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제약 前MR "난 A이사 사단 총알받이에 불과했다"

영구 대기발령 운운 ERP 강요…회사 안팎에서 고통 '토로'

이상훈 기자 (kjupress@medipana.com)2016-03-07 06:09

 
지난해에는 한국 제약산업 역사에 있어 굵직한 획을 그은 한 해였다.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대박과 더불어 역대 최대 규모의 수출, 그리고 최다 국산신약 허가라는 의미있는 한해를 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제약 영업현장을 누비는 영업사원들의 삶은 나아진 게 없다고 하소연 한다. 
 
일부 제약기업은 인센티브를 대폭 늘려, 리베이트 자금으로 활용하게 한다. 리베이트 영업 적발시 일명 꼬리자르기를 위해서다. 지난해 특허 만료된 '시알리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영업 형태가 유행처럼 번졌다. 급기야 보건당국이 나서 과도한 샘플링을 포함, 공격적인 영업행위 자제를 요청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메디파나뉴스가 평범한 청년에서 리베이트 영업을 한 '범법자'로 내 몰리다 못해 구조조정 대상 1순위가 되어 버린 영업사원들의 이야기를 다뤄봤다.<편집자주>
 
Ⅰ. 다국적사 ERP 대상자의 마지막 메시지
Ⅱ. 범법자로 내몰리는 젊은 청년 영업사원들
Ⅲ. 윤리경영 없이는 글로벌 진출 어렵다
 
 
 
 
 
 
 
 
 
 
 
 
 
[메디파나뉴스 = 이상훈 기자] 지난해 말부터 올해초까지 제약업계는 때아닌 구조조정으로 시끄러웠다. 다국적제약사에 시작된 희망퇴직프로그램(ERP)이 국내 제약사로까지 번졌다.
 
특히 영업사원들이 칼바람을 맞았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 보다 많은 제약기업들이 영업조직 슬림화에 나섰다는 주장은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지난해 ERP 대상자 시점에서 구조조정 칼바람 중심에 있었던 전 다국적제약사 영업사원의 현실을 재구성했다.
 
[2015년 11월 3째주 토요일]
세계 10위권 내 거대 제약사 MR인 나는 주말인 오늘도 애마 K를 타고 경부고속도로에 올랐다.
 
사실 난 말이 좋아 거대 다국적 제약사 영업사원이지, 실상은 국내 영업사원과 별반 다를게 없다. 국내 최대 병원 원장에게 문전박대 당하고 무시당하기 일쑤다.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리베이트 기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회사 생활도 그리 달갑지는 않다. 주말에는 사비 털어서 1박 2일 워크숍 가고, 의사 접대도 모자라 임원급 골프접대로 바쁘다. 말그대로 나는 '갑'의 횡포에서 신음하는 '을'도 '병'도 아닌 '정'이다.
 
'에휴 여자 친구 만난지가 언제인지...' 연거푸 한숨이 나오지만, 오늘도 나는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를 힘차게 밟을 수밖에 없다. 골프장 입구에 들어서자, A사단 소속 동료들이 보인다.
 
그렇다 대부분 다국적사 내부에는 파가 갈려있다. 잘나가는 임원급들에게는 그들을 추종하는 '키즈'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영업부 A이사 사단이다.
 
[2015년 11월 4째주 수요일] 또 호출이다. 오늘은 A사단 긴급 회식 자리다. 요즘 우리 회사는 구조조정 이슈로 시끄럽다. 그래서 꽉 막힌 올림픽대로 만큼이나, 내 가슴도 턱턱 막혀온다.
 
가까스로 회식장소에 도착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 '누군가는 구조조정 총대를 메야할 시간이 임박했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A이사의 일장연설이 시작됐다. B팀장 아들이 내년에 대학에 들어간단다. C차석은 분양받은 아파트 2차 중도금 납부가 코앞이라고 두둔한다. 이로써 총대를 메야할 대상은 우리 같이 힘 없는 막내 영업사원들, '정'으로 범위가 축소됐다.
 
답답한 마음에 잠시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는데, 출석체크 한다는 말 한마디에 다시금 주저 앉았다.
 
우리 회식은 이렇게 중간 중간 출석체크를 한다. 마음 놓고 담배도 못 태운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자칫 A이사 눈밖에라도 나면 큰일이다.
 
[2015년 12월 첫째주 월요일]
결국 일이 터졌다. 옹기종기 모인 직원들 사이에서 안도와 한숨이 교차했다.
 
뒷머리를 강하게 한 대 얻어 맞은 것 처럼,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A이사 사단에서는 내가 유일하게 총알받이가 됐단다. 지난 몇년간 겪었던 온갖 일들이 파노라마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동고동락했던 A이사를 비롯 매니저급과 면담이 남아 있다. "그들은 설마 날 버리지는 않겠지..."
 
[최종 면담일] 매니저 지시 대로 상급종합병원에 코드를 넣기 위해 열심히도 뛰었다. 다른 약만 쓴다는 병원장 만나가며 어렵사리 '듀얼코드' 성공도 많이 시켰다. 갖은 수모 다 참고 견뎌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최종면담에서 돌아온 말은 의외였다. 영구 대기발령 내릴 수도 있다는 따뜻한 조언까지 나왔으니, 더 이상 할말이 없다. 그것도 리베이트 문화와 수직적 상하구조 중심에 있던 그분들에게 말이다.
 
제약사 영업사원으로써의 나의 역할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이제는 훌훌 털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난다. 남아있는 내 동료들 건투와 제약 영업사원 근무 환경 개선을 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고 싶다. "매니저, 임원분들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나는 젊은 영업사원 시절로 돌아가서 그때를 돌이켜 봤으면 합니다. 얼마전까지 함께 약 가방 들고 술잔 기울이던 후배들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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