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우리나라는 국민의료비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2005년부터 역대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기 위해 급여 범위를 적극적으로 확대해 왔다.
그러나 비급여가 늘어나는 것을 통제하지 못해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지난 20년 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대한 한계는 재정 지속성도 위협하고 있다.
환자 본인부담 증가와 비급여 의료비 문제는 비단 의료비 급증,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약화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득계층별 의료에 대한 접근성과 사망률, 환자경험 등 의료 결과의 격차로도 이어져 불평등 문제를 야기한다.
보장성을 강화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제도의 운영을 위해서는 '지불제도'가 과도하게 행위별 수가에 집중돼 있는 것을 완화해야 한다.
따라서 대안적 지불제도로써 '신포괄지불제도'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한 개편이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신포괄수가제도는 기존 포괄수가제와 행위별수가제를 혼합한 지불제도다. 7개 질병군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포괄수가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체 입원환자에 대해서 포괄수가제를 적용하기 위해 고안됐다.
신포괄수가제는 의료자원의 효율적 사용과 적극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입원기간 동안 발생한 입원비, 처치 등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는 미리 정해진 포괄수가를 적용하고, 의사의 수술 및 시술에 대해서는 행위별 수가를 별도로 적용한다.
신포괄지불제는 효율성 측면의 행위별수가제의 과잉진료 문제와 포괄수가제의 과소 진료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
더불어 건강보험제도의 재정적 보장성 강화 유도, 적정한 진료를 통한 의료의 질 향상, 공급자 재정 위험도 보완을 통한 공급자 수용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런데 신포괄지불제도 시범사업은 2009년부터 5차례에 걸쳐 13년 동안 시범사업이 확대·시행돼 왔음에도 기존 행위별수가제를 대신할 대안으로 탈바꿈되기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이 탓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신포괄수가제의 개편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근 공개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신포괄지불제도 시범사업 효과평가 및 중장기 발전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신포괄지불제도 중장기 발전 방안으로 ▲정확한 보상 ▲의료 질과 효율성의 개선 ▲신포괄지불제도의 부작용 최소화 ▲비급여 감소와 건보 보장률 개선 ▲필수의료 접근성 보장 ▲진료 기능에 적합한 진료 등이 주요 과제로 꼽혔다.
의료기관의 환자의 진료비를 '정확하게 보상하는 것'은 좋은 지불제도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신포괄지불제도는 부정확한 행위별수가제를 바탕으로 질병군별 신포괄 수가를 산출하고 있다.
또한 신포괄 분류체계 질병군의 임상적 및 진료비의 동질성 요건이 정해져 있지 않고, 의료기술의 발전 등을 반영하기 위한 주기적인 개정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신포괄 분류체계 질병군 내에서 동반질환에 따라 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하는 CC class(complications/comorbidities class)의 정확도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
연구팀은 "향후 의료기관 유형별 및 지역별 질병군별 진료비에 기초한 조정계수가 개발돼야 보다 정확한 보상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의료 질과 효율성의 개선 면에서는 '지표를 손보는 것'이 우선이다.
기존 신포괄수가제의 정책 가산에는 의료의 질과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평가지표가 포함돼 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 의료 질 개선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핵심적인 결과지표로 기존 지표를 대체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예를 들어 통합간호등급, 환자안전관리체계 운영, 표준진료지침 운영 등으로 이뤄진 정책가산 지표는 명확히 어떤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인지 불명확하고, 결과 지표가 아니라 구조 지표라서 의료에 질에 미치는 영향력이 낮다.
연구팀은 "신포괄지불제도 자체가 효율성을 높이는 기전을 가지고 있지만, 효과가 있는 범위가 좁기 때문에 보다 거시적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유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연구팀은 외래 비용 전이를 방지하기 위해, 입원 전후의 외래 의료이용를 포함한 질병 에피소드 단위 진료비를 효율성 지표로 평가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행위별수가제 방식으로 진료비를 보상하는 비포괄진료비가 지나치게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기전도 필수적이다.
연구팀은 "의료기관 유형별 조정계수를 주기적으로 재산출 및 적용하는 체계를 확립한다면 의료기관이 기존에 효율화한 부분에 대해 보상을 하는 한편, 지속적으로 유인하는 기전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종합적으로 볼 때, 모든 지불제도는 그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포괄 지불제도의 부작용인 재입원, 외래비용전이, 상향코딩, 중환자 기피 등의 지표 값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정책 가산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연구팀은 경증환자를 선호하고 중증환자를 기피하는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질병군 내에서 동반질환을 고려한 정확한 중증도 분류체계를 개발하고 중환자 포괄수가를 정확하게 설정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신포괄지불제도의 '보장률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필수적인 의료행위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비급여로 분류돼 있는 것들을 포괄 진료비에 포함시키는 방안이 제안됐다.
그렇지만 행위별수가제에서 급여하지 않는 고가의 항암제 등은 주의가 요구된다. 재정적인 인센티브가 큰 항목을 급여 범위에 포함시킬 때는 급여기준을 명확히 해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이와 함께 비급여 진료비의 비중을 평가하고 이를 정책가산의 지표에 포함시킨다면, 비급여 진료비 증가를 억제하고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의 보장률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전망됐다.
'필수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과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우리나라 의료 정책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정책 과제다.
신포괄지불제도가 대안의 지불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의 진료행태를 변화시켜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환자 진료비 수준에서 가감산을 하거나 정책 가산과 같이 의료기관 수준에서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도입할 수 있다.
다만 환자 수준에서 진료비 가감산은 의료기관 수준의 재정적 인센티브에 비해 의료기관의 행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탓에 각 환자에서 가감산에 사용되는 기준이 정확해야 한다.
그럼에도 필수의료에 포함되는 환자인지 여부와 그 중 어떤 환자가 우선순위가 높은 환자인가를 정확하게 선별해내는 기준 마련은 쉽지 않다. 필수의료의 범주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고, 개별 환자의 중증도와 응급한 정도를 고려한 기준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정책가산을 활용한 기관 수준에서 재정적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접근 방법이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신포괄수가제가 발전하려면 참여 '의료기관의 대폭 확대'를 강조했다.
현 시범사업 참여 기관은 2009년 건강보험일산병원에서 20개 질병군을 대상으로 시작해 2022년 1월 기준 98개 민간·공공병원 대상으로 603개 질병군으로 확대됐다. 2군(일반2차급 병원) 32개로 가장 많고 3군(포괄2차급 병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3차급병원이 8개로 구성돼 있다.
연구팀은 "신포괄지불제도 대안의 지불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유형의 우리나라 병원급 의료기관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시범사업이 포괄하지 못하는 여러 유형의 병원이 있다. 이는 대표성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이 소수일 경우 중증환자의 질병군 환자, 동반질환의 중증도가 높은 환자의 수가 많지 않아 이들 환자군에 해당하는 질병군 분류와 산출된 수가의 신뢰도를 보장하기 어렵다.
연구팀은 정형외과병원, 산과병원, 소아청소년병원, 대장항문병원과 같은 주요 전문단과 병원을 시범사업에 추가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고 언급했다.
연구팀은 "신포괄지불제도가 대안의 지불제도로써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전체 병원의 30% 내외의 기관이 본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 급성기 일반병원을 기준으로 하면 적어도 160개 병원 정도가 참여할 경우 대안의 지불제도로써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므로 현 시범사업의 규모를 2배 정도로 확대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팀은 "참여 병원의 규모와 진료기능을 고려하면 일반병원 중 상급종합병원의 참여를 확대해야 향후 상급종합병원에 적용할 수 있는 지불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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