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이정수 기자] 지난 1월 필수의료 지원대책이 발표된 지도 상당한 기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의료 현장에선 정책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정책만으로는 필수의료 확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고, 직접 의사에게 보상이 이뤄지는 등 실질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15일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2023 대한의학회 학술대회 중 '한국형 필수의료 확립 방안'을 주제로 한 토론세션에서는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대한 의료계 시각과 평가가 드러났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문재영 세종충남대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는 필수의료 지원정책이 갖는 현실적인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목했다.
발제에 따르면, 필수의료 지원대책에는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 기준 강화, 전공의 배치 기준 개편 등이 포함됐지만, 해당 정책은 의료기관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의사 개인과는 무관한 문제다.
또 지역 완결적 필수의료 제공을 위한 의사 고용 조건을 보면 주5일 외 주말근무, 야간당직, 응급실 진료, 투석실 근무, 계약직 등이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외 응급의료체계, 심뇌혈관 진료체계, 산모·신생아 진료체계 등에 대한 개편 방향과 초점이 국민을 위한 제도 개선에 맞춰져 있다는 점도 논의 대상이 됐다.
문재영 교수는 "당장 의료인이 영향을 받거나 의료인을 유인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돼야 그 의료인이 변화에 참여하고 국민이 정책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지원대책에는 제공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정책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필수의료 진료과목 의사들이 정책에서 느낄 수 있는 기대효과나 비전이 없으면 흉부외과는 응급중증 진료 대신에 하지정맥 수술로 개업을 할 것이고, 신경외과 의사는 뇌혈관 수술 대신에 척추질환으로 전공을 바꿀 거고, 산부인과 의사는 응급분만 당직을 해야 하는 대형병원을 그만둘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보람과 성취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 살 수가 없다.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적절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며 "다만 정책 제도만 바꾸려고 하면 혼란과 갈등이 조장된다. 문화·인식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전문의와 전문 인력에 직접 보상 지원 ▲의료진 당직비 지급 ▲정책 참여 유인 가능한 합리적 예산 규모 마련 ▲3~4일 근무제, 의사 다수 채용 등 통한 지역 의료 업무부담 완화 ▲융통성 없는 규정·근거와 사회적 편견 해결 ▲고비용 저효율 정책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날 패널 토론에 참석한 의료계 관계자들도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했다.
정재원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는 "필수의료가 제대로 작동을 하려면 재정적 부분이 중요한데, 기재부에서 이런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많다"며 "불가항력적 분만 사고가 국회에서 미뤄진 부분도 기재부에서 예산적 부분을 동의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발제에서 '의사도 사람'이라는 문구에 공감한다. 필수의료 정책은 결국 의사 개인이 덜 힘들도록 보완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필수의료 현장을 떠나게 될 것"이라며 "필수의료는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영역이다. 하기 싫은 것은 다같이 나눠서 해야 된다. 전문인력을 더 고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석준 고려의대 예방의학 교수는 "필수의료 영역도 소방서처럼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개념으로 풀어나가야 하지만, 재원 문제가 쉽지 않다. 기재부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현 지불체계인 행위별수가제에 대해 대안을 같이 고민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부 측 관계자로 이형훈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사진>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은 정책 설정과 추진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의료계 현장 얘기를 더욱 귀담아듣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은 "발표 내용에 답이 있고, 공감하고, 여쭙고 싶은 얘기도 있다. 발표를 들으면서 유익하게 또 아프게 들었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현장으로부터 '정책 설계를 잘해야 된다', '현장을 잘 알아야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그래서 나름 소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디테일은 부족하고 기대만큼 작동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의사도 사람이고, 더 편하고 보상이 높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됐다고 본다. 사명감과 책임감으로만 얘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면서 "병원 조직 문화 내지는 의료계 조직 문화도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 나은 대안이 있다면 충분히 세심하게 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순환당직 문제와 관련해서는 "결국 병원 경영 목표와 그 안에서 일하는 의사 분들의 삶의 질, 진료의 질과 연결되는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향후에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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