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신약'의 급여 등재가 지연되면 애가 타는 것은 환자들이었다.
그리고 그 원망과 화살은 자연스럽게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심평원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치료제의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건강보험 재정 영향 등을 살펴보려면 그에 해당하는 충분한 자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제약사가 자료 제출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시간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최근 환자들이 신약 급여 등재 지연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입장을 연달아 전달하자, 심평원도 이례적으로 해당 사항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 절차는 크게 보면 5단계로 이뤄진다.
①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안전성·유효성 ②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평가: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건강보험 재정영향 등 ③ 건강보험공단 협상: 가격, 사용량 등 ④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 ⑤ 보건복지부 고시가 일반적인 절차다.
이 가운데 신약 급여에 가장 큰 허들이라고 할 수 있는 단계는 심평원이다.
심평원의 중증(암)질환심의위원회는 중증환자에게 처방·투여되는 약제(항암제)에 대한 요양급여 적용기준 및 방법을 심의하는 위원회다. 암질심은 의학적 타당성·대체 약제와의 치료 비용·재정 영향 등을 고려해 급여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약제급여평가위원회는 약제에 대한 요양급여대상 여부, 상한금액 등 요양급여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위원회다. 임상적 유용성·비용효과성·제외국 등재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급여 적정성을 평가한다.
두 위원회의 심의 결과는 위원회 종료 즉시 국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고,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제약사에 문서 통보, 유선 등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 관문을 넘어야 공단과의 약가 협상에 돌입할 수 있으므로, 대부분의 치료제들은 심평원의 결과에 따라 급여 혹은 비급여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이슈가 된 치료제는 한국노바티스의 '일라리스(카나키누맙)'와 한국다이이찌산쿄·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엔허투(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다.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Hereditary recurrent fever syndromes)'은 유전자 이상으로 면역체계가 인터루킨-1베타(IL-1β)라는 물질을 과다 생성해 발생한다. 그래서 인터루킨-1베타가 수용체에 결합하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이 치료 방법이다.
주요 치료제로는 인터루킨-1 수용체 길항제 '키너렛(아나킨라)'이 대표적이다. 다만 키너렛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공급 받아야 하며, 1일 1회 환자 체중에 맞춰진 용량을 정해진 시간에 주사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이에 환자들이 급여를 기다리고 있는 치료제는 일라리스다. 일라리스는 8주 간격으로 투여해, 연 6회만으로 질환 관리가 가능하다.
2015년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일라리스는 2017년 약평위에서 한 번 좌절을 겪은 뒤 계속 비급여 상태였다. 2022년 말 한국노바티스가 급여 신청을 철회했다가 작년 초 다시 급여 재신청을 하면서 지난해 9월 급여기준 심의를 하는 등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 치료 환경에 대한 열악함이 지적됐고, 강중구 심평원장은 이를 인정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급여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심평원장의 발언으로 환자들의 기대감은 커졌으나, 해를 넘긴 지금까지도 일라리스의 급여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엔허투의 경우 1. HER2 양성 유방암 2. HER2 양성 위 또는 위식도접합부 선암종에 신규 급여 신청을 했으나, 올해 첫 약평위에서 재심의로 결정되면서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를 비롯해 많은 유방암 환자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엔허투는 국내 허가 심사를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올라온 뒤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지난해 2월엔 건강보험을 촉구하는 청원이 게시된 후 사흘 만에 5만 명의 동의를 달성했다.
한국다이이찌산쿄는 엔허투의 빠른 급여 통과를 위해 보완 자료를 신속하게 준비했고, 추가적 위험분담제(RSA)까지 고려하는 등 재정 부담 절감을 위해 다각도의 방안을 마련했다. 엔허투는 약가도 전 세계 최저가 수준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엔허투는 계속해서 약평위에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 엔허투는 전례없는 장기 생존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나, 그만큼 투약 기간이 길어져 국내에서 오히려 비용효과성을 입증받기 힘든 상태다.
해를 넘긴 엔허투의 급여 절차로 인해 환자들은 입장문과 호소문까지 발표하며 급여 촉구에 대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심평원은 빠른 급여 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정작 제약사가 제출해야 할 자료가 지연되고 있다는 상황을 전달했다.
최근 치료 효과가 있는 고가의 중증질환 신약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가 높아지고 건강보험 약제 결정 신청이 증가하는 상황이다.
만약 약제의 급여 적정성 검토 과정에서 제약사가 제출한 자료의 임상 근거가 부족하거나 경제성 입증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심평원은 제약사에 해당 자료를 보완 요청하고 있다.
심평원 관계자는 "신약 검토 과정에서 제약사의 임상 효과에 대한 근거 자료 및 재정분담안 등 관련 자료 제출이 지연됨에 따라 일부 약제의 등재 기간이 늦어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경제성평가 생략 약제는 비용효과성이 불분명해 제약사의 관련 자료 제출이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심평원은 고가 신약에 대한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 신속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약사 측에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신약의 평가기간 단축을 위해서는 제약사가 약제의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을 입증할 수 있는 완결성 있는 자료를 제출하는 등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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