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료기관 '격리·강박 금지'가 최선일까‥결국은 '인력 과제'

인권과 현실 사이‥'격리·강박' 둘러싼 의료현장의 고민
'격리·강박 금지'만으로는 해결 안 된다‥현장선 "인력 확충이 먼저"
 정부 대책은 '시범사업'뿐‥현장 체감은 아직 '변화 없음'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4-29 05:56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정신건강의학과 의료 현장은 연일 깊은 한숨으로 가득하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관련 법 개정이 이어지지만 의료계에서는 '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규제는 오히려 진료를 위축시킨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정신의료기관 입원 환자가 격리·강박 처치 중 사망하는 사건을 계기로, 환자 인권 보호와 격리·강박의 불가피성이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격리·강박 금지법'을 발의하며 인권 강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현실 대책 없는 규제 강화가 현장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해 격리·강박 시행 조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지시에 따라, 자·타해 위험이 현존하고 다른 방법으로 위험을 해소할 수 없을 때만 허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서는 의료기관 간 격리·강박 시행 비율이 큰 차이를 보였다. 기관별 환자 구성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기준을 벗어난 시행이 의심되는 사례가 상당수 확인됐다. 또한 지침상 최대 연속 시행 시간을 초과하거나 '훈련된 직원에 의한 시행' 원칙이 준수되지 않는 경우도 다수 있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지침은 있지만 지킬 수 없는 환경"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A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격리·강박은 극단적 위험 상황에서 최후 수단으로 쓰는 것"이라며 "환자가 폭력적 행동을 보일 때 대응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면, 환자 보호와 의료진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조기 격리에 들어가는 경우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현행 정신의료기관 인력 기준은 ▲입원환자 60명당 정신과 전문의 1명, ▲13명당 간호사 1명 배치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 기준을 충족하는 기관은 소수에 불과했다. 특히 환자의 불안이나 폭력성을 초기에 완화하려면 지속적인 관찰과 심리적 개입이 필요한데, 인력이 부족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B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야간에는 간호사 2명이 모든 환자를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환자가 난동을 부리거나 자해 위협을 할 때 격리·강박 외에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격리·강박을 금지하자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대안을 위한 인력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현재처럼 의사 1명이 수십 명 환자를 커버하는 구조에서는 아무리 규제를 강화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수가와 관련해 정부도 여러 대안을 구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급성기 치료 활성화 시범사업'을 통해 강화된 인력 기준과 급성기 치료 수가를 도입하고 있다.

다만 해당 시범사업의 참여율은 20%에 그쳤다. 시범기관에서는 입원일수가 줄고 외래치료 유지율이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수가가 충분치 않아 의료기관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계는 "급성기 정신과 진료는 고위험 환자를 상대로 고강도 모니터링과 처치를 해야 하는데, 이에 걸맞은 보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격리·강박을 대체할 수 있는 '비강압적 치료 모델' 도입도 제안하고 있다. 비강압적 치료 모델은 충분한 인력을 기반으로 환자와의 신뢰를 구축하고, 비폭력적·비제한적 환경을 조성해 문제 상황을 예방하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의료계는 비강압적 치료를 위해 최소 2~3배의 인력 추가가 필요할 것이라 예상했다.

A 전문의는 "비강압적 모델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국내 현실은 기본 인력조차 부족하다"며 "격리·강박 금지법이 시행되면 환자 1인당 하루 최소 안전요원이 현재보다 4~5배 늘어나야 한다. 공허한 구호보다는 지금 당장 병동에 사람부터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계는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취지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격리·강박 금지라는 단편적 해법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충분한 의료인력 확보, 현실적인 수가 체계 마련, 급성기 정신과 진료에 대한 사회적 투자와 지원이 병행될 때 비로소 환자 인권도, 안전도 함께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B 원장은 "또다시 대형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현실을 돌아보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이번만큼은 현장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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