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비급여 의료개혁, 중단 후 재설계-출발 후 수정 '평행선'

의료계, 목표는 공감·방식은 잘못…"물 새는 배로 대서양 횡단"
정부는 우선 출발…"이상적 설계 불가능, 의견 수용하며 추진"

조후현 기자 (joecho@medipana.com)2025-03-14 05:58

(왼쪽부터) 이봉근 한양의대 교수, 서인석 병협 보험이사, 전현욱 금감원 보험상품제도팀장, 조우경 복지부 필수의료총괄과장. 사진=조후현 기자
[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정부가 의료개혁 과제로 추진 중인 비급여 관리와 실손보험 개혁을 주제로 의료계와 정부가 의견을 나눴지만 평행선이 이어졌다.

의료계는 방식과 속도가 잘못됐다며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논의를 우선 중단하고 올바른 방향을 설정한 뒤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정부는 우선 출발하고 세부조정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13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의사협회가 주관한 정부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토론회에서 의료계와 정부는 의료개혁 과제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발제에 나선 이봉근 한양의대 정형외과 교수는 정부 실손보험 개혁방안이 속도와 방식에서 잘못됐다는 점을 짚었다.

이 교수는 정부가 해당 정책을 추진하는 목표에 대해선 공감했다. 미래 의료 비용 증가에 대비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고 이해당사자가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방식이다. 의료비 증가 억제란 목적이 주가 되면서 환자나 의료체계에 미칠 영향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단 지적이다.

대표적인 예로 중증과 경증을 분류하는 기준이 불완전하다는 점을 들었다. 정부는 실손보험 개혁을 통해 경증 본인부담금을 50%까지 상향하고 연간 1000만원으로 금액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현행 기준은 단순히 1·2차 병의원에서 많이 처방되는 진단 코드와 수술 코드를 경증으로 분류하고 있다. 환자 건강상태는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실제 대퇴골 골절은 전신 상태가 나쁘더라도 경증으로 분류된다. 또 의원급에서 치료가 어려운 갈색 백내장 역시 경증이다. 이 같은 경우 상급종합병원은 의뢰서를 받은 환자라도 본인부담금 문제로 수술 여부를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런 예는 각 과에 숱하게 있다. 경증 중증 분류가 완전하지 않은데 그 시스템을 바탕으로 환자 본인부담금을 늘리겠다 선언하는 건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체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도 설명했다. 정형외과나 안과, 이비인후과, 재활의학과 등 경증 빈도가 높은 과는 이미 상급종합병원에서 소멸되고 있는 가운데 경증 본인부담금을 올리는 정책이 추진되면 교수를 뽑지 않는 현상이 확산돼 의학적인 시스템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의료개혁을 우선 중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의개특위를 통한 개혁을 우선 멈추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이 필요하나, 의개특위 발표 내용은 환자가 더 내고 의료 접근성은 낮추는 데 치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개혁을 시행하고 문제점을 고치면서 가겠단 것은 물이 새는 배에서 물을 막으며 대서양을 건너겠단 것과 같다"며 "국민과 환자 입장에서 시스템을 다시 설계하고 급진적 변화를 이해할 수 있게 수정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성환 법무법인 담헌 대표변호사는 실손보험 개혁 방안이 법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장 변호사는 가입자 간 공정성 제고를 위한 실손보험 개혁 필요성엔 공감하나, 강제적 방식은 위헌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언급했다. 약관 변경을 소급해 강제로 적용하는 법 개정은 위헌 가능성이 높아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초기 실손보험 재매입 역시 보험사의 충분하고 적정한 보상기준이 없다면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금융당국은 보험사 입장이 아닌 보험소비자가 납득하고 수용할 수 있는 권고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 변호사는 "필수의료 강화 등 의료체계 정상화는 필수의료에 대한 직접 지원을 통하는 것이 정도이며 실손보험 개혁 방향성과는 연관성이 크지 않다"며 "새로 출시되는 실손보험은 보충형으로 설계하는 것이 본질에 부합하고 보험재정에 미치는 영향도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부당국 입장은 달랐다. 우선은 출발하는 게 중요하단 입장이다.

전현욱 금융감독원 보험상품제도팀장은 먼저 의료계나 환자, 보험사 등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국민 전체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실손보험 보장이 줄어들면 국민에게 나쁘다'란 시각도 '4000만 명이 가입한 보험 지급이 늘면 국민 주머니에서 나간 보험금이 사용된다'는 시점으로 접근해야 균형잡힌 논의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전 팀장은 보험금 지급이 늘면 보험료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기본상품을 보장이 많고 부담이 적은 대신 보험료가 높은 식으로 갈 것인지, 저렴한 대신 필요한 보장 위주로 하고 나머지는 추가 상품을 통해 보장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 팀장은 "(저렴한)표준형이어도 필수적인 걸 보장해야 하는데 금감원이 한 게 부족해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가볍게 가더라도 어떤 게 필수적인지, 과잉인지 정말 필요한 진료인지 듣고 싶다"며 "의개특위에도 들어가 있는데 이렇게 의견을 들을 기회가 없는 상태로 진행돼 왔다. 앞으로 상품이 나오려면 시간은 많으니 계속 말씀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같은 맥락에서 미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시각차도 나타냈다. 전 국민이 가입하고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데 가계에 부담이 되고 있으니 밀도 있고 빠르게 논의해야 할 문제란 입장이다.

전 팀장은 "말씀하신 내용은 다 좋았지만 정교하게 해야 해 몇 년에 걸쳐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언급이 나왔는데, 이상적으로 한 번에 모든 걸 해결하고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하면 사실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면서 "몇 년 후라고 하면 대부분 안 된다. 밀도 있게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논란이 된 1, 2세대 실손보험 재매입을 정부가 강제적으로 할 가능성은 낮다고도 해명했다. 이는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으로, 추진을 위해선 국회를 중심으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강제적으로 밀어붙여 피해가 발생할 우려는 낮다는 설명이다.

복지부 역시 잘못된 부분에 대한 의견은 수용해 최종안에 반영하겠단 입장으로, 의료계 논의 참여를 당부했다.

조우경 복지부 필수의료총괄과장은 이날 언급된 수가 정상화나 국민 의료비 부담 완화를 위한 보장성 강화 등 방향성엔 동의한다고 언급했다.

반면 관리급여나 병행진료 제한 등은 의료기관별 비급여 가격차이나 환자 안전 기준을 넘어선 비급여 치료 등 문제점 등 비급여 관리 필요성과 의료자원 쏠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한 대안이란 점도 피력했다.

특히 관리급여나 병행진료 제한 등 의개특위 발표는 방향성만 나온 것으로 의료계 참여 협의체를 통해 결정할 것이란 점을 언급하며 참여를 당부했다.

조 과장은 "기본적인 방향만 말씀드렸기 때문에 협의체나 기구에 함께 모여 의견을 맞댔으면 좋겠다"며 "정부가 제시한 방안에 있어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의견을 받고 당연히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월 9일에 낸 것이 최종안이 아니라 계속 보완 논의를 하고 있다. 오늘 의견도 전달해 최종안을 만드는 데 있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일부 부작용으로 인해 전체를 뜯어고치는 난해한 방식보단 문제가 있는 부분에 집중해 개선하는 방식이 효율적일 것이란 시각을 피력했다.

서 보험이사는 "5세대 실손을 판매하고 1, 2세대 보험을 강제 전환한다는 마당에 오남용된다는 10대 비급여에 대한 심사를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이 덜 있지 않았을까"라며 "과거 실손보험 약관에 오남용이나 의학적 필요성에 대한 정의가 없어 발생한 문제라면 지금이라도 재매입·재판매하는 것보단 오남용에 대한 보험사 지급 기준을 좀 더 명확히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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