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정부에서 내놓은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방안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실행을 위한 인력 및 재원 확보 등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정책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나온다. 환자단체는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형사체계 개선에 동의할 수 없으며, 의료사고 심의위원회가 중대한 과실 유무를 판단하는 기구로 도입되면 불기소 처분이 난발될 것을 우려했다.
의료계에서는 의료진의 사과나 설명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과잉 입법이라는 의견과 함께 의료사고에 있어서는 의료진도 피해자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6일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의료사고안전망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 참석자들이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토론 패널 중 첫 발표자로 나선 환자단체연합회 이은영 이사는 "정부에서는 의료 사고 안전망 구축을 위한 핵심 추진 과제로, 3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소통·신뢰 중심 분쟁 해결 지원, 두 번째는 신속·충분한 배상을 위한 공적 배상체계, 세 번째는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형사체계 개선이다. 이 부분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방향성에 동의하지만, 세 번째인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형사체계 개선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의료사고 심의위원회가 중대한 과실이 아닌 경우 불기소 처분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또 지난해 2월 29일,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안) 공청회에서 발표된 12개의 중대 과실이 법으로 규정돼 있다. 그렇다면 이 12가지 중대 과실을 제외한 모든 과실이 단순 과실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의료사고 책임을 지나치게 완화하는 것이며, 피해자의 권리를 크게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의료사고 심의위원회가 필수의료 여부와 중대한 과실 유무를 판단하는 기구로 도입된다면, 사실상 불기소 처분이 난발될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단순 과실에 의료사고 심의위원회를 통해 불기소 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고, 이는 환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은영 이사는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경상해뿐만 아니라 사망을 제외한 중상해까지도 불기소 처분될 가능성이 높다. 의사 실수로 환자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사고 심의위원회를 거치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을 가능성도 커진다. 따라서 의료사고 심의위원회는 고위험 필수의료에서 발생한 의료사고 무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기구로만 한정돼야 하고, 단순 과실까지 불기소 처분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운영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송기민 보건의료위원장은 "의료사고는 환자가 원인인 부분도 있을 것이고, 의사가 원인인 부분도 있을 것이고, 둘 다의 원인에 의하지 않은 '그레이존'이 존재한다. 이런 그레이존에 대해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본다. 이런 부분에는 공적책임 배상을 해줄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송기민 위원장은 ▲의료사고의 입증 책임을 전환해 줄 것 ▲의료 감정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여줄 것 ▲그레이존에 대한 공적배상책임을 강화해 줄 것 ▲의료사고의 불합리한 수사절차 개선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유현정 나음 법률사무소 대표는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와 관련해서는 의료사고 예방을 강화하고 소통을 활성화하자는 것은 굉장히 찬성한다. 그러나 의료진은 임상 현실에서 환자 케어에도 부족한 인력이다. 그런데 누가 사고를 설명하고 상담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상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환자, 의료진 모두 신뢰하는 분쟁 조정을 혁신하기 위해 '환자 대변인 제도'를 신설하고 의료인 대상으로 전문 상담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환자는 대변인을 두고 의료인은 전문 상담 지원을 두는 차이가 불분명하다. 아울러, 환자 대변인 제도는 대변인을 변호사로 하지 않는 이상 변호사법 위반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오히려 환자와 의료인이 동일하게 전문 상담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통일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공정하고 전문적인 감정에 당연히 찬성한다. 그런데 이것도 현실성이 문제다. 감정위원도 주로 대학병원 교수들이 맡고 있다. 그런데 교수들은 환자진료를 주 업무라고 생각하고 감정은 과 외 업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소송을 하면 심한 경우, 진료기록 감정이 1심에서 4년 넘게 걸린 적도 있다. 왜냐하면 다 감정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본다면 의료인 감정위원 풀을 3배 이상 확충하고 전문 감정하고 인증제를 신설하겠다는 것은 현실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을 어디서 확보할 것이며, 재원 마련 대책 등 구체적인 내용을 빠져있어 이상론에 그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번 패널토론에선 '의료사고안전망 강화방안'의 실현 가능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상당수의 의료기관이 이미 사보험에 가입한 상황에서 공제나 보험가입을 필수 조건으로 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신속한 배상은 기존 보험체계에서도 가능하며, 한정된 자원 속에서 별도의 공적배상기구가 반드시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유현정 나음 법률사무소 대표는 "신속하고 충분한 배상을 위해 공적배상체계를 강화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의료기관이 대한의사협회 공제에 가입한 가입률만 제시하고 있다. 30%대다. 하지만 현대해상, 삼성화재 등 사보험 가입이 훨씬 많고 거의 대부분 사보험이다. 그래서 공제나 보험 가입을 필수 조건으로 하겠다고 하는 것이 과연 현실성이 있을지. 일선에서 체감하기로는 거의 대부분 지금 가입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고 쓴소리를 했다.
아울러, "신속 배상과 관련해서는 현재 의협 공제나 배상보험에서도 다 이뤄지고 있는 부분이며, 결론적으로는 신속한 배상과 관련해서 의료행위는 복잡다단하고 생명, 신체에 대한 것은 변수가 너무 많다. 때문에 한정된 우리 자원 하에서 공적배상체계, 공적배상기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라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불필요한 사법 절차를 줄이기 위한 의료사고 심의위원회 도입과 공정한 의료 감정을 위한 제도적 보완에 공감을 나타내는 의견도 나왔다. 또, 의료진이 환자 보호자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과잉 입법이라는 지적도 내놨다.
이성순 인제대 일산백병원 교수는 "민사는 당연히 환자들이 피해를 본 부분에 대해서 충분한 보상이 돼야 된다고 생각한다. 형사는 일단 경찰서에 의사들이 불려가서 범죄자나 피의자로 네다섯 시간씩 조사를 두세 차례 받는다. 그 이후에 또 검찰에 가서 또 같은 조사를 받는다. 그런 부분들에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의료사고 심의위원회를 같이 준비하고 있다. 그 단계에서는 과실 여부의 중증도를 파악해서 기소로 갈 것인지를 먼저 심의에서 걸러주면 불필요한 사법 절차가 줄어들지 않을까 한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찬성한다"고 말했다.
또 "공정한 의료 감정이 필수이기 때문에 중재원이나 의료감정원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에 적극 찬성한다. 하지만 의사 입장에서 무슨 문제가 있거나 환자가 나쁜 결과가 났을 때 보호자한테 현장에서 충분히 설명한다. 유감 표시도 하고 소통한다. 그래야 법정에 안 불려가기 때문에 실제로 잘 하고 있다. 그런데 극단적인 일부 예를 가지고, 의사가 사과하거나 설명을 하는 법을 만드는 것은 과잉 입법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패널 토론 후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료진도 피해자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 의료진의 단순 과실까지 형사처벌이 진행된다면 의료현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형법이 아닌 면허관리 체계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플로어에 있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소아청소년과 강희경 교수는 "의료사고에 있어서는 의료진도 마찬가지로 피해자다. 그것을 첫 번째로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순 과실이라면 형사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냐고 (환자단체에서) 항의를 했다. 그런데 단순 과실도 형사처벌을 한다면 과연 누가 의료를 할까. 누가 의사를 하겠나. 지금 이 얘기가 나오는 게 의료사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의료사태 때문이 아니고 이 문제는 필수의료, 지역의료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이 얘기를 지금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의료 사고는 형법체계가 아니고 면허관리를 통해서 조절이 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의료사고안전망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 사진=김원정 기자
◆ 복지부, 의료사고 심의위원회 통해 필수의료 중과실 여부 심의…사실관계 규명
패널토론의 마지막 주자로 나선 권민정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과장은 그간 17회에 걸친 의료사고 안전망 전문위원회 논의 진행이 이뤄졌고, 이번 토론회에서 기본 방향들을 준비해서 전달했다고 밝혔다.
권민정 과장은 "의료분쟁 조정제도를 2012년부터 시행하고 있지만 조정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소송으로 간다는 말이 많았다. 그래서 분쟁조정제도를 대폭 혁신하기 위해서 감정에 있어서 전문성을 높이고 환자 대변인 제도라든지 이런 부분을 통해서 조정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들을 많이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 방향은 배상이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필수의료를 중심으로 해서 신속한 배상이 이뤄지는 것, 그리고 분쟁조정제도에서 조정을 통해서 합의가 이뤄진 것들은 충분하게 바로 배상될 수 있도록 하는 부분들을 생각하고 있다. 특히 배상부분에 있어서도 민간 보험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국가 지원이 필요한 부분들은 필수의료 중심으로 해서 보험료 지원 등을 확대해 나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또 "현재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분만 사고를 위주로 국가가 보상을 하고 있다. 그 외 부분에도 어떤 사례가 정립된 부분이 있다면 확대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 나갈 계획이다. 사법체계에서는 의료사고 심의위원회를 통해서 필수의료 여부라든지. 중과실 여부를 심의하게 되면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의료사고 심의위원회를 통해 보다 전문성 있고 신속하게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해서 기소 자제를 권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런 내용들이 기존의 사법체계를 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구체적인 모양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다음에 심의위원회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와야 되는지 라든지, 이런 부분들은 입법을 하는 과정에서라든지, 조금 더 사회적 논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정교화되고 구체화돼서 합리적인 모습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권민정 과장은 "의료사고에 대한 설명 의무를 법제화하는 부분은 의료사고에 대한 경위나 이런 것들을 의료진이 설명할 때 사과 자체가 불리한 증거로 채택될까 봐 우려가 크다고 들었다.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법제화를 해서 좀 더 안정적으로 보장하려는 부분이다. 또, 모든 부분을 설명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중대한 사건에 한정해서 그 사건의 범위를 정하고 의료인뿐만 아니라 다른 의료기관의 장이라든지 그 외의 사람들이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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