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은 끊기지 않는다"‥중환자실에서 터져나온 의료진의 절규

"병상만 늘려선 안 된다"‥정책 소외된 중환자의료, 의료진은 '한계 상황'
'양적 개혁'에 가려진 중환자의료…전담인력·전원체계는 여전히 공백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4-26 05:56

(왼쪽부터) 대한중환자의학회 박성훈 총무이사, 홍석경 기획이사, 조재화 회장, 정통령 공공보건정책관.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중환자실에 있으면 쉬는 날도 환자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요. 콜은 계속 오고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죠."

지난 25일 열린 2025 대한중환자의학회 정기학술대회 현장은 정부가 말하는 '의료개혁'의 전선에 중환자의료가 존재하는지 되묻게 만드는 의료진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병상 수 확충'이라는 구조적 대응 속에, 진료의 질을 떠맡은 의료인력은 여전히 고립된 채 버티고 있었다. 실제로 정부와 의료계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중환자실 병상 확대와 장비 보강 등 양적 팽창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위기 상황에서의 일시적 기반을 마련했을 뿐, 중환자의료의 본질인 '질적 개선'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중환자 진료는 고강도 업무 그 자체지만, 더 큰 문제는 대체 인력 없이 24시간 호출에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됐다는 점이다.

대한중환자의학회 박성훈 총무이사(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는 "중환자실은 실질적 관심을 못 받고 있다. 일은 더 많은데 정책적으로는 늘 후순위였다"고 말했다.

"이번 학회에 1200명이 넘게 참여했지만 마음 편히 앉아 있는 의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환자가 하루하루 다르게 변하기 때문에 주말에도, 퇴근 후에도 계속 뇌리에 남는다"고 털어놨다.

학회 기간에도 콜을 받는 현실은 중환자실 의료진이 겪는 구조적 피로의 단면이라는 설명이다.

중환자실에서의 '버팀'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 한계 상황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중환자의학회 홍석경 기획이사(서울아산병원 외과)는 "지방에서는 교수들이 업무 과중으로 중환자실을 떠나는 일도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병동 당직과 중환자실 당직은 완전히 다르다. 작년까지는 3일에 한 번꼴로, 지금은 5일에 한 번 당직을 서고 있지만 그날은 거의 한숨도 못 잔다"고 말했다. 홍 이사는 전공의 대체 인력 없이 당직을 지속하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강조한 것이다.

중환자실 병상 수를 늘리는 정책 방향 자체에 대한 반론도 제기됐다.

홍 이사는 "그동안 중환자실은 병원에서 적자를 생산하는 공간이었고 의료진에게도 '고생만 하고 보상은 적은 곳'이었다. 최근 수가가 일부 현실화되면서 이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이것이 곧 근본적 해결은 아니다"라고 짚었다.

중환자의료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선 단순한 병상 수 증가가 아닌, 환자 상태에 따른 병상의 계층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홍 이사는 "중환자실 등급을 단순히 전담 의사 수나 병상으로만 나누지 말고, 인프라와 환자 상태에 따른 병원의 진료 역량까지 반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중환자학회는 2015년부터 등급제를 요구해 왔고, 코로나19 당시야말로 중환자실 등급화의 필요성이 극적으로 드러난 시점이었다는 설명이다.

'중증도 중간'에 해당하는 환자를 수용할 준중환자실의 필요성도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현재까지 뇌졸중 집중치료실과 고위험 산모 집중치료실을 제외하면 별도의 건강보험 수가를 적용받는 준중환자실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홍 이사는 "준중환자실에 대한 연구는 완료됐지만 수가를 올리고 등급화하는 논의는 의정 갈등으로 멈춰버렸다"며 "논의는 멈췄고 연구 결과만 남은 상태"라고 말했다.

학술대회 세션에서는 중환자실을 전담전문의 중심으로만 운영하는 현재 구조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인력 부족이 문제라면, 타과 전문의가 일정 교육을 이수한 뒤 중환자실 업무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 의사는 "의사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타과 스페셜리스트가 교육을 받고 일정 역할을 병행할 수 있도록 열어줘야 한다"며 "하지만 중환자의학회가 다학제를 말하면서도 다른 과는 터치하지 말라는 분위기가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중환자의학회 조재화 회장은 "중환자의 삶을 위한 다학제 진료는 학회의 핵심 방향"이라고 밝히면서도 "다만 전담전문의의 책임과 역할이 희석되지 않도록 하는 원칙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환자 진료의 '다음 단계'인 병원 간 전원조차도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K대학병원 중환자실 의료진은 "응급실처럼 병상 현황을 확인할 시스템이 중환자실엔 없다. 환자 전원을 결정할 때마다 병원별 상황을 직접 알아봐야 한다"고 토로했다.

보건복지부 정통령 공공보건정책관은 이에 대해 "현재 중환자실의 전원 조율 시스템이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응급센터처럼 중앙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조사와 사업 계획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수가를 일률적으로 인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중환자실의 질에 따라 차등 보상하는 방향으로 내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환자의학회는 지금 이대로라면, 중환자의료는 10년 후에도 같은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는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다. 전담 인력 확충, 진료 표준화, 병원 간 협력 체계, 등급제 기반 수가 마련 등 핵심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중환자실은 여전히 정책의 바깥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다.

홍석경 이사는 "정부의 의료개혁 자료를 보면 소아중환자실을 제외한 중환자의료는 언급조차 없다. 의료개혁이 장기적 계획 없이 눈에 띄는 것만 급히 손보는 구조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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