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필수의료 붕괴도 의대정원 대립도 '국민 등'만 터진다

조후현 기자 (joecho@medipana.com)2023-11-27 06:00

[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필수의료 붕괴에서 출발한 의대정원 확대 논의가 목적을 집어삼킨 채 의료계와 정부 사이 강대강 대치로 내달리고 있다.

필수의료 붕괴로 인한 피해를 입던 국민은 의정 갈등에 의한 피해까지 우려하게 된 모양새다.

갈등이 고조된 것은 의대정원 확대 수요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다. 내년 최소 2151명에서 2030년 최대 3953명까지 자극적인 숫자가 연일 조명되며 의료계 내부 반발이 격화했다.

결국 대한의사협회는 9.4 의정합의 정부측 파기를 강조하며 비대위를 꾸려 총파업을 포함한 투쟁을 준비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반면 복지부는 '국민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한 총파업을 언급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는 메시지로 압박을 가했다.

아울러 의대정원 확대 문제는 의협뿐 아니라 환자, 의료소비자 등 국민 생명·건강과 관련돼 있는 국가 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다양한 의료 수요자 의견을 수렴해 필수의료 확충과 제도 개선을 착실히 추진해나가겠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의협이 9.4 의정합의를 언급하며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힌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논의 병행을 지속하겠다는 의미다.

강대강 대치와 이로 인한 국민 불편이 눈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양측 대응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의협은 의대정원 확대에 대해 무조건 반대 입장을 고수했지만 최근 대통령실과 정부, 정치권까지 압박 수위가 심상치 않자 적극 협상으로 기조를 바꾸며 진일보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당시 의료계 내부에선 이런 분위기에서 '0명'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할 수 있겠냐는 의견도 존재했다.

그러나 이번 수요조사 결과 발표는 국민 이목이 복지부 입에 쏠린 상황에서 '수천 명대 증원이 이뤄질 수 있다'는 뉘앙스로 작용하기 충분했다. 의료계 역시 같은 해석을 하고 강경 투쟁이라는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게 된 것.

정부가 압박 상황을 활용하지 못한 채 9.4 의정합의라는 명분을 기반으로 강경 투쟁에 나서도록 만든 셈이다.

반대로 의료계 역시 필수의료 붕괴로 인한 국민 불편은 분명히 존재하는 가운데, 대안 제시가 없다는 점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라는 양적 정책과 필수의료 환경 마련이라는 질적 정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의료계는 적정 보상과 법적 부담 완화가 이뤄지면 현장을 떠난 필수의료 인력이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의료계 주장대로 의대정원 확대에 따른 필수의료 낙수효과는 근거 없는 기대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적정 보상이나 법적 부담 완화라는 환경 마련이 필수의료 인력 확충으로 이어지리란 것도 기대에 불과하다. 재정의 한계는 물론, 필수의료가 한 번 무너진 상황에서 의료에 유입될 미래세대 가치관 변화 등 모든 변수가 고려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은 의대정원 확대에 우호적인 상황에서 정부 정책을 반대하려면 의료계도 전문가 단체로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의료계도 정부도 의대정원 확대 효과는 빨라도 8년 뒤에나 나타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무너지는 필수의료를 당장 일으킬 정책은 아닌 셈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두고 정부는 강행하고 의료계는 결사 저지에 나섰다. 해법 찾기가 늦어질수록 정부와 의료계 모두 국민 신뢰와는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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