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의료사고 발생시 배상과 보상을 의사과실 판단과 분리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는 지난 20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임상의료정책연구회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여한 한국중증질환연합회 김성주 대표가 제안한 것으로, 서울의대 오주환 교수는 이 같은 제안이 의료계와 환자단체간 입장을 좁힌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의료사고 발생 시 원인 규명과 관계없이 국가에서 환자에게 보상을 신속히 지급할 경우, 환자도 의료진도 장기간에 걸쳐 시시비비를 가리는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27일 오주환 교수는 메디파나뉴스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의료사고 발생의) 원인 여부를 따지지 않고 우선 환자에게 보상을 해주고, 이후 원인규명을 한다면 보다 빠르게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환자는 의사와의 관련성 시비를 오래 끌지 않게 됨으로써 보상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게 되고, 이를 통해 환자 가족들은 가족에게 안 좋은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어쩔 수 겪어야 하는 정신적 고통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소송기간이 길어져 발생하게 될 경제적 고통과 그로 인한 일어나는 2차, 3차의 정신적 고통은 생기게 않도록 하는 좋은 진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의료사고 원인에 대한 규명은 이와는 다른 맥락의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오주환 교수는 "지난 토론회 때 김성주 대표가 앞서 말한 것과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의료사고 원인 규명 자체는 의사들이 했으면 좋겠다고 발언했었다"며 "이는 의료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의료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방식이 낫다는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방식은 조정전치주의처럼, 의료사고를 면밀히 파헤칠 시간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의사에게 유리한 구조"라고 진단했다.
과실을 인정하게 될 경우 의사가 배상부담을 안게 돼 자기 방어를 위해 일종의 묵비권 행사, 즉 증거를 내놓는 것에 대해 협조하지 않는 방식을 취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이 길어질수록 환자도, 의사도 힘든 구조가 된다는 설명이다.
오 교수는 "소송이 진행되는 상태에서는 증거를 환자가 입증해야 된다면, 지금은 의사 입증 쪽으로 많이 바뀌고 있지만 그런 입증 책임에 관한 것이 환자 쪽이 아닌 의사 쪽으로 더 넘어가야 된다고 김성주 대표가 얘기를 한 것"이라고 당시 발언에 대해 풀어냈다.
그러면서 의료사고에 대한 입증과 처벌을 의사들 내부에서 하도록 하는 방식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영국의 GMC(General Medical Council, 의사면허관리기구)와 같은 독립적 의료법정을 통해 전문가들의 엄격한 원인규명과 재발방지 등을 통해 의사와 환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줄인다는 취지다. 이를 통해 필수의료를 비롯한 기피 과 의사의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오 교수는 "입증 책임과 보상 및 배상 과정을 완전히 분리시키고, 입증에 대해서는 의사들 내부에서 하도록 한다면, 더 엄밀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의사도 민·형사 처벌로 연결되지 않을 때 증거 제출과정이 훨씬 더 잘 될 것이다. 즉 민형사상 처벌이 아니고 면허 처벌로 가는 것"이라고 짚었다.
의료사고 심의에 동료 의사들이 참여하는 것은 대학병원에서 시행하는 모탈리티 리뷰(Mortality Review)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모탈리티 리뷰는 사망사례 발생시 사망을 막을 수 있는 다른 조치는 없었는지, 해야 될 조치들을 충실하게 이뤄졌는가를 선·후배, 동료의사들이 강하게 리뷰하는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오 교수는 모탈리티 리뷰에 대해 "최선을 다했는지, 최고의 조치를 취했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으로, 형사상 무죄라고 하더라도 이 심사에서는 적절한 조치가 이뤄졌는지 높은 기준을 잣대로 심의하는 절차"라고 강조했다.
동료 의사가 의료사고에 대해 파헤치기 때문에 잘못을 숨기기가 어렵고, 잘못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비슷한 일이 다른 의사에 의해서, 또는 동일한 의사에 의해서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해 동일 유형을 발견해서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조치할 수 있다는 목소리다.
오 교수는 "민형사상 처벌이 아니고 면허 처벌로 가기 때문에, 원인 규명을 통해 의사면허를 일정 기간 정지시키고 자숙 및 학습하도록 해서 문제가 다시 재발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시술을 일정기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정도가 심하면 면허 취소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울러, "원인 규명이 끝난 다음에는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 명령이 나올 수도 있다. 또 형사법원으로 넘길 만한 정도의 중대한 고의가 확인된다든지, 면허 법원에서 끝날 일이 아니라고 동료들 전체가 판결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면허 법원에서 형사법원으로 형사 기소하라고 넘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사 개인이 환자에게 보상을 하는 방식이 아닌 국가에서 보상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보상 재원에 대해서는 지난 토론회에서 김성주 대표도 얘기했던 것처럼 건강보험료 안에 위험도 수가라고 해서 98원 정도가 들어가 있다. 이를 모두 합치면 연간 몇 천억원 규모로, 정부가 공적으로 그 재원을 관리하고 의사를 거치지 않게 직접 환자한테 지불하는 방식이 취하면 된다"며 김성주 대표의 제안에 동의를 표했다.
또, 현재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를 적용하고 있어서 의사가 환자를 무조건 봐야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종에 공적업무 수행으로 보고 공적인 재원으로 커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짚었다.
오 교수는 "보상과 배상, 사고 규명, 두 개를 분리시키면 환자도 진전, 의사도 진전 양쪽이 다 진전이 있고 앞으로 재발방지에도 큰 진전이 기대된다. 따라서 이 방식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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