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국내 병원들이 중환자실(ICU) 병상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병상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치료가 끝나지 않은 환자들을 조기에 일반병동으로 전실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병동에서는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관리하기 어려워 의료진과 보호자의 부담이 커지고, 일부 환자는 예기치 못한 합병증으로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오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계에서는 중환자실과 일반병동 사이의 '준중환자실(IMCU, Intermediate Care Unit)' 운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중환자실 과밀화와 의료진 부담 증가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중환자실 병상 부족 사태를 겪으며 '단계별 치료 체계' 필요성이 더욱 대두됐다.
이에 따라 의료계에서는 중환자실과 일반병동 사이의 치료 공백을 해소할 병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수년 전부터 제기해왔다. 그러나 현재 준중환자실은 일부 대형 병원의 자체 운영에만 머물러 있으며, 상급종합병원 몇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병원은 중등증 환자를 일반병동에서 관리하는 실정이다.
또한 모든 질병군을 포괄하는 준중환자실에 대한 공식적인 건강보험 수가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현재 건강보험에서는 뇌졸중 집중치료실과 고위험 임산부 집중치료실처럼 특정 질병군을 대상으로 하는 집중치료실에만 별도 수가를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병원들은 준중환자실을 운영하더라도 재정적 부담을 이유로 확대를 망설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국내 중등증 의료서비스 제공 방법에 대한 전문가 의견 조사: 포커스 그룹 인터뷰와 델파이 조사를 활용하여' 연구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이 재확인됐다.
연구진은 중환자 치료 경험이 있는 의료진 6명을 대상으로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진행하고, 의료정책 전문가 15명을 대상으로 델파이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현재 운영 중인 특정 질병군 중심의 집중치료실(뇌졸중·고위험 임산부 치료실) 외에도, 모든 질병군을 수용할 수 있는 포괄적인 준중환자실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특히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전실하기에는 상태가 불안정한 환자들이 많다는 점이 강조됐다.
연구에 참여한 한 의사는 "응급실에서 병동으로 올라가는 환자 중 일부는 클로즈 모니터링이 필요한데, 현재는 일반병동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들이 준중환자실을 거쳐 가면 더 안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중환자실 병상이 부족하면, 일반병동으로 가기에 불안한 환자들이 중환자실에 머물면서 의료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준중환자실을 중환자실과 인접한 독립형 병동으로 운영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평가했으나, 병원 내 공간 부족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일반병동과 연계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입실 기준도 중요한 논점이었다. 전문가들은 인공호흡기 사용 환자나 저용량 승압제 투여 환자까지는 준중환자실에서 관리할 수 있지만, 지속적 신대체 요법(CRRT)이 필요한 환자는 중환자실에 입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CRRT를 사용하는 환자는 준중환자실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집중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병상 수 제한도 논의됐다. 연구팀은 준중환자실 병상은 중환자실 병상의 26.7%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적절하며, 준중환자실이 과도하게 확대될 경우 중환자실의 역할이 희석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성을 갖춘 인력 배치도 필수적이었다. 연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일반병동 간호사보다는 중환자실 근무 경험이 있는 간호사가 준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간호사 1명이 담당할 수 있는 환자 수도 평균 4명으로 설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바라봤다.
준중환자실 도입을 위한 핵심 과제로는 건강보험 수가 적용이 지목됐다. 현재 뇌졸중·고위험 임산부 집중치료실에는 별도 수가가 적용되고 있지만, 준중환자실에 대한 공식적인 수가는 없는 상태다. 이에 준중환자실의 수가를 뇌졸중 집중치료실과 유사한 수준으로 설정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정부가 필수의료 강화를 주요 보건의료 정책 과제로 삼고 있지만, 중환자 및 중등증 의료서비스 체계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중환자실과 일반병동 사이의 '공백'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환자들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퇴원하거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가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중환자실 병상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할 때, 준중환자실이 도입되면 의료 자원이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준중환자실 도입이 중등증 의료체계 구축의 첫걸음이자 필수의료 강화의 핵심 과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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