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에서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 좋은 예‥`헌터증후군` 희망 이야기

[연중기획 희망뉴스] 조기에 시작한 효소대체요법으로 성장 지표와 6분 보행 거리 호전
빨리 발견해 치료하면 효과도 커져‥희귀질환에서 신생아 선별검사 확대 필요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0-05-12 06:06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겨우 5살이 된 A가 `뮤코다당증 2형 헌터증후군`이라는 희귀질환으로 진단받았다.

낯선 진단명에 당황하기도 잠시, 빠르게 진단받은만큼 A는 조기에 `엘라프라제(이두설파제)`라는 효소대체요법 치료를 시작했다.  

물론 A의 부모는 자식이 평생 치료하며 살아가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런데 치료를 제대로 받기 시작하자 A의 증상이 월등히 나아지며 '희망'이 보였다.

A의 부모는 자신들과 같은 입장인 헌터증후군 환자, 가족들에게 이와 같은 좋은 사례를 알려주고 싶다고 전해왔다.

◆ `조기발견`, 희귀질환 치료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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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살이 된 A는 지난해 2월, 병원에서 '뮤코다당증 헌터증후군'을 진단 받았다.

병원을 방문한 계기는 또래에 비해 키가 크지 않는다는 것, 잦은 중이염(감기)이 발병하는 단순한 증상이었다. 병원에 방문하고 나서야 손이 굽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A의 부모는 "특별한 증상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아이의 키가 크지 않아 고민했다. 아이를 또래보다 크게 낳았는데, 어느 순간 키 순위가 밀리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처음 A의 부모는 한의원을 찾아갔다. 혹시 성장판에 문제가 있을까 정형외과에도 찾아가 진료를 받았지만 특별한 소견은 없었다. 대학병원 정형외과에서도 마찬가지.

다만 손이 굽는 현상이 있으니 의사가 소아내분비/유전 분과를 추천했고, 혹시하는 마음으로 세종충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유미 교수<사진>를 찾아갔다.

일반적으로 희귀질환은 잘 알려지지 않은 질환일수록 진단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뮤코다당증 헌터증후군 역시 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보니, 다른 질환으로 오해돼 20대 이후에 진단받는 환자가 많다. 어렸을 때부터 잦은 호흡기 감염, 탈장, 성장 부진, 발달 지연 등을 이유로 병원 진료는 많았으나, 의료진이 헌터증후군을 인지하기 어려워 진단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는 케이스가 쌓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질환에 지식과 치료 경험이 많았던 김 교수는 A를 빠르게 진단할 수 있었다.

제 2형 뮤코다당증 헌터증후군은 GAG(glycosaminoglycan, 글리코사미노글리칸)의 분해에 필요한 리소좀 효소(iduronate-2-sulfatase, I2S)의 결핍으로 발생하는 희귀 유전질환이다.

GAG 축적으로 신체 여러 조직에 진행성 손상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며, 대부분의 경우 출생 직후에는 임상적 특징 없이 지내다가 질병이 점차 진행된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성인이 되기 전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헌터증후군의 특징적인 얼굴 형태는 질환을 의심하는데 가장 강력한 단서가 된다. 콧구멍이 크고 코가 넓으며, 입술이 두껍고 혀가 큰 편으로 입 밖으로 나와있다.

이 외에도 질환 진행에 따라 청력 장애, 간 비대 및 비장 비대, 서혜부 탈장 등이 나타나며, 관절이 뻣뻣해져 움직임에 제한이 생기기도 한다.

김 교수는 "뮤코다당증 헌터증후군의 임상 증상으로는 성장 장애, 진행하는 관절의 구축, 얼굴 외형의 변화, 간/비장 비대, 심장 판막의 비후 및 변형, 빈번한 호흡기 감염, 탈장, 청력장애, 발달지연 등을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A의 경우 병원에 방문해 검사를 한 결과,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 뮤코다당증 헌터증후군으로 확인이 된 편이다"라며 "출생 시에는 특이 소견이 없었으나 2세부터 뚜렷해지는 성장 지연과 잦은 중이염, 장시간 보행에 피로를 호소했다. 여기에 A의 성장 검사를 하다가 관절 구축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 희귀질환에서 강조되는 '조기치료'‥"빠를수록 좋다"

빨리 발견된만큼 '치료'도 신속히 시작됐다. 다행히 뮤코다당증 헌터증후군은 치료제가 있기 때문에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2005년까지 헌터증후군 치료는 증상을 완화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2006년 미국 FDA 승인으로 사노피의 '엘라프라제'가 도입되기 시작했고, 증상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엘라프라제는 걷기 능력 개선을 효과로 승인받은 유일한 헌터증후군 효소대체요법(ERT) 치료제다.

김 교수는 "헌터증후군은 부족한 효소로 인해 전구 물질의 분해가 되지 않아 점진적으로 세포, 조직, 기관에 축적돼 증상을 보인다. 이 때 부족한 효소를 정기적으로 보충해줘 전구 물질의 대사를 일으키고, 세포를 대체해주는 효소대체요법은 헌터증후군의 중요한 치료 방식이다. 2006년 이후 헌터증후군에 효소대체요법이 가능해지면서 보존적 방법에만 의존해왔던 환자들에게 적극적인 치료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엘라프라제의 효과는 이미 다양한 임상데이터로 증명이 됐다. 먼저 6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임상 2/3상 TKT024 연구 결과, 52주간 매주 엘라프라제를 투여받은 그룹에서 걷기 능력을 평가하는 6분간 보행 거리(6MWT)가 치료 1년 후 기저치 대비 평균 43.3m 증가했다.

또한 엘라프라제는 동일 연구를 통해 폐기능도 유의미하게 개선했다. 연구 종료 시점에 엘라프라제 투여군의 1초 강제 호기량(FEV1)이 평균 15% 나아졌고, 엘라프라제 투여군 중 36%가 연구 종료 직전 또는 종료 시점에 최소 0.02L 이상의 1초 강제 호기량(FEV1) 증가를 보였다.

이밖에 엘라프라제는 53주의 임상에 참여한 환자 94명을 대상으로 3년 간의 장기 사용 효과 데이터를 갖고 있다.

매주 2년간 엘라프라제를 투여한 결과, 치료 시작 후 측정된 모든 시점에서 6MWT의 긍정적인 개선을 보였다. 절대 노력성 폐활량 또한 연구 전반에 걸쳐 지속적인 개선을 나타내며 치료 3년 후 기저치 1.18L(오차 범위 ±0.06L) 대비 0.31L(오차 범위 ±0.06L)의 증가치를 기록했다.

특히 엘라프라제는 소아 환자를 대상으로도 안전성 및 내약성의 효과를 입증해 주목을 받았다.

1.4~7.5세의 환아 28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서, 연구 시작 시점의 평균 요중 GAG 수치가 738.3 μg/mg creatinine(표준편차 ±165.2)였던 반면, 연구 53주차에는 402.4 μg/mg creatinine(표준편차 ±162.1)로 감소했다.

아울러 18주차에 간과 비장 크기 모두 기저치 대비 감소한 것이 나타났으며, 이를 포함해 환아 대상 연구 결과가 FDA의 엘라프라제 승인의 기반이 됐던 임상 연구(TKT024)의 결과와 유사한 것으로 입증됐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유럽 헌터증후군 전문가 협회는 진행성 GAG 축적과 증상 발현의 관계를 고려해, 진단 후 가능한 빠른 시일 내 헌터증후군 ERT 치료를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A가 빠른 시일 내에 ERT를 시작할 수 있던 것은 다행 중 다행이다.

뮤코다당증 헌터증후군은 낮은 질환 인지도와 비특이적인 증상으로 진단이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며, 실제로 리얼 월드 데이터인 헌터증후군 서베이(Hunter Outcome Survey, HOS)에서도 최초 증상 발현 시 환자 연령의 중앙값(1.5세)과 확진 시기 연령의 중앙값(3.5세) 가운데 약 2년 간의 차이가 확인됐다.

김 교수는 "헌터증후군은 조기 치료 시 비가역적인 손상으로부터 회복을 유도한다. 환아 역시 치료 이후 성장속도의 정상화와 보행거리의 호전, 전구물질 (GAG) 의 감소를 보이기에 그만큼 빠른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 엘라프라제 치료 1년 후, 직접 체감하는 아이의 변화

엘라프라제 치료를 받으면서 A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한 것은 부모였다.

A의 부모는 "엘라프라제 치료 후 정상적인 키 성장이 시작됐고, 관절 구축이 완화됐다. 관절 구축 완화를 위해 물리치료도 별도 진행 중이긴 하지만 희망이 계속해서 보인다는 점이 기쁘다"고 말했다.

주치의인 김 교수도 A가 계속해서 나아지고 있다고 답했다.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6분 보행검사에서 A는 300m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410m 이상으로 호전됐다. 성장 속도는 1년에 4cm 미만이었으나, 7cm 이상이 자라났다. 간, 비장 비대는 12개월에 정상화됐으며, 폐렴 입원은 없었고 중이염은 2-3주간격 발병에서 최근 3개월간 겪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A의 경우 손의 통증도 크게 호전됐다. 어른들은 질환에 대한 증상 호소가 쉽고 뚜렷하지만, 소아는 모든 성장 과정이 처음이기에 신체의 변화가 이상하다고 인지하기가 어렵다. A도 첫 진단시 객관적 진찰 이상 소견 외에 주관적인 호소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실 A는 진단 시부터 손구축으로 인한 통증이 있었다.

김 교수는 "치료받으면서 관절 구축 호전과 함께 손의 통증도 좋아져 A가 이제 아프지 않아 좋다고 했다. 이런 뒤늦은 이야기에 부모님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A가 조기 치료로 인해 성장 지표 개선을 볼 수 있었고, 삶의 질이 개선됐다는 점에 상당히 뿌듯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동시에 더더욱 '조기 진단'의 필요성을 깨달았다는 그.

김 교수는 "이미 질환이 많이 진행된 경우는 치료를 시작해도 성장 속도의 회복이 어렵거나 장기의 변형을 되돌리기 어려울 수 있다. 건널수 없는 강을 건너기 전에 조기 진단을 통해 치료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의 효과는 계속해서 축적되고 있다. 헌터증후군이 유전질환이다보니 가족검사로 우연히 진단된 두 형제의 경우 형보다 동생이 같은 치료 기간 대비 효과가 더 컸고, 정상 신체와 외모를 유지한다는 사례가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치료가 가능한 희귀질환에서의 신생아 선별검사 확대가 요구되고 있다.

김 교수는 "현재 효소치료가 가능한 대표적인 6개 리소좀 축적 질환도 소량의 채혈로 스크리닝이 가능하다. 이에 미국, 유럽, 대만, 일본 등에서는 헌터증후군을 포함 신생아 선별검사를 도입해 조기 진단, 치료 기회를 높이려고 한다. 국내에도 치료 가능한 희귀질환에 대해 적극적으로 신생아 선별검사 대상을 확대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조기 진단과 빠른 치료로 1년 전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 A의 꿈은 '간호사'였다. 아직 어리기에 꿈은 언제든 변할 수 있지만, 미래를 바라보는 자식의 모습에 부모는 뿌듯해 했다.

A의 부모는 자식이 희귀질환을 앓고 있다보니 같은 입장의 부모, 가족을 더 헤아리게 됐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중증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만 많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경증환자일 때부터 치료가 이뤄지면 정상적으로 클 수 있더라고요.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조기 치료의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약과 투약 방법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으로 같이 걸어나가면 좋겠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유미 교수도 A의 사례를 비롯해, 의사로서 희귀질환의 조기 발견과 치료에 더욱 사명감을 느낀다고 표현했다.

"성장과 발달이 중요한 소아청소년 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진료와 적극적인 치료, 중재의 필요성을 매번 느낍니다. 매주 주사 치료를 올 때 마다 여느 아이들처럼 한 주간 활동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소아청소년 전문의의 큰 보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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