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에 대한 비뚤어진 관심‥여러 약물 사용·지키지 않는 기간

체중 조절 위해 7개 약물을 한 번에 처방하는 경우도
'약물 오남용', 철저한 관리 필요‥DUR과 NIMS 활용 제안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3-11-30 11:28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비만에 대한 비뚤어진 관심이 치료제의 심각한 오남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체중 감량을 위해 동시에 여러 계열의 약물을 사용하고 있었고, 최대 복용 기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는 결과적으로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학술지 HIRA Research의 '국내 체중 감량 약물 사용 현황 : 자발적으로 온라인에 게시한 처방전 분석'에 따르면, 최근 비만 유병률 증가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비만은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인식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무분별한 비만 수술, 다이어트약 광고는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막는 걸림돌이었다.

체중 감소를 위한 국내 치료 현황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우리나라의 비만 약물요법이 비만진료지침에 근거한 치료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에 연구팀은 체중 조절을 목적으로 약을 처방받은 개인이 온라인에 공유한 처방전을 분석했다. 이는 국내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서 2022년 6월부터 2023년 5월까지 게시글을 검색한 것이다.

연구 결과, 수집한 처방전에는 총 63가지 성분이 포함됐다.

약물은 승인받은 체중 조절제(on-label weight loss drugs), 승인받지 않은 체중 조절제(off-label weight loss drugs), 식욕억제제로 인한 증상 완화제(medication induced symptom management drugs)와 건강기능성식품(dietary supplement and others)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그 중 체중 감량으로 승인받은 약물은 6가지였다.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로는 펜타민, 펜디페트라진, 디에칠프로피온, 펜다민/토피라메이트가 있었다. 비향정신성 식욕억제제로는 날트렉손/부프로피온, 지방 흡수 저해제인 오를리스타트가 있었다.

전체 처방전의 약 95%는 승인받은 약물(on-label weight loss drugs) 중 하나 이상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약 83%는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를 포함했다. 

승인받은 약물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약물은 펜디페트라진(43.9%)이고 다음으로 오를리스타트(39.4%) 순이었다.

체중 감량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은 받지 못했지만, 체중 조절을 목적으로 사용한 약물의 종류도 있었다.

식욕억제(appetite suppressants) 효과를 나타내 체중 조절에 사용하는 약물은 총 4가지로 플루옥세틴(항우울제), 토피라메이트(항전간제), 메트포르민, 베타히스틴이 있었다.

신진대사를 촉진(metabolism booster)함으로써 체중 감량에 사용하는 약물에는 아세트아미노펜/카페인/(pseudo)에페드린을 포함해 6가지가 있었다. 

부종 제거(edema medications)를 통해 체중 조절 효과를 나타내는 약물로는 이뇨제, 혈액순환개선제를 포해 총 7가지 성분이 있었다.

포만감 증가(satiety enhancer) 효과가 있는 약물로는 알긴산/카르복시메틸셀룰로오스가 있었으며, 당 흡수를 억제(glucose absorption inhibitor)하는 당뇨병 치료제 4가지(미글리톨, 보글리보스, 다파글리플로진, 엠파글리플로진)도 체중 감소 효과를 목적으로 사용됐다.

또한 지질대사를 활성화하거나 지방 합성 저해(fat metabolism enhancer/synthesis inhibitor) 기전을 가진 고지혈증 치료 약물 3가지도 체중 감량을 위해 사용됐다.

전체 처방전 중 97%가 승인받지 않은 체중 조절제(off-label weight loss drugs) 중 하나 이상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아세트아미노펜/카페인/(pseudo)에페드린(59.1%)과 토피라메이트(54.5%)는 절반 이상의 처방전에 포함돼 본 연구에서 수집한 처방 약물 중 가장 많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전체 처방전의 약 70%에서는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불면증, 불안감, 신경과민, 변비 등을 조절하기 위한 약물을 포함하고 있었다.

해당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체중 조절을 위해 7개의 약물을 한 번에 처방하는 경우(약 20%)가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13개의 약물을 한 번에 처방한 사례도 있었다.

미국 FDA나 영국의 국민건강서비스(NHS)에서는 승인된 약물 외에 다이어트로 사용되는 약물은 유효성과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영국의 NICE 가이드라인에서도 승인된 식욕억제제 외에 체중을 감량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다른 약물을 함께 복용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연구팀은 "다양한 오프라벨(off-label) 약물을 사용하는 실태는 약물의 안전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더불어 여러 가지 약물들을 함께 사용하면 환자가 약물에만 장기적으로 의존하고 식이나 운동 등의 비약물요법에 대한 노력이 동반되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마약류 식욕억제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불면, 불안, 신경과민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항불안제나 수면제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을 병용하는 것이므로 안전성 및 의존성 문제가 더욱 가중될 수 있다.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의 오남용 문제로 인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4주 이내 처방, 최대 3개월 이내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2019년 7월에서 2020년 6월까지 1년간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은 124만 명 중 권고대로 4주 이하로 처방받은 환자는 25%였고, 3개월 이상 초과해 처방받은 환자는 38%, 12개월 초과하여 받은 환자도 6.4% 있었다.

해당 연구에서 환자의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복용 기간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최대 복용 기간에 대한 권고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장기사용에 따른 부작용 문제가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마약류 식욕억제제의 오남용을 줄이기 위해 현재 구축돼 있는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rug Utilization Review, DUR)와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Narcotics Information Manangement System, NIMS)을 보완하는 것을 제안했다.

DUR은 약물 사용의 부적절성을 사전에 점검하는 시스템으로, 처방이나 조제 시 환자의 약물 처방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NIMS는 마약류 약물의 유통경로를 투명하게 해 오남용을 예방하고, 마약류 약물을 다루는 모든 업체가 취급 내역을 사후에 등록하는 제도이다. 식약처는 NIMS에 보고된 자료를 바탕으로 마약류 약물의 오남용이 의심되는 곳에 서면으로 통보하는 사전알리미 제도도 함께 시행 중에 있다.

하지만 NIMS의 경우 의사가 약을 처방하기 전에 시스템에 접속해 직접 확인해야 하는 절차가 필요해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아울러 약사의 경우에는 조제 및 투약 전에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마약류의 재고 관리에는 이점이 있으나 오남용을 중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DUR 시스템은 의무화가 아니기에 실제 중재로 이어지기까지 어려운 것으로 평가됐다.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비만율은 세계에서 9위(2백만 명)지만, 2020년도 비만치료제 매출 규모로 볼 때 미국, 브라질 다음으로 세계에서 3위에 해당하는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삭센다, 위고비 등 GLP-1 유사체 계열의 주사제 약물이 등장하고, 편의성을 강조한 비만치료임을 홍보하는 광고가 노출되고 있다. 해당 약물이 커뮤니티에서 유행을 타면서 점점 비만치료가 미용 목적으로 비춰지고 있는 현실이다.

국내에서는 비만 약물치료 사용의 90%가 여성인 점과, BMI 진단상으로 비만이 아니더라도 쉽게 약물 처방을 받을 수 있는 환경도 비만치료를 미용치료로 인식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비만치료제 약물은 급여 대상이 아니기에 약물 처방은 건강보험 재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미용 목적으로의 비만치료가 강조될 경우 비만이 질병으로 인식되지 못해 적절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적시에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고, 심장질환, 당뇨병, 고혈압 등 2차 질병이 발생하면 보험 재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연구팀은 "비만을 질환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약물 처방이 아닌 유효성과 장기적인 안전성이 확보된 약물을 중심으로 처방이 이뤄져야 한다. 가이드라인에 근거한 약물 사용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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