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해진 기자] "국제백신연구소(IVI)는 세계공중보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소득 및 중산층 국가들의 경우, 해당 국가에 큰 부담이 되는 질병에 대한 백신 개발이 필요하고, 한국이나 미국·유럽·호주·일본 등과 같은 국가에는 노년층 백신 사용 증가와 기후변화 영향을 받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요구된다."
제롬 김 IVI 사무총장은 지난 20일 메디파나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백신 그리고 IVI가 세계 공중보건에 기여하는 역할을 설명했다.
서울대학교 연구공원 내 위치한 IVI는 1997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이니셔티브로 설립된 대한민국에 본부를 둔 비영리국제기구다.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저렴한 백신 발굴 및 개발과 보급'을 사명으로 삼아, 세계보건기구(WHO), 전 세계 국가와 제약사들의 협력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 등의 감염병 예방과 보건안보를 위한 백신기술 보급을 위해 힘쓰고 있다.
김 사무총장은 "백신의 이점은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질병으로 인한 입원이나 사망으로부터 나와 가족을 보호하고, 사회적으로는 유행 감염병의 확산을 막아 경제활동 인구를 보호하며, 팬데믹 등과 같은 상황에서 병원 시스템이 과부하되지 않도록 도와 일상적인 의료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기여한다. 백신은 인류가 지금까지 개발한 방법 중 가장 비용 효율적인 의료 대책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 IVI, 글로벌 보건안보 위한 역량 갖춘 독보적인 기관
글로벌 보건안보를 위해 필수 요소인 백신은 선진국들에서는 비교적 개발과 보급이 쉽게 이뤄지고 있지만, 저소득 국가나 개발도상국의 취약 계층들은 백신에 대한 접근부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IVI는 이들에게 백신이라는 최소한의 보호막을 안겨줄 수 있도록 ▲백신 R&D, 중계 및 현장 연구 ▲제품 개발 파트너십 및 연구 컨소시엄 ▲교육·기술 지원 및 이전 등 3가지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
김 사무총장은 "IVI는 WHO 사전적격성 평가를 받은 4개의 백신을 개발했는데, 그 중 2개는 게이츠 재단의 지원을 받아 실제로 IVI에서 개발했다"라며 "이러한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더 많은 국가가 스스로 백신을 제조할 수 있도록 백신 기술을 보급하고, 인력을 교육하고 있다. 수익이나 특허를 내지 않고 여러 국가와 기업에 기술을 제공하며 백신 개발을 위해 기꺼이 일하는 것은 IVI만이 독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경구 콜레라 백신은 해당 질병에 대한 유일한 백신 솔루션으로, 한국의 유바이오로직스가 생산하고 있다. IVI는 유바이오로직스와 더 저렴하게, 더 많은 백신을 생산할 수 있도록 단순화된 메커니즘을 개발해 WHO 승인을 받아 전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2013년부터 IVI의 콜레라 백신으로 안전을 확보한 이들은 40만 명에 달한다.
IVI 설립 당시인 1997년 대부분의 백신 생산이 유럽과 북미의 고소득 국가에만 집중돼 있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한국·인도·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 등 더 많은 국가에서 백신을 제조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아프리카의 한 기업에 백신 기술이전을 추진 중으로, 이변이 없는 한 아프리카에서 원료 준비부터 제조 완료까지 전 과정을 진행하는 첫 번째 백신이 될 것으로 보인다.
IVI는 백신 기술 역량을 더 많은 국가와 기업 등에 제공하면서 160개 이상의 다양한 파트너와 협력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이나 이윤 추구가 목적이 아니고, 단순히 전 세계에 백신을 공급하기 위한 백신 개발이 목적이기 때문에 기업들과의 협력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고, 더 많은 국가와 기업에서 백신 테스트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 더 효과적인 보건을 위해, 더 많은 국가와의 협력 노력
지난 12일 오스트리아가 IVI 27번째 비준국으로 공식 가입하면서 IVI 본부에 국기를 게양했다. 앞서 지난 7월 1일 뉴욕의 유엔조약사무국에 IVI 설립협정 가입서를 기탁한 오스트리아는 비엔나에 이미 IVI 국가사무소를 유치하고 있는 국가로, IVI 비준국 가입과 동시에 운영금을 지원하는 6번째 국가자금공여국으로 등록했다.
이로써 현재 IVI에 국가자금을 제공하는 국가는 한국, 스웨덴, 인도, 핀란드, 태국, 오스트리아이다. 이미 국가사무소가 있는 국가였던 만큼 오스트리아의 가입이 다소 늦은 것 아닌지 묻는 질문에 제롬 김 사무총장은 "IVI 합류에 늦은 시기란 없다"고 단언하며 "현재 서명국은 43개국이며, 12개국이 추가로 가입을 기다리고 있다"고 향후에도 더 많은 협력이 진전될 것으로 기대했다.
IVI 설립 초창기, 미국에서는 '미국이 전 세계에 필요한 백신을 모두 만들 수 있는데 왜 추가 제조업체가 필요한가'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 보건안보를 위해 지난 20년간 백신연합(Gavi)과 유니세프 등이 수행한 백신 접종을 통해 다른 국가에서 백신을 제조함으로써 빠르게 생산량을 확대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현재 전 세계 어린이의 80%가 기본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다는 성과를 이뤘다. 협력의 중요성이 가시화한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
김 사무총장은 "우리는 팬데믹을 통해 백신 개발은 작은 나라이든 큰 나라이든 함께 협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라며 "백신에 대한 형평성이나 기술에 대한 접근성은 팬데믹 기간 중 중요한 이슈였다. IVI는 기술을 개방적으로 사용하고, 이러한 역량을 전 세계 기업들에게 기꺼이 이전할 것이다. 이 행보에 오스트리아가 합류하게 돼 기쁘다"고 덧붙였다.
IVI에 현재까지 G7(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EU) 과 같은 강대국들의 가입이 이뤄지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들도 IVI에 가입 의사를 전달하며 협력의 확대가 이뤄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김 사무총장은 "G7 중 캐나다와 프랑스가 IVI에 가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이사회에서 승인된 만큼 절차를 마무리하면 IVI 본부에 깃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더 나아간다면 자금공여국으로 등록하기를 희망해본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강대국들의 협력이 확대하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에 대해 김 사무총장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과거에는 자국의 백신 필요를 먼저 고려하는 접근 방식을 갖고 있었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이 실제로는 비생산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과거 로마에서는 도로가 전염병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제는 비행기로 바이러스와 세균이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자국의 보건안보를 생각한다면 IVI의 가치를 점점 더 많이 깨닫게 될 것"이라면서도 "영국, 이탈리아 등 다른 G7 국가들도 IVI에 가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IVI가 국가들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IVI 자금의 대부분은 직접 수탁하는 연구 과제와 지원기관의 보조금을 통해 운영되고, 자금공여국으로부터 받는 지원의 비중은 20% 정도다.
◆ IVI와 한국, 상부상조의 좋은 표본
IVI 본부가 한국에 위치한 이유는 1990년대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아시아에 백신 개발 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유치신청서를 받을 때, 한국이 서울대 근처에 연구소를 짓고, 총 운영비의 30%를 부담하겠다는 제안서를 제출해 선정됐기 때문이다.
현재 다른 자금 공여국인 스웨덴 등의 기여도도 상당하지만, 가장 많은 자금을 공여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이다.
제롬 김 사무총장은 "조완규 서울대 전 총장님과 故 박상대 교수님이 정말 선견지명이 있는 분들이었다. 두 분은 한국이 백신 및 생명공학 관련 분야에서 선도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IVI 유치를 기회로 삼아 과학자들을 한국에 데려와 백신 제조와 생명공학에 대한 지식을 한국 기업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고, 한국 과학자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9년~2010년 조류인플루엔자가 대유행 했을 당시, 80%의 백신을 외부에 의존하고 있던 한국은 미국 기업에서 구입한 백신을 몰수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고 큰 충격에 휩싸였던 바 있다.
이후 IVI 과학자들과 한국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은 2025년까지 한국을 5위 백신 생산국으로 만들고 백신 자급률 80% 목표를 세웠다. 자금 지원에 시간이 걸렸지만, 현재 질병관리본부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가 건립돼 운영 중이며, 화순과 안동에 백신 제조 시설을 지은 덕분에 팬데믹 기간 동안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더불어 한국 정부와 게이츠 재단은 라이트재단이라는 펀드를 만들었다. 이들의 협력은 대학 실험실의 훌륭한 기술을 임상으로 가져오면서 더욱 효과적인 투자를 이끌었고, 백신을 위한 다양한 유형의 생명공학 연구 및 개발 허브를 구축했다.
김 사무총장은 "한국은 더이상 패스트 팔로워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방하고 싶거나, 확보하고 싶어할 기술을 실제로 개발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면서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 구축은 한국 정부의 지원과 협력을 통해 가능했다. IVI는 한국에 많은 빚을 지고 있지만, 한국의 발전에도 기여했다"고 서로 도움이 될 수 있었던 지난 시간들을 회상했다.
백신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IVI와의 협력을 통해 백신 개발 역량을 키운 한국은 2010년까지도 해외 백신 의존도가 80%에 달했지만 지금은 50% 수준이다. 향후 목표는 2030년까지 해외 백신 의존도를 20%로 낮추는 것이다.
◆ 빠른 백신 개발에 부작용 우려도…부작용 줄이는 백신 개발 노력
새로운 감염병이 나타나고, 이에 대응하는 백신을 개발했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감염의 원인인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들은 지속해서 진화하고, 인류는 계속해서 이에 대응하는 백신을 개발해야만 한다. 더 빠르게 백신을 공급하기 위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mRNA 백신이 나타났고, 각국에서 빠르게 승인이 됐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기존보다 훨씬 빠른 백신 개발 및 상용화에 따른 불안감이 더해져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도 했다.
제롬 김 사무총장은 "백신은 감염(Infection)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Disease)을 예방하는 것"이라며 "백신은 어린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자연 방어 시스템, 면역체계가 잘 작동하지 않는 사람들, 노인이나 면역저하자 등과 같은 고위험군에게는 백신 접종 및 재접종이 매우 중요하다. 기후변화로 곤충 분포에 영향이 미치면서 다른 지역의 감염병이 유입되는 경우에도 백신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감염이 반드시 사망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입원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은 감염으로 인한 '질병'이고, 이 질병에 걸리지 않거나, 치명성을 낮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백신이다.
김 사무총장은 "모든 예방접종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환자가 너무 많아 병원에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던 때가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저소득 국가에서는 백신은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답했다.
백신의 부작용은 일반적으로 3만 명 중 1명, 10만 명 중 1명 정도 발생하는데, 매우 드문만큼 예측이 어렵다. 물론, 백신의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을 찾는 많은 연구 그룹이 있다.
다만, 정부 측에서 국민들의 백신 부작용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려면 부작용 추적 및 보상 방안을 마련하고, 백신 개발 기업이 소송으로 과도한 부담을 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제롬 김 사무총장은 최근 코로나19가 재유행 조짐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 관련해 "한국은 다행히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백신을 접종하면서 이전 버전의 바이러스를 경험했기 때문에 새로운 버전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라며 "다만, 새로운 변이를 완전히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백신이 개발 중이다. 빠르면 미국에서 승인돼 최신 변종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인터뷰 진행 후 며칠 뒤인 22일(현지시간) 미국 FDA에서 화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19 신규 백신 승인 소식이 전해졌다. 신규 백신은 올해 들어 유행한 변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인 'KP.2'를 대상으로 하며, 수일 안에 미국 전역에 제공될 예정이다.
IVI를 비롯한 백신 연구기관들은 같은 계열의 바이러스, 세균 전체에 효과를 나타내는 범용 백신 개발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개발이 쉽지는 않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범용 백신에 대한 연구는 수십 년 동안 현재진행 중이다.
김 사무총장은 범용 백신을 위해 ▲바이러스 라이브러리 ▲백신 라이브러리 개발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백신에 대한 아이디어를 미리 만들어둔다면 미지의 질병에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롬 김 사무총장은 "과학 없이 좋은 백신을 개발할 수는 없다. 실험실의 훌륭한 아이디어가 인간에게 사용되도록 전환하는 것은 IVI의 중요한 업무"라며 "그러나 이 일은 IVI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백신에 대한 공통의 비전을 가진 한국 정부와 IVI의 다른 자금 지원자들, 협력 기업들이 함께한 덕분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 사명을 완수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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