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가중처벌'과 '무관용 원칙', 진료실 비상벨과 안전전담요원 배치 등 각종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진료 중인 의사의 생명이 위협받는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진료실 안에 '혹시 나도?'라는 불안감이 넓혀지는 가운데, 환자 건강과도 직결되는 진료실 안전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 강구되고 있다.
의료계는 사건이 발생할 때만 한시적으로 관심을 갖고 '보여주기식'의 대책을 만들어 온 현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며, 의사의 안전이 곧 환자의 안전이라는 명제 아래 실질적인 의료기관 안전 대책과 지원을 촉구했다.
나아가 의사의 최선을 다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부정적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의사에게 물으려는 환자의 보복 태도에 경종을 울리며, 의사에 대한 폭력 행위는 환자 안전에도 위해를 줄 수 있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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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응급실 살인미수 사건 발생…故 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에도 폭력 '여전'
최근 용산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 중이던 응급의학과 의사가 환자의 보호자가 들고 온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을 찾은 가해자 아내에 대해 심폐소생 등 최선의 진료를 다한 의료진에게, 아내가 사망한 책임을 돌리며 직접 쇠붙이를 준비해 해당 의사의 목 부위를 찌른 것이다.
지난 2018년 12월 진료실에서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끝내 사망한 故 임세원 교수의 사건을 연상케하는 끔찍한 사건이 재발하면서, 의료계는 가해자의 행태를 '살인미수'라며 강도 높은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故 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응급실과 진료실 내 의료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안이 마련돼 의료기관 내 보안 인력과 비상벨 등 장비를 설치하고, 의료인을 폭행해 상해·중상해를 입히거나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 처벌을 강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故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의료계에는 2019년 10월 서울 대학병원 흉기 난동에 의한 의사 손가락 절단 사건, 11월 부산 병원직원에 대한 흉기 난동 사건, 12월 천안 대학병원 상해 사건, 올해 초 경남 의료기관 방화사건 등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응급의료현장의 폭력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선지 오래이고, 응급의료인에게 폭력은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언어폭력, 성희롱과 같은 정신적 폭력까지 생각하면 하루 단위가 아닌 시간 단위로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17일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은 유제열 용인동부경찰서장(왼쪽에서 세 번째)를 만나 사건의 엄정수사를 촉구했다.
◆ 실효성 없는 안전대책, 의료기관에 부담만…필수의료 응급실 안전 위한 지원 필요
늘어나는 법과 제도, 높은 처벌 수위에도 불구하고 왜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는 것일까?
응급의학의사회는 그 이유에 대해 "의사 폭행죄의 처벌이 강화되다 보니 경찰이나 검찰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입건하는 자체를 꺼리게 되고, 이는 응급의료인에 대한 폭력이 발생해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부르고 있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또 재발 대책으로 만든 비상벨 설치, 안전요원 배치, 뒷문 설치 등의 정책 역시 오히려 의료기관에 규제로 돌아올 뿐 실효성이 없다는 설명이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국가 지원은 없이 제도만 만들다 보니 진료실 안전을 위한 조치들을 전적으로 병원이 부담해야 한다. 새로 인원을 채용해야 하고, 비상벨 설치 및 뒷문 설치 등은 재정적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회장은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은 엄연히 공익적 영역이기에 의료인에 대한 안전과 보호를 보장하는 일 역시 공익활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책임지고 진료실 안전을 위한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성훈 의협 법제이사는 "의사는 공익성을 갖고 책임을 다해 환자를 보고 있고, 어떠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공익성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보호도 되지 않는다면 그럴 이유가 없다. 국가나 사회가 공익성을 부여해 놓고, 의사를 보호하는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라며 “의료계의 도움 요청은 타당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응급의학과의 경우 새벽 1시에도 심정지 온 환자를 받아야 하는 진정한 필수의료로 국민 생명과 직결된 분야다.
이필수 회장은 "진료 최일선에서 소신껏 진료하고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지료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응급실에서 위해를 가하는 이들은 진료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응급실의 다른 환자의 진료까지 방해해 다른 환자의 생명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의료계는 실질적으로 응급실 안전을 위한 진료 예산 지원, 응급 의료기관에 대한 경찰의 순찰 등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 폭언·위협만 가해도 처벌하고 안전요원 배치 비용 지원…보복성 범죄 대책 마련
그렇다면 의료계가 요구하는 구체적인 대책은 무엇이 있을까?
이필수 회장은 "대한의사협회와 경창철 등이 직접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회에서도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국회와의 논의를 통해 강력한 법안을 만들어 안전한 진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간의 정책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은 채 '보여주기식' 대책이었던 만큼, 의료계와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 바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전성훈 법제이사는 "정부는 의료인의 안전이 국민 안전과 직결된다는 인식을 갖고 정책을 만들어 주시기 바라며, 국회에서는 택시나 버스 운전자에게 폭행 혹은 위협을 가한 것만으로도 가중처벌을 하고 있는데, 의료진에 대해서도 단순히 위협을 하고 난동을 부리는 것 자체가 다른 환자에게 위험하다는 인식에 따라 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법원의 사례를 들며 필수의료인 응급실은 공익적 성격을 가지고 운영되는 만큼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써 국가가 안전요원 배치 비용을 지원할 것을 촉구했다.
전성훈 법제이사는 "먼저 규모 있는 응급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해서 이러한 조치가 의료인의 상해를 줄이고, 효과가 있다고 하면 예산과 타당성을 비교해 점차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이연 의협 홍보이사 특히 이번 사건을 통해 의사의 전문적 의료행위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며, 의도치 않은 불가역적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의사에게 물으려 하는 사회 분위기는 금물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해당 의사는 2시간에 걸쳐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을 찾은 가해자 아내에게 심폐소생술을 했다. 하지만 환자의 보호자 입장에서 바랐던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의료진의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가해자는 이를 의사의 책임으로 돌려 보복성 위해를 가했다"며, 가해자 입장에서 행동을 정당화할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인식을 경계했다.
그는 "이러한 인식은 위험을 수반하는 의료행위를 위축시킬 것이고, 응급의학과와 같은 필수의료 인력의 유입을 막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의사협회는 재판 패소에 앙심을 품고 대구 변호사사무실에 방화를 저질러 7명을 숨지게 한 사건에 대해, 직종은 다르지만 보복성 범죄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보고 변호사협회와 함께 힘을 합쳐 보복성 범죄 예방을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설 계획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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