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계약 실상은 협상 없는 통보·고시…의료계 불만 고조

법적으로도 계약으로 보기 어려워…정상화 필요
"수가체계 살아야 필수의료 산다…참여 거부 심각히 고민할 시점"

조후현 기자 (joecho@medipana.com)2023-08-14 06:04


[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불합리한 수가협상 구조에 대한 의료계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운영위원회에서는 수가 인상분인 밴드 규모를 객관적 데이터 등 근거를 공개하지 않은 채 심리적 상한선에 의한 '깜깜이'로 설정하는가 하면, 이를 공급자 단체별로 눈치를 보며 나눠먹는 방식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가계약제도라는 명목처럼 협상에 의한 계약이 아닌 사실상 통보되는 고시 제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고질적 저수가 문제는 필수의료 붕괴와도 무관하지 않은 만큼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지난 12일 불합리한 수가협상 개선방안 심포지움을 통해 수가계약 제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먼저 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은 발제를 통해 보건의료정책 전반에 대한 국가 정책 비전이 확립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 원장은 수가계약 무용론이 나오는 가운데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나 실손보험과 건강보험 관계 설정, 병상 수 정책 등 수가계약제 이전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상황이라는 점을 짚었다.

이 같은 보건의료체계는 모두 연계되는 만큼 향후 수가계약제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보건의료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비전과 목표를 다시 설정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의협 조정호 보험이사는 고질적으로 지적되는 수가계약제 문제를 되짚었다.

조 보험이사는 먼저 수가계약 당사자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지만 정적 협상은 재정운영위 심의·의결 내용에 따라 진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을 지적했다.

또 밴드는 물가인상률 등과 무관하게 1조 원이라는 심리적 상한선을 감안해 설정된다는 점도 꼬집었다. 실제 지난 2020년 물가인상률은 1.5%, 2021년은 0.4%, 2022년은 0.5%, 2023년은 2.5%, 2024년은 5.1%지만 같은 기간 밴드 규모는 9416억 원에서 1조1985억 원 사이에 머물렀다. 인상률로 봐도 2020년 2.29%, 2021년 1.99%, 2022년 2.09%, 2023년 1.98%, 2024년 1.98% 등 물가인상율과 무관하게 2% 내외로 통제되는 모습이다.

특히 공급자 단체 입장에서는 공단이 사전에 정보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막판에 제시한 유형별 순위 및 재정 증가폭을 수용할 것인지 여부만 결정하는 구조적 한계를 갖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협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상호 의견을 조율하고 협의를 이루는 과정이 없다는 것.

조 보험이사는 통보식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재정운영위에 공급자 위원 참여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건강보험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정운영위가 밴딩 폭 결정 등 협상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으나, 공급자 위원 참여가 배제되면서 통보만 받는 한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밴딩 규모도 물가인상률과 최저임금 등 객관적 지표를 반영해 설정돼야 하며, 협상 전에 밴드 규모와 설정 근거를 공급자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또 협상이 결렬될 경우 통보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의결 전 중재기구를 통한 중재과정이 필요하다는 점도 설명했다. 공급자 및 가입자가 동수로 추천하는 보건의료전문가로 구성한 별도 중재기구를 신설,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이다.

대한의원협회 장성환 법제이사는 현행 수가계약제가 법적 관점에서도 불합리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계약은 당사자간 의사합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따라서 협상이 결렬될 경우 당사자 의사합치가 없으므로 계약이 성립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수가계약은 협상이 결렬되지 않으면 그대로 통보되고 건정심에 의결된다는 지적이다.

장 법제이사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도 지난 2020년 4월 관련 위헌소송을 기각하긴 했지만, 이 같은 수가계약제 구조에 대한 문제인식은 갖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피청구인은 국가가 결정하는 점수표 내용을 의약계 대표자들에게 제시한 다음 대표자들이 법정기간 내 수용하지 않을 경우, 고시의 형태로 매년 발령할 수 있을 것"이라며 "피청구인으로서는 의약계 대표와 합의성립 여부와 상관없이 위 고시 내용을 결국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어서, 현행법의 '계약·고시 혼합구조'상으로는 상대가치점수를 정하는 것을 계약에 포함시킬 실익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장 법제이사는 "계약의 본질에 부합하려면 협상이 결렬될 경우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귀결돼야 한다"며 "일방적으로 정한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그대로 고시로 정하거나 오히려 패널티를 부과해 당초 제시한 인상률보다 낮추더라도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재정운영위 구성 문제점도 꼬집었다. 주로 가입자들로 이뤄지는 특성상 운영위원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편향된 자료만 보고 그대로 결정하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그는 "공급자 대표자와 재정추계에 전문성 있는 위원 참여가 필요하다"며 "현재와 같은 거수기 기능만 하는 가입자단체는 인원을 대폭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수가협상단장을 맡았던 의협 김봉천 부회장은 토론자로 나서 일방적 수가협상에 대한 회의감을 전했다.

김 부회장은 "올바른 수가체계를 만들어야 젊은 의사의 필수의료 지원이 늘고 한국의료가 정상화되는 길이라는 것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며 "일방적이고 개선되지 않으며 되풀이되는 수가협상은 이제 멈춰야 한다. 지금 같은 현상이 이어진다면 참여 거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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