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남양주에서 조현병을 앓던 20대 남성이 아버지를 둔기로 살해한 사건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 발생 한 달 전, 이미 경찰과 119구급대가 출동해 해당 남성을 입원시켜 치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우리나라 정신질환자 입원치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비극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4일 남양주남부경찰서는 지난 5일 남양주시의 한 빌라에서 살던 20대 남성 A씨가 아버지 B씨에게 둔기를 휘둘러 살해한 뒤 시신을 버린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2019년 4월 진주 방화사건의 범인 안인득 사건, 2018년 영양 경찰관 사망 사건의 범죄자들은 모두 사건 발생 전 여러 차례 경찰에게 자·타해 위험에 대한 신고가 들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련의 중증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 사건과 지난 2018년 故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 이후 정부는 임세원 법을 비롯해 정신질환자 치료를 위한 대책을 마련했으나, 이번 사건으로 중증정신질환자들이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사망한 아버지, 경찰에 응급입원 요청했지만 거부당해
이번 사건의 원인은 구멍 뚫린 우리나라의 중증정신질환 치료 시스템에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2일 해당 사건의 유가족이 청와대에 '어린이날, 아버지를 살해한 정신병 아들과 이를 방치한 경찰을 알립니다'(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8331) 라는 국민청원을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해당 국민청원 내용에 따르면, 피의자인 A씨는 조현병으로 진단을 받은 이후 지난 2015년 여성이 혼자 있는 집 아파트의 우유 투입구로 손을 집어놓는 모습을 집주인이 목격해 현행범으로 체포돼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력이 있다.
몇 개월의 치료 후 정신병원 의사의 권고로 퇴원했으나, 매번 아버지인 B씨를 죽인다고 하며, 흉기를 소지해 사설 구급대에 연락 후 정신병원 재입원 된 바 있다.
하지만 3~4개월마다 집에서 약만 잘 복용하면 괜찮다는 정신과 의사 소견으로 퇴원을 지속적으로 권고 받아 퇴원할 수밖에 없었고, A씨는 약 복용을 거부해 증세가 나날이 악화됐다.
지난 2019년부터는 A씨의 위협이 더욱 심해져 아버지인 B씨는 아들과 함께 자지도 못하고, 인근에 위치한 부모님의 집에서 잠을 자고 출근했으며, 본인도 두려우면서도 아들을 돌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A씨를 찾아 음식과 생활비를 챙겨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A씨의 병세는 더욱 악화 됐고, B씨가 집을 찾으면 물건을 부수거나 흉기로 살해 위협을 가했다.
결국 사건 발생 한 달 전인 4월 5일, B씨는 인근 C파출소를 직접 찾아 경찰들과 A씨를 정신병원에 입원하려 했으나, 인력 부족 등의 문제로 해당 C파출소가 출동이 불가하다며 거리가 떨어져 있는 D파출소에 지원요청을 했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D파출소 경찰들이 출동을 했다.
경찰이 출동한 후에도 아들 A씨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119 구급대를 불러 문을 강제로 개방하자 A씨는 "아버지와 잠시 싸웠을 뿐"이라고 침착하게 답하며 인권문제를 이유로 강제로 입원을 진행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작성자에 따르면, 집안에는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낙서가 사방에 적혀있었고, 집안 가구들을 까만 천으로 가리는 등 조금만 둘러봐도 아들의 상태와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지만 경찰은 "위협당할 때 112에 신고해라, 눈으로 봐야 강제로 입원이 가능하다"라고 이야기하며, 방법이 없다며 돌아갔다.
해당 청원인은 "살해 사건의 한 달 전, 저희가 신고를 해서 이미 '아들이 조현병을 앓고 있는지' 알고 있는 A파출소에 5명이라는 경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상황을 자세히 모르는 B파출소에 지원요청을 했을까요? 그에 앞서, 직계 가족이 당사자(삼촌)가 살해 위협을 당했으며 집안 곳곳에는 아들의 일본 칼과 망치 등의 흉기가 있었음에도 왜 경찰은 계속해서 '인권문제'라며 입원을 시킬 수 없다고 했을까요?"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나아가 "자신의 아버지(삼촌)를 흉기로 내리쳐 두개골과 갈비뼈를 골절시키고 베란다 밖으로 던진 후, 아버지(삼촌) 차량으로 도주한 아들은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형이 10년 내외라고 합니다. 하지만 존속살인에 보호자도 없는 상태에서 출소 후 남은 가족들과 선량한 시민의 안전은 이제 누가 책임져준단 말입니까? 경찰이 그토록 말한 인권에 저희 삼촌의 인권은 없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경찰을 향한 '도와달라, 살려달라'는 저희 삼촌은 구조요청은 결국 외면당하고 말았습니다"라며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민청원을 한다고 밝혔다.
◆ 작동하지 않는 정신질환자 입원치료시스템…급성기 치료 놓쳐 범죄 이어져
지난 14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이하 대신정)는 2018년 12월 故임세원 교수, 2019년 4월 진주방화사건 후 이 같은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있었음에도 또 다시 반복되는 현실에 참담함을 표하며 긴급 언론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동우 대신정 정책연구소장은 "일련의 비극이 발생했을 때 우리 대신정은 그 해결책으로써 국가가 중증정신질환자에게 치료의 길로 인도하고, 가족의 부담을 경감할 수 있도록 하는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촉구한 바 있다.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실행 의지를 갖고 해결책을 실제로 추진해 갈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동우 소장이 밝힌대로, 대신정은 일찍부터 일련의 중증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 사건의 대책으로 '중증정신질환자 국가책임제'를 제안한 바 있다.
그 핵심은 중증정신질환자가 급성기 상태에서 치료가 중단돼, 증상 악화로 강력범죄 등을 저지르지 않도록 국가가 개입해 입원 및 치료 필요성 여부를 결정하고 이를 책임진다는 것이다.
백종우 대신정 법제이사는 일련의 조현병 환자에 의한 살인, 방화 사건들의 공통점이 모두 급성기 치료 단계에서 치료가 중단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증정신질환자의 경우 병식이 없어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기는 어렵기 때문에 가족 등 보호의무자의 또는 지방자치단체 혹은 경찰에 의한 강제 입원을 통한 치료가 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요건이 '자·타해 위험'과 '치료 필요성'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해 까다롭고, 경찰이 그 입원 필요성 여부를 판단해 실제로 입원시키는 과정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실제 이행률은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의 비자의입원율은 2014년 70.2%에서 매년 감소 추세로 2018년에는 31.5%로 감소했는데, 2018년 전체 비자의입원자 2만 3,791명 중 행정입원은 2,746명으로 11%, 응급입원은 65명으로 0.2%에 불과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백종우 교수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이후 개인의 인권 문제가 강조되면서 비자의입원이 줄어 들었다.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데, 입원이 꼭 필요한 사람이 제때 제대로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해마다 우리나라 전체 정신병원 입원환자 수가 감소추세로 2014년 전체 8만 1,625명에서 2018년에는 7만 5,626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아버지 B씨는 한 달 전 경찰에 아들 A씨의 심각한 상태를 알렸고, 그때라도 경찰이 필요한 조치를 통해 A씨를 응급입원시켰다면, 이 같은 비극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경찰은 인력 부족의 문제 및 응급 입원시킬 병실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24시간 출동을 기피하고 있고, 정신건강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환자에 대한 심각성을 판단해 강제 입원을 결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A씨 역시 경찰 앞에서는 침착한 태도로 ‘인권’ 등을 운운하며 강제 입원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고, 경찰은 응급입원 보호조치 업무매뉴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강제입원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처럼 치료가 필요한 정실진환자들이 제때 입원하기 어려운 시스템으로 급성기 중증정신질환자들의 병세는 악화되고, 이것이 자·타해 위협으로 발현돼 지역사회를 위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백종우 교수는 시스템의 부재로 "아픈 사람들이 나쁜 사람으로 몰리는 상황이 되고 있다"며, 국가가 중증정신질환자를 책임지고 치료할 수 있도록, 현재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응급입원 및 행정입원 시스템의 점검을 촉구하며, 이 과정에서 국가의 개입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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