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법조계에서도 의대정원 증원 정책에 유연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책 전면 철회도 강행도 아닌 선택지로 임시정원 개념 도입도 함께 제안했다.
26일 석희태 경기대학교 법학과 명예교수는 대한변호사협회 주최 의료비상사태 해결을 위한 토론회 발제를 통해 이 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석 명예교수는 먼저 의사 수요 증감은 다각적 측면에서 고려돼야 하는 만큼 단순한 의사 총규모 확충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점을 되짚었다.
인구 감소가 수요를 낮추는 동시에 고령화는 수요를 높이고, 의료기술 발전과 AI 활용 영향이 수요를 줄이지만 한국의 높은 의료서비스 기대치와 첨단 의료서비스 요구는 수요를 증가시킬 것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고령화는 노인 진료나 종양학, 심장학 등 특정 전문분야 의사 수요를 늘리는 등 의사 수요 증감은 지역·진료부문별로 나타나는 측면이 있어 일률적 의사 총규모 확충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석 명예교수는 기존 진료 분과 재편성 및 특화, 의사 개인 역량 강화로 상당한 수요 충족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의료전달체계 재편과 수가 합리화, 의료기관 접근방법과 환자 운송방법 첨단화 등으로도 지역·전문과별 의사 쏠림을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의사 수요 증감에 한정된 분석이라는 점도 부연했다. 의료 공급비용 증감과 보험료 등 국민 부담비용 증감 문제, 의대정원 대폭 증가에 따른 교육 난제 등은 별론이라는 설명이다.
석 명예교수는 인공지능 'ChatGPT'도 의사 수요와 해법에 대해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인공지능 해석이 정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상공간에 올라 있는 의료 관련 국내외 통계와 담론을 근거로 작성된 다수 관점으로 이뤄진 중립성 강한 견해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석 명예교수는 지난 14일 ChatGPT를 의료 분야 전문가로 전제한 뒤 '진료과 편재 현상의 가장 적절한 해결책이 의대정원 증원을 통한 의사 총규모 확대인지'를 물었다. 그 결과 ChatGPT는 '가장 적절한 해결책이라 보기엔 한계가 있다'고 답했다. 단순한 의대정원 증원은 의료 자원 배분 불균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답변이다.
오히려 수가 개편, 업무환경 개선, 법적 책임 완화, 지방과 기피과에 대한 지원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진료과 편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적절한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의사 수 확대보다는 진료과 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정책적 개입과 시스템 개선이 더 중요한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의대정원 증원 한계와 맹점을 진단한 석 명예교수는 의대 증원에 영향을 미친 여론조사 결과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의대 증원 동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선 수많은 쟁점 파악과 전문가 수준 이해가 필요한데, 여론조사에 반영된 유의미한 이해가 어느 정도일지 의문이라는 시각이다.
석 명예교수는 "의대 증원과 같은 국가적 과제는 여론에 기초한 통치행정이라는 관념이나 정치적 판단에 따라 대응해선 안된다"며 "수많은 관련 요소에 대한 분석과 예측에 의거해 전문적으로 판단해야 할 중대지사"라고 설명했다.
석 명예교수는 대안으로는 의대 임시정원 개념 도입을 제안했다. 일본은 지난 2008년 의사 부족을 절감, 임시정원 제도를 도입해 7625명이던 의대정원을 7793명으로 증원했다. 지역할당에 따른 임시정원 추가배정으로 150명 정도를 늘린 방식이다. 이후 '경제재정계획 기본방침 2008'을 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2009년 입학정원을 8468명으로 증원했고, 2010년 이후엔 연구직할당 임시정원을 통해 8846명으로 증원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은 2008년 7793명부터 올해 9403명까지 꾸준히 의대정원을 늘렸지만 단번에 증원한 규모는 최대 500명 정도로, 점진적 증원을 지속해왔다는 설명이다.
석 명예교수는 이 같은 임시정원 제도 사례가 국내 의정갈등 탈출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향후 증감이 가능하다는 전제로 임시정원을 도입한다면 의료계와 의대는 유연한 준비가 가능해지고, 정부는 정책 백지화나 철회가 아닌 방식으로 의정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시각이다.
석 명예교수는 "의료개혁은 사회혁명도 군사작전도 아니다. 반동불용, 임전무퇴를 기치로 내세울 일이 아닌 과학적·합리적 계산에 따라 신중하게 진척돼야 할 국가 발전과정"이라며 "임시정원 개념 도입을 제안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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