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의대증원으로 인한 전공의 집단행동, 교수사직 등으로 의료공백이 커지면서 환자와 병원근무자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선천성심장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비롯해 중증환자들은 앞으로 이 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우려와 불안감을 토로하며, 정부와 의료계에 원망을 나타냈다.
병원근무자들도 대형 병원이 비상경영체계로 전환하면서 직원들의 무급휴가를 권고하고, 휴직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과 함께 최소한의 운영인력을 기반으로 고강도 근무환경을 조성하면서 환자를 돌보는 데 한계 상황이라는 호소가 나온다. 의료정상화 요구가 커진 것이다.
29일 서울대의대 융합관 양윤선홀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서울대학교병원 비상대책위원회 주최‧주관으로 열린 '모두를 위한 의료개혁 : 우리가 처한 현실과 미래' 심포지엄에서는 '현재 의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에 대한 패널토론이 진행됐다.
패널토론자로 나선 안창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회장은 "절대 환자 곁을 떠나지 말고 지켜주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결국엔 교수들도 전공의를 지키겠다고 사직서를 쓰고, 지금 결과를 보면 원했던 대로 됐는지 묻고 싶다. 환자들은 교수들마저 우리를 버릴 수 있구나, 절망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환자 피해가 뻔히 눈덩이처럼 커질 게 보인다. 지금 전공의가 떠나고, 많은 사람들이 의료체계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선천성 심장병'은 암이나 다른 중증질환과 달리, 갈 곳이 없다. 지금 서울대도 정상적으로 수술을 다 해내지 못하고 있고, 약 67개 병원이 전국에 있지만 정상적으로 수술되는 곳이 없다"고 호소했다.
안창호 회장은 "어디로 보내줄 수 있나? 이런 부분이 지금 너무 걱정돼서 계속 의료진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결될지. 끝이 보이지 않고 보호자들은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또 "전공의 이탈 100일, 지금 돌아보면 의대입학정원 늘리는 걸로 의료가 무너지는 게 아니라, 이에 반대해서 집단행동을 하는 전공의로 인해 우리나라 의료가 무너지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고 원망의 목소리를 냈다.
의료대란으로 비상의료체제에 돌입한 대형 병원들로 인해 환자뿐 아니라 간호사를 비롯한 병원근무자들도 피해를 입는 상황이 확인된다.
윤태석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분회장은 "의대정원으로 시작된 의료대란은 불통의 정부, 집단행동을 한 의사들에 의해서 국민 건강권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으로 인해 발생한 의료대란 책임이 더 크긴 하지만 의사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매몰된 투쟁과 책임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에서는 PA(진료지원) 간호사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병원장 결정에 따라 일부 의사 업무를 PA간호사가 할 수 있게 열어놨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다. 서울대병원은 PA업무를 간호사들이 다양한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불법적인 부분도 있고, 어려운 부분도 있기 때문에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이런 업무를 감내하게 하기 위해 신규 간호사 시범사업이라는 이유로 PA로 발령내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매년 수천억원의 의료수익을 낸 것으로 파악되는 대형 병원들조차도 단기적인 재정 적자를 이유로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단기적인 재정적자를 해소하는 데 가장 쉬운 방법은 직원 근로조건을 쥐어짜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무급 휴가다. 3개월이 지난 지금 무급휴가가 아닌 휴직을 제도화하는 병원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최소한의 병원인력만을 남겨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병영경영실태를 비난했다.
윤태석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분회장은 "서울대병원은 상급 종합병원임에도 불구하고 간호사 등이 여전히 1인당 10명 이상의 환자를 본다, 할당된 환자가 많기 때문에 밥도 제때 못 먹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면서, 환자를 제대로 케어할 수 있겠냐, 이 같은 악순환이 지속되면서 사직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의 장기화, 고착화에 우려를 나타냈다.
◆ "전공의도 환자 곁으로 오고 싶어서 투쟁하는 것"
의료계는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정책에 반발해 병원을 떠났지만, 오히려 환자 곁으로 돌아오기 원하고 필수의료에 종사하기 위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에서 증원정책을 재검토하고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의료공백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패널토론에서 하은진 서울대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은 "지금 가장 힘든 건 환자들이고, 그 환자들이 안전한 의료를 제공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런데 전공의들도 환자를 생각하고 있다. 환자 곁으로 오고 싶다. 사실은 본인들이 필수의료에 계속 종사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투쟁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이라고 전공의들의 사정에 대해 말했다.
이어 "이 상태에서 억지로 다시 돌아와서 끼워 넣으면 조용한 사직이 안 일어날까, 계속 일을 하고 싶게 해줘야 한다. 내 일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 때 내 인생 전부를 갈아넣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니 정부에서 달라져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다"며 증원정책 중지를 촉구했다.
박종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현재 문제는 전공의 부재"라며 "그들이 나간 것은 의대정원의 문제지, 필수의료패키지에 대한 반발이 아니다"라고 정리했다.
이어 "의대정원을 정부에서 말한 대로 확대할 경우, 정원이 확대된 의대는 의학교육인증평가를 통과할 수 없다. 그런데도 증원에 대해 거침없이 진도가 나가고 있다"며 앞으로 졸속 인증평가가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박종훈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 의료계는 역사상 가장 참담한 시기를 맞고 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의료계와 단 한번도 진지한 협의 없이 진행하면서 지금도 계속 대화의 제스처를 보이면서 의료계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결국 우리들의 자존감을 완전히 짓밟아버린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고, 이것이 어떤 휴유증으로 남을지에 대해서 굉장히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고 밝혔다.
◆ 복지부, 의료계 대표할 대화 창구 '부재'…의료계, 의협 있는데 "황당하다"
패널토론에서는 의료계와 소통을 해서 의정갈등 돌파구를 찾고 싶지만 대표적인 창구가 없어서 답답하다는 목소리도 나와 의료계의 눈총을 샀다.
김한숙 보건복지부 의료정책과장은 "앞으로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 정부에서도 대응을 해야 되고, 마지막까지도 어떻게 보면, 그런 국면을 바꿀 방법은 없는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이러한 긍정적인 논의를 할 방법은 없는지, 그럴 때 정부에서 일하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지금 의료계 내부에 이니셔티브 그룹이 진짜 안 보인다. 정말 그게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희경 좌장은 "의사를 대표할 수 있는 집단이 없다. 대화창구가 없다고 말했는데 '의협(대한의사협회)'이 있다. 의협이 법적기구다. 의협이 다양한 이야기를 충분히 수렴할 수 없다고 해도, 그럼에도 의협이다"라며 "거기에 대해서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고, 의사들이 다 같이 모여서 변화를 시킨다 하더라도 결국은 의협이다. 다른 채널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의사들 입장에서 황당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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