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잘 만든 치료제 하나로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의 흐름이 바뀌었다.
게다가 의사들이 이 치료제를 주목하면서 국내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022년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은 한국다이이찌산쿄 '엔허투(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의 이야기다.
엔허투는 항체 약물 접합체(Antibody Drug Conjugate, ADC)로 표적에 대한 선택성과 약물의 사멸 활성을 이용해 약물이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한다. 이를 통해 치료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최소화했다.
엔허투는 이전에 두 개 이상의 항 HER2 기반의 요법을 투여 받은 절제 불가능한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의 치료에 첫 허가됐다.
이후 2022년 12월 한 가지 이상의 항 HER2 기반의 요법을 투여 받은 절제 불가능한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의 치료제로 적응증이 확대됐다.
엔허투의 허가가 왜 국내에서 큰 관심을 끌었을까. 바로 '재발 위험'이 높은 HER2 유방암에서 엔허투가 확실한 데이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갑상선암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여성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암은 '유방암'이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유방암은 2007년 이후 계속해서 국내 여성암 발병률 1위 자리를 지켜왔다.
국가 유방 검진 활성화로 환자 대부분이 조기(0~2기)에 암을 발견하고 5년 생존율이 90% 이상으로 높아지는 등의 변화도 있었지만, 여전히 유방암은 치명적인 중증질환이다. 조기에 발견해 수술 치료를 받고 암을 제거한 환자들도 재발의 공포를 평생 안고 살아간다.
유방암은 단일질환으로 분류하기 어려울 정도로 종양 특성에 따라 치료 접근법이 다양해진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유방암은 HER2 수용체 양성 여부와 호르몬 수용체 양성 여부를 기준으로 치료의 흐름이 나뉜다.
이 가운데 HER2 양성은 전체 유방암 환자의 약 20~25%에서 발견될 정도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 유방암은 암 세포의 표면에 성장 촉진 신호를 전달하는 HER2가 비정상적으로 과발현된 형태다.
이 HER2 양성 유방암은 세포 증식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일반적인 유방암 보다 재발 위험이 높다. 현행 수술 후 보조요법 치료에도 불구하고 환자 4명 중 1명 이상이 10년 내에 재발을 경험하고 있어, 아직까지 미충족된 의학적 요구가 큰 치료 분야다.
이 맥락에서 엔허투는 효과적으로 HER 양성 유방암의 재발 치료를 담당한다.
DESTINY-Breast03 임상시험에서 엔허투는 이전에 한 가지 이상의 항 HER2요법을 투여 받은 절제 불가능한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무진행 생존기간 중앙값(mPFS) 28.8개월을 기록했다. 트라스투주맙엠탄신(T-DM1)은 6.8개월로 무려 22개월이나 차이가 났다.
주요 2차 평가 변수인 전체생존기간(OS)은 엔허투 군이 T-DM1 투여군에 비해 사망위험을 36% 감소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기반으로 현재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와 한국유방암학회 가이드라인 모두 HER2 양성 2차 치료로 엔허투를 권고하고 있다.
◆ HER2 유방암 치료로 얻는 사회경제적 편익 연구
엔허투의 등장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HER2 유방암 치료로 얻는 사회경제적 편익 연구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지난 6월 30일, 약학회지(67권 3호)에는 '건강보험청구자료를 이용한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조기 사망에 따른 간접적 질병 부담' 연구가 게재됐다.
해당 연구는 성균관대학교 등 연구팀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으로 인해 사망한 3576명의 건강보험청구자료를 토대로 이들의 조기 사망에 따른 수명과 생산성 손실을 잠재수명손실연수(YPLL), 잠재생산수명손실연수(YPPLL), 총 생산성손실비용(CPL)을 추산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연령군별 사망자 수는 20대에는 1%가량의 낮은 비율을 보였으나, 연령이 높아질수록 사망자 수가 점차 증가해 40~50대 시기에 가장 높았으며 60대 이후부터는 다시 감소했다.
10년간 총 3576건의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 조기 사망으로 인해 발생한 총 잠재수명손실연수(YPLL)는 12만 8605년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사망 환자 1명당 평균 약 36년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 동안 발생한 총 잠재생산수명손실연수(YPPLL)는 5만 5608년으로 나타났으며, 사망 환자 1명당 평균 약 15.6년에 해당한다.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으로 인한 10년간의 생산성손실비용(CPL)은 인당 3.2억 원으로 총 1조 1388억 원에 달했다. 경제 활동이 활발한 40세~49세의 생산성손실비용(CPL)은 5134억 원으로, 연령군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지난 8월 31일 약학회지(67권 4호)에는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서 트라스투주맙-데룩스테칸 관련 사회경제적 편익 분석' 연구가 게재됐다.
해당 연구는 성균관대학교와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이 2007년 1월부터 2021년 5월까지 캐싸일라(트라스투주맙-엠탄신)를 처방받은 2차 이상의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 2212명의 건강보험 청구자료를 기반으로 시행됐다.
연구팀은 엔허투 사용 시의 무진행 생존기간 중앙값(mPFS)과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편익을 추산했다.
연구에 포함된 2212명 환자의 연령군은 20-29세 97명(4.4%), 30-39세 422명(19.1%), 40-49세 836명(37.8%) 50-59세 623명(28.2%), 60세 이상 234명(10.6%)으로, 약 3명 중 2명은 50세 이하였다.
국내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 건강보험 청구자료에 DESTINY-Breast03 임상 데이터를 대입해 무진행 생존기간 중앙값(mPFS)을 연령군별로 추정한 결과, 캐싸일라는 최소 7.1개월(65세 이상)에서 최대 12.5개월(30대)이었으며 엔허투는 최소 23.4개월(65세 이상)에서 최대 41.1개월(30대)로 모든 연령에서 3배 이상 연장된 것으로 산출됐다.
연구팀은 엔허투 사용에 따른 사회경제적 편익을 추산하기 위해 각 연령군에서 산출된 연장된 무진행 생존기간을 유급노동시간(paid work hour) 및 무급노동시간(unpaid work hour)으로 변환했다.
그 결과 엔허투의 기존 약제 대비 추가적으로 연장된 무진행 생존기간이 불러올 수 있는 사회경제적 편익은 총 2614억 원으로, 환자 1인당 평균 1억 1800만 원으로 추정됐다.
서구와 달리 국내 유방암 환자들의 대부분이 경제 활동 인구에 속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생존기간을 현저히 연장시키는 치료제의 도입은 환자 개인의 삶의 질 향상 뿐만 아니라 국가재정부담 및 사회경제적인 부담까지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 보여진다.
연구팀은 "새로이 개발된 엔허투가 가지고 있는 임상적 이점을 넘어 사회경제적 편익을 분석해 그 가치를 조명했다. 향후 본 연구 결과는 한정된 재정을 기반으로 의료자원의 배분 관련 의사결정 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아직 엔허투는 급여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
엔허투는 작년 국내 허가 심사를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올라온 뒤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올해 2월엔 건강보험을 촉구하는 청원이 게시된 후 사흘 만에 5만 명의 동의를 달성했다.
지난 3월 제2차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는 엔허투의 급여기준 설정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한국다이이찌산쿄 측에 추가 자료 보완을 요청하며 재논의를 결정했다.
한국다이이찌산쿄는 엔허투의 빠른 급여 통과를 위해 보완 자료를 신속하게 준비했고, 추가적 위험분담제(RSA)까지 고려하는 등 재정 부담 절감을 위해 다각도의 방안을 마련했다. 엔허투는 약가도 전 세계 최저가 수준으로 제시(23년 4월 기준)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엔허투는 지난 5월 제3차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이전에 한 개 이상의 항 HER2 기반의 요법을 투여 받은 절제 불가능한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의 치료'에 급여기준이 설정됐다.
현재 한국다이이찌산쿄는 경제성평가 소위원회에 여러 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고,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상정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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