허가자료를 미리 제출 받아 단계별로 사전 심사하는 맞춤형심사, 다른 의약품보다 신속한 심사를 진행하는 우선 심사, 치료적 확증 3상 임상시험을 시판 후에 수행하는 조건으로 2상 임상만으로 허가하는 조건부 허가 등이다.
 
결국 이 법의 목적은 치료법 없는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제공하고자 함이다.
 
신속처리제도의 3가지 프로그램을 모두 적용하면 개발 기간을 최대 3.5~4.5년 단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첨바법이 시행되면 확실히 희귀암 치료제 개발 및 허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희귀암 치료제의 빠른 허가가 가능하도록 정부 정책과 제도는 개선되고 있는 것이 맞다.
 
하지만 신속한 급여 또한 보장돼야만 환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Q. 현 정부의 주요 정책 기조가 '문케어'다. 이 중에서도 중증질환의 보장성 강화가 주요 정책 목표였다. 임상의 입장에서 체감되는 부분이 있나? 
 
김호영 교수 = 변화는 분명 있었다.
 
2017년 유전 변이 진단을 위한 차세대염기서열분석 기반 유전자 패널검사(이하 NGS)가 비급여에서 본인 부담금 50%로 급여화 됐다. 
 
2019년에는 NGS 급여 대상 유전자가 확대돼 희귀암 환자의 희귀유전변이를 찾아내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또 2018년 허가초과 항암요법 사용제도에 사후승인제가 추가되는 등 제도 개선이 있었다. 이는 치료 대안이 없던 말기암 환자들의 맞춤형 치료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희귀암의 치료 약제가 부족하다. 또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은 덜어주지 못했다.
 
환자들에겐 빠른 치료제의 개발과 허가만큼 중요한 것이 '빠른 보험 급여 등재'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환자 수가 적고 치료제 개발이 더뎌 상대적으로 비용이 높은 경우가 많다. 치료제가 있어도 급여를 기다리는 동안 비싼 약값을 그대로 지불해야 하니 경제적 부담이 큰 환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Q. '희귀암'과 같은 고가 희귀질환 치료제 급여화가 국가 의료보험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시각도 있다.
 
김호영 교수 =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약일 수도 있지 않나.
 
최근 환자들에게 필수적으로 공급돼야 할 약제나 치료 재료가, '고가'라는 이유만으로 등재에 실패하는 사례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중동 국가들이 한국의 약제 가격을 참고하다 보니, 제약사가 아예 한국의 약가 협상을 포기하는 '코리아 패싱' 문제가 심각하다.
 
이로 인해 희귀암 환자들이 치료 방법이 있음에도 치료 시기를 놓치는 일이 발생할까 우려된다.
 
치료 비용이 고가인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국민 여론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2018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국민참여위원회를 대상으로 고가항암제 등의 건강보험 적용 방안 설문을 진행한 결과가 대표적이다.
 
설문 대상자의 84%가 고가이거나 대상자가 소수인 의약품의 건강보험 적용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또 76%는 경제적 부담이 큰 중증질환 보장성 확대를 위해 중증도가 낮은 질환에 대한 급여 보장성을 낮출 수 있다고 답했다. 
 
건강보험 재정 운영의 문제는 좀 더 기술적이고 심층적인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고가 희귀질환 보장성 확대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은 충분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Q. 앞으로 보다 많은 '희귀암' 환자들이 최적의 치료를 받기 위해 필요한 부분은?
 
김호영 교수 = 우리나라도 이제 '희귀암'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희귀암에 대한 정의나 환자 등록, 기초 연구에 대한 투자 및 정책적 지원 등 갖춰져야할 부분은 많다.
 
사실 정부도 희귀암 관리 계획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제 3차 암관리종합계획을 보면, 제 2기 암정복 계획의 한계점으로 육종 등 희귀한 암에 대한 연구와 진단, 치료 기술의 개발이 부족하다고 언급돼 있다.

정부는 최근 희귀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정보 및 유전체 데이터를 수집하는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을 시작했다. 이처럼 '희귀암'만을 위한 바이오 빅데이터도 구축돼야 한다.
 
유럽의 경우는 24개국 94개의 희귀암 등록 체계가 구축돼 있어 환자의 데이터를 모으고 공유한다.
 
2019년 EU 소속의 국제 암 연구기관 JARC(Joint Action on Rare Cancers)는 '낮은 빈도로 인해 차별받는 암 환자의 치료질 향상 도모'를 위해 광범위한 희귀암 리스트를 재정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유럽처럼 국가 단위, 나아가 아시아 지역 단위의 레지스트리 구축을 통해 희귀암에 대한 연구와 진료의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희귀암 치료제 개발은 개별 제약사에게만 맡길 수 없는 영역이다. 따라서 국가 단위의 레지스트리 구축을 통해 약제 개발을 위한 환자군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
 
또 희귀암 환자를 위해 개발된 약제의 신속한 허가 및 급여 제도도 도입돼야 한다.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부터 허가, 급여까지의 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중장기적인 정부 단위 플랫폼 마련도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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