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키워드上] 끝이 보이지 않는 '의약품 수급불안정'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속되는 의약품 수급불안정 
약사들, 분회 정기총회 통해 정부의 근본적 대책 마련 강력 촉구
대체조제 및 성분명 처방 등 정책 실현 발판 기회일수도

조해진 기자 (jhj@medipana.com)2024-01-24 06:06

2024년 1월, 약사회 각 지역 분회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지난해 회무 결산 및 새해 사업계획 등을 논의했다.
 
희망찬 새해를 응원하는 1월은 약사회 분회 정기총회 시즌이다. 그러나 지역별 분회 정기총회 분위기는 결코 밝기만 할 수는 없었다. 약사사회를 괴롭히고 있는 현안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메디파나 기자들이 취재한 올해 분회 정기총회의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수 년째 약사와 환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의약품 수급불안정, 두 번째는 최근 정부의 시범사업 확대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비대면 진료 이슈다. 

지역 약사들은 건의사항을 통해 관련 이슈에 대해 성토를 하기도 했다. 이들을 대표하는 회장단 또한 너도나도 이슈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고, 그 맥락은 일맥상통했다. 분회총회의 끝이 다가오는 시점, 두 가지 키워드를 나눠 정리해 봤다.

▶총회 키워드上. 끝이 보이지 않는 '의약품 수급불안정' 
총회 키워드下. 비대면 진료, 일방통행은 안 됩니다

[메디파나뉴스 = 조해진 기자] "대한약사회 차원에서 수급불안정 의약품을 균등 분배하고 있지만, 큰 효과가 있진 않다. 이 사태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매일을 불안한 마음으로 약국을 경영하고 있다. 언제까지 여기저기 구걸하듯이 약국을 운영해야 하나"

한 분회 총회에 참석한 약사가 부족한 의약품을 확보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는 상황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며 성토했다. 

몇몇 분회는 궁여지책으로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약을 과거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쓴다)' 운동처럼 교품하고 있다면서 고충을 토로했다. 

모든 분회 회장단의 개회사와 인사말은 의약품 수급불안정에 대응하고 있는 약사들을 위로하며, 정부의 근본적 대책을 촉구하는 성토의 장이었다. 목소리를 높이지만, 근시일 내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 약사사회 최대 현안, 의약품 수급불안정…원인은 '복합적'

현재 약사사회 최대 현안인 의약품 수급불안정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시작됐다. 팬데믹이 엔데믹이 되면 끝날 줄 알았던 상황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많은 복합적 요소들이 엉켜있기 때문에 한두 개의 이유를 해결한다고 해서 종결될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약품 수급불안정은 제조상 혹은 품질상의 문제일 수 있고, 전쟁 등 국내외적 이유로 원료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팬데믹이나 유행성 독감과 같이 급격히 환자 수가 증가하거나 가이드라인이 변경돼 해당 의약품 수요가 갑자기 증가한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제약사들이 해외에서 원료 수입 시 한국의 낮은 약가로 인해 원료의 양을 적게 공급받게 되고, 이로 인해 의약품 생산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혹은 단가를 맞추기 위해 저렴한 해외원료를 구입하다보니 원료의약품 자급도가 하락하게 되고, 완제품의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약가인하로 인해 제약사가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정리하거나, 부족한 정보로 인한 불필요한 혼란 및 일부의 사재기, 아웃소싱의 증가 등이 의약품 수급불안정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혹은 이 모든 이유가 복합적으로 발생하거나 연속으로 나타나면서 장기화한다. 

의약품 수급불안정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환자와 약사다. 처방전을 받았는데, 약국에 해당 약이 없다. 약이 없으니 환자를 돌려보내거나, 동일한 성분의 약이 있는 경우는 대체조제를 하고 환자들에게 설명을 진행한다. 대체조제가 가능한 약이면 다행이지만, 불가능한 약의 경우에는 환자가 약이 있는 약국을 찾아 헤메야 한다. 

약사들이 의약품 수급불안정에 대응하기 위해 진행하는 동일성분 대체조제도 결코 단순한 일은 아니다. 대체조제에 대해 환자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며, 대체조제 사실에 대해 사후통보 업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대체조제로 사용하던 약조차도 구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약사들의 답답함을 풀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 약사들이 생각하는 수급불안정 대응은 대체조제 및 성분명 처방…"정부, 근본적 대책 내놔야"

총회에 참석한 약사들은 "그래도 결국 의약품 수급불안정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동일성분 대체조제와 성분명 처방"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동일성분 대체조제가 활성화하려면 사후통보 절차의 간소화 및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약품 생산일정의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 제공, 수급불안정 장기 의약품의 경우 보험급여 일시정지, 수급불안정 의약품에 대한 의사의 처방 제한 등도 의약품 수급불안정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했다. 

모두 정부와 국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방법이다. 정부가 규제와 제도를 정비해야 하고, 국회가 필요한 법안을 만들어야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수급불안정 문제 해결을 위한 첫 발을 뗄 수 있다. 

다만 시각을 조금 다르게 보면, 의약품 수급불안정이라는 '위기'는 약사사회가 바라오던 대체조제 활성화 및 성분명 처방 법제화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로 만드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잡으려면 정부와 국회가 움직여야 한다. 이에 대한약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약사들은 상급회인 대한약사회를 향해 더 적극적으로 정부 및 국회와 소통해 해결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광훈 대한약사회장 


이와 관련해 최광훈 대한약사회장은 최근 출입기자단과의 신년간담회를 통해 "여러 일을 하면서 수급불안정 의약품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음에도 그 부분의 성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는 많은 약사들이 강조하는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 간소화 등의 방안 제시에 대해 "성분명 처방이 최종적인 목표이고, 대체조제 간소화 및 활성화는 빠르게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라고 생각한다"면서 "우선적으로 대체조제 활성화를 해야하는데, 시행령 및 규칙의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보건복지부 및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안으로 언급된 급여 및 처방 제한에 대해서는 "생각은 굴뚝 같지만, 정부가 정해서 처방을 제한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다"면서 "늘상 건의를 하고,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생각처럼 쉬운 부분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대한약사회 혼자서 수급불안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급불안정으로 인한 피해 최소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겠다"면서, 지난해 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에 올라간 수급불안정 관련 법안을 빠른 시간 내 통과시킬 수 있도록 힘쓸 것을 약속했다. 

한편, 최근 정부가 의약품 수급불안정 원인 중 하나로 사재기를 언급하며 약국 및 의료기관의 현장조사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 약사사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근본적 대책 마련도 아닐 뿐더러, 약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총회에서 다수의 약사는 "의약품 수급불안정이 약사들의 '매점매석'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의약품으로는 이익을 볼 수 없다"면서 "의약품 수급불안정을 마치 약사들이 사재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모든 책임을 돌리는 듯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을 피력하며, 정부가 의약품 수급불안정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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