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증' 따라 달라지는 신약 가격‥한국에서도 도입 가능할까

적응증별 약가 산정, 환자 접근성과 건보 재정 균형 방안으로 주목
다중 적응증 신약 증가, 해외 도입된 적응증별 약가제 국내에서도 논의
제도의 개편, 약가 조정 및 정산 체계 정비, 처방 왜곡 방지 방안 필요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3-12 11:56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같은 약이라도 치료 대상이 다르면 가격도 달라야 할까'. 신약의 적응증별 가치에 따라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적응증 기반 약가 산정 제도(Indication-Based Pricing, IBP)'가 제약업계에서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암과 희귀질환을 겨냥한 고가 혁신 치료제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동일한 약물이라도 적응증에 따라 치료 효과가 다르고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 역시 달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신약의 '단일 약가' 체계에서 벗어나, 적응증별로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IBP는 동일한 의약품이라도 치료 대상(적응증)에 따라 가격을 달리 책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한 항암제가 A 암종과 B 암종에 모두 적응증을 받았지만 A 암종에서는 생존율 개선 효과가 크고 B 암종에서는 상대적으로 낮다면, A 암종 치료 시에는 높은 가격이, B 암종 치료 시에는 낮은 가격이 책정될 수 있다.

이러한 제도는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히 논의 중이며, 일부 국가는 실제로 적용 사례를 보이고 있다. 특히 영국, 호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는 다중 적응증을 가진 약제의 경우, 적응증별 비용 효과성과 사용량을 고려해 약가를 산정하거나 보험 재정과 연계한 조정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학술지의 '적응증 기반 약가 산정 제도 도입의 어려움과 선행요건 고찰'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IBP 시스템의 도입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적응증별 개별 허가 방식'은 동일한 성분의 약물이더라도 적응증별로 별도의 품목 허가를 받고, 각 품목에 대해 별도 가격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에서 선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내 사례로는 '비아그라(발기부전)'와 '레바티오(폐동맥 고혈압 치료제)', '프로페시아(탈모 치료제)'와 '프로스카(전립선비대증 치료제)'처럼 동일한 성분이지만 함량과 적응증이 다른 제품으로 허가된 사례가 있다.

'사후 정산 방식'은 약제의 유통 가격은 동일하게 유지하되, 보험자와 제약사가 적응증별로 사후 정산을 통해 실제 가격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스위스, 이탈리아, 호주 등에서 적용되고 있다. 스위스는 적응증별 코드 부여 및 환급률을 차등 적용, 이탈리아는 적응증별 환급 계약 모델을 운영, 호주는 가중평균가 도출 후 계약을 통한 가격 조정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표시 가격 방식'은 동일한 약제라도 적응증별로 표시된 상한금액을 다르게 책정해 유통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의약품 유통 단계에서의 가격 책정 및 관리가 어려워 해외에서도 실질적으로 적용된 사례가 거의 없다.

보고서는 IBP 시행을 위해 현행 품목 허가 제도의 개편, 약가 조정 및 정산 체계 정비, 처방 왜곡 방지 방안 마련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 중 환자가 본인부담금을 낮추기 위해 실제 적응증이 아닌 저렴한 적응증으로 처방받는 '처방 왜곡' 발생의 우려가 컸다. 아울러 IBP가 환자 본인 부담금 차등화로 이어질 경우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한 정량적 비용-편익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IBP를 국내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건강보험 제도와의 정합성이 중요한 문제다. 현재 국내 건강보험에서는 단일 약가 체계를 유지하고 있어 동일 약제의 적응증별로 가격을 차등 적용할 경우 재정 정산 문제, 보험 청구 시스템 개편, 의료기관 및 약국에서의 처방 오류 방지 등의 과제가 뒤따른다.

또한 IBP 시행 시 환자 본인부담금 차등화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 적응증별로 약가를 차등 적용하더라도 환자 부담이 불균형하게 증가하지 않도록 별도의 재정 지원 체계 마련을 제안했다.

앞서 언급됐듯 스위스, 이탈리아, 호주 등에서는 다중 적응증 약제에 대해 적응증별로 환급률을 차등 적용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국내에서도 제약사-보험자 간 사전 계약을 통해 적응증별 환급 모델을 마련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 중에서도 제약사와 보험자 간 협상을 통해 적응증별 실사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산 체계가 추천됐다.

국내에서도 혁신 신약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기존의 단일 약가 체계로는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해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사용범위 확대 협상제도 성과 공유 및 개선 방안 모색' 세미나를 열어 적응증별 약가제도 관련 산업계 및 학계 의견을 수렴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는 재정 영향 분석, 법적 근거 마련, 청구·정산 시스템 등 인프라 구축, 처방 왜곡을 막기 위한 방안 마련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보험자 입장에서 여러 비용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제도 도입에 있어 중장기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면질의 답변에서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관계자는 "국내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 측면에서 적응증별 약가제도 등 다양한 급여모형 도입에 대해 우선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감한다"며 "국내 건강보험제도 내에서의 운영 적합성, 제도 도입에 따른 편익, 건강보험재정 및 사회적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도 도입 필요성에 대해 지속 검토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보기

늘어나는 치료제 적응증‥'적응증 기반 약가제도' 가능할까?

늘어나는 치료제 적응증‥'적응증 기반 약가제도' 가능할까?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점차 늘어나는 다중 적응증 약제를 놓고, 이들의 약가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그 중 적응증별로 비용효과성을 고려해 가격을 책정하는 방법이 제안됐다. 이미 영국, 호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는 다중 적응증 약제에 대해 적응증별 비용효과성이나 사용량을 고려한 '적응증 기반 약가제도(indication-based pricing, IBP)'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IBP를 국내에 적용하기엔 여러 제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IBP를 시행하려면 품목 허가 제도, 약가

多 적응증 치료제, 정체된 급여‥새로운 약가제도 절실

多 적응증 치료제, 정체된 급여‥새로운 약가제도 절실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다중 적응증을 가진 치료제가 증가하고 있지만, 급여 적용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난제로 남아 있다. 그로 인해 초기 적응증에 비해 후발 적응증의 경우 비급여로 남거나 급여 신청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응증 기반 약가제도(Indication-Based Pricing, IBP)'의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으며, 이를 보완하는 '기금화 제도'도 주목받고 있다. 이들 제도는 급여 적용의 한계를 극복하고, 혁신적 치료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면역항암제를 포함한

이런 기사
어때요?

실시간
빠른뉴스

당신이
읽은분야
주요기사

독자의견

작성자 비밀번호

0/200

메디파나 클릭 기사

독자들이 남긴 뉴스 댓글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