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로벌 시장 문 두드리는 렉라자·케이캡, 성공 신화 가시화
글로벌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던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지난해 유한양행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와 HK이노엔의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이 2023년 본격적인 문을 여는 모습을 보였다.
렉라자는 이미 2021년 1월 국내 허가를 받았지만, 여전히 후속 연구를 진행해왔다. 1차 치료 적응증 확대를 위해 유한양행이 임상시험을 지속했던 것은 물론 글로벌 판권을 가져간 얀센이 '리브리반트'와의 병용 임상시험을 진행했던 것.
이 같은 연구 성과가 올해 가시화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1차 치료 적응증의 경우 지난 6월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 내년부터는 보험급여가 적용될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리브리반트와의 병용은 글로벌 시장에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10월 2023 유럽종양학회(ESMO 2023)에서 경쟁약물인 아스트라제네카 '타그리소'와의 비교 임상시험인 MARIPOSA 연구의 데이터를 공개하면서다.
이 연구에서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의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은 23.7개월(95% CI, 19.1-27.7)로 타그리소 PFS(16.6개월) 대비 약 7.1개월 연장하는 등 뛰어난 결과를 보였고, 이에 표준요법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뒤따르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렉라자가 치료 성과에 대한 가능성으로 기대를 모았다면, 케이캡은 수출 실적에 있어 기대감을 더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8년 국내 허가를 받은 케이캡은 출시 이후 빠르게 실적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에는 1500억 원 수준의 처방실적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국내 시장에서의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케이캡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영역을 확대하는 중으로, 중국과 몽골, 필리핀, 멕시코,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페루 등 7개국에서 허가를 완료했다. 뿐만 아니라 캐나다를 비롯한 해외 35개국에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 향후 수출을 통한 본격적인 매출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수출실적은 42억 원에 불과하지만, 해외 시장에서의 허가 및 출시가 늘어나면서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HK이노엔은 2028년까지 총 100개국에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국산 신약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 후보물질 라이선스 아웃부터 희귀의약품 FDA 진출까지 쾌거
2023년에도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신약후보물질 라이선스 아웃 및 FDA를 비롯한 해외 진출 쾌거가 이어졌다.
지난 11월 6일 종근당은 노바티스와 저분자 화합물질 히스톤탈아세틸화효소6(HDAC6) 억제제 'CKD-510'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CKD-510은 지난 2020년 FDA로부터 희귀질환 샤르코 마리 투스(Charcot-Marie-Tooth, CMT) 치료제로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은 데 이어, 지난 2022년에는 같은 적응증의 유럽 임상 1상을 완료 한 바 있다.
더불어 이번 계약에 따라 종근당은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 8000만달러(약 1061억원)을 수령하고, 이후 개발·허가 단계 마일스톤 12억2500만달러(약 1조6241억원) 및 판매 로열티를 받는다.
지난 11월 6일 오름테라퓨틱스 역시 글로벌 제약사 BMS와 급성골수성백혈병(Acute Myeloid Leukemia, AML) 치료제 후보물질 ‘ORM-6151’의 권리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오름테라퓨틱스의 첫 번째 글로벌 기술이전 계약으로서, 해당 물질은 현재 FDA로부터 임상 1상 시험을 승인받은 상태다.
앞선 계약에 따라 BMS는 오름테라퓨틱스에 계약금 1억달러(약 1300억원)을 지급하고, 이후 추가 마일스톤을 포함해 오름테라퓨틱스는 총 1억8000만달러를 확보하게 될 예정이다.
그 외에도 2023년 바이오오케스트라를 시작으로 SK바이오팜과 지아이이노베이션 등의 기술이전이 이어졌으며, 지난 9월 GC녹십자의 신약후보물질 혈전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TTP) 치료제 후보물질 ‘GC1126A’가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ODD)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더해 지난 9월 GC녹십자는 헌터라제 ICV의 러시아 품목허가를 신청했다고 공시했다. 이는 헌터증후군 환자 6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자 주도 1/2상 임상시험 결과에 따른 것으로, 헌터라제 ICV는 기존 헌터라제와 달리 머리에 디바이스를 삽입해 약물을 뇌실에 직접 투여하는 제제다.
아울러 지난 11월에는 기존 헌터라제가 식약처로부터 국내 정식 허가를 획득하게 되면서, 차후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진출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3. 계속되는 '약가 인하' 기조에 제약·바이오 한파 불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면서 더 많은 재정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를 위한 정부의 약가 인하 기조는 올해에도 계속됐다.
우리 정부는 1999년 실거래가 상환제도를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2006년 선별등재제도 및 사용량-약가 연동제(PVA)를 도입하며 현재 약가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2012년에는 약가 일괄인하를 통해 동일성분 동일약가제도라는 현재의 약가제도를 확립했다.
이후 2016년부터 2년 주기의 의약품 실거래가 인하제도를 도입했고, 2020년에는 자체 생물학적동등성시험 진행 여부와 DMF 등록 원료의약품 사용 등의 충족여부에 따라 약가를 다르게 책정하는 요건차등제, 20개 이상 등재 시 계단식으로 약가를 인하하는 제도를 시행해 신제품에 적용한 바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올해 이후 해외약가 참조제와 기등재 약제의 요건충족여부에 따른 재평가, 사용량-약가연동협상 개정,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 개선, 급여 적정성 재평가 등이 예고되면서 제약업계의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등재된 약가를 인하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 향후 개발된 신약 및 개량신약 등재약가까지 인하함에 따라 미래 수익률 감소가 명확하다. 따라서 신약·개량신약 등의 개발에 들어가는 연구개발비는 온전히 자체 부담해야 하는 제약사 입장에서는 R&D에 대한 투자 위축이 불가피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익률 하락으로 인해 의약품 자급률 저하로 이어지면서 의약품 공급 부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4. '시작은 했지만'…지지부진한 정부 지원정책에 속앓이
지난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산업 활성화를 위해 대통령 직속의 통합 컨트롤 타워인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와 산업을 지원할 수 있는 메가펀드 조성을 요구했고,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이러한 업계의 요구를 공약에 반영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 혁신위원회 설치와 메가펀드 조성 모두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7월 총 5000억 원 규모의 K-바이오백신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나섰지만, 이후 운용사 자격을 반납하는 등 펀드 조성에 난항을 겪었다. 펀드 조성을 결정한 이후 1년이 지난 올해 7월 신규 운용사 선정 등을 논의하는 회의가 진행됐고, 10월에는 K-바이오백신 2호 펀드 운용사를 선정하는 등 뒤늦게 속도를 내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달 1호 펀드가 최소 결성액 1500억 원을 충족해 우선 결성 절차에 들어갔고, 2호 펀드까지 약 2600억 원에 대해 연내 투자 개시를 추진하고 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6개월여 만에 본격적인 펀드 운용이 시작된 셈이다.
양대 공약 중 하나였던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는 이보다 더 더딘 모습을 보였다. 올해 10월에야 대통령훈령 제461호로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의 설치·운영에 관한 규정'이 제정됐던 것.
이어 11월 첫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이마저도 지지부진한 상황으로, 현재까지 회의는 열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결국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은 올해에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됐다.
5. 셀트리온 그룹, 계열사 합병계획 발표…글로벌 경쟁 대응 목적
2023년 하반기 셀트리온 그룹은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계열사 합병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8월 셀트리온은 온라인 기자 간담회를 통해 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 합병 개요와 그에 따른 기대 효과, 향후 그룹 비전 및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간담회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직접 진행했으며, 서 회장은 이번 합병 배경에 대해 "글로벌 제약회사의 경쟁이 심해지고 있고, 자체적으로 신약 개발 및 직판을 할 수 있는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판단에 계열사들이 가진 플랫폼을 하나로 모으고자 합병을 결졍했다"고 전했다.
서 회장은 3사 합병의 첫 번째 단계에서 셀트리온이 셀트리온헬스케어를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며, 1차 합병 절차는 올해 안으로 정리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3사 합병이 아닌, 2사 합병부터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 절차상 애로사항과 복잡해지는 주주 간 이익 관계를 들었다.
더불어 합병 후 생기게 될 기대 효과로 서 회장은 ▲통합된 자원의 '선택과 집중'을 통한 대규모 투자 활용 ▲제품력에 원가경쟁력을 더한 시장 경쟁력 극대화 ▲투명성 제고를 통한 투자자의 신뢰 증가 등을 말했다.
서 회장에 따르면 1차 합병이 끝난 후 6개월 내에 합병 법인과 셀트리온 제약의 2차 합병이 진행될 예정이고, 이를 통해 ▲글로벌 시장을 타겟으로 한 제품 개발 및 매출 다변화 ▲ADC·펩타이드 등 고부가가치 포트폴리오 확장 ▲cGMP 설비를 활용한 CMO 사업 확대를 목표한다.
이후 같은 8월 서정진 회장은 셀트리온의 해외 NDR(Non-Deal Roadshow)에 앞서 국내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Q&A 세션을 진행했으며, 지난 10월 주주총회 합병 가결과 함께 램시마SC의 FDA 승인을 허가받았다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오는 18일부터 거래정지에 들어간 뒤, 오는 2024년 12일 셀트리온과 합병된 신주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며, 향후 2차 합병을 통해 2024년내 셀트리온의 통합 절차가 완료될 전망이다.
6. 문 열린 당뇨병 제네릭 시장, 전방위 경쟁 이어져
2023년 국내 제약시장의 최대 격전지로 당뇨병 치료제 제네릭 시장이 떠올랐다.
아스트라제네카의 SGLT-2 억제제 계열 당뇨병 치료제 '포시가'와 MSD의 DPP-4 억제제 계열 당뇨병 치료제 '자누비아'의 특허가 각각 4월과 9월 만료되면서 제네릭이 대거 등장했던 것이다.
실제로 다파글리플로진 성분 제네릭은 허가가 취하되지 않은 단일제만 190여 품목이 있으며, 시타글립틴 성분 제네릭은 240여 품목에 달한다.
특히 당뇨병 치료제의 계열간 병용 투여에 대한 보험급여 범위가 확대되면서 포시가와 자누비아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조합의 복합제가 쏟아져 나왔다.
다파글리플로진·시타글립틴 복합제는 총 90여 품목이 허가됐고, 이를 제외한 다파글리플로진 기반 2제 복합제가 140여 품목, 3제 복합제도 8개 품목이 허가를 받으며 치열한 모습을 보였다.
시타글립틴 기반 2제 복합제는 무려 410여 품목이나 됐으며, 시타글립틴·로베글리타존·메트포르민 조합의 3제 복합제도 4개 품목이 허가돼 경쟁을 펼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달 아스트라제네카가 국내 시장에서 포시가 단일제를 철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당뇨병 치료제 시장은 내년에도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7. 메디톡스, 보툴리눔 톡신 간접수출 승소…관련 업체 안도
메디톡스가 대전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을 상대로 제기한 품목허가취소 등 취소소송에서 승소를 거두며 보툴리눔 톡신 소송 관련 업체들이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7월 대전지방법원 제3행정부는 메디톡스가 대전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을 상대로 제기한 보툴리눔 톡신 허가취소 소송 1심 공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식약처가 보툴리눔 톡신 업계의 유통 과정인 간접수출을 법적으로 문제 삼으며 시작된 것으로서,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이를 대외무역관리규정에 근거를 둔 수출의 형태로 인정해온 바 있다.
그에 메디톡스와 휴젤을 비롯한 5개사가 해외 수출을 위해 생산된 수출용 의약품은 약사법에따른 국가출하승인 대상이 아님이 명백하다며 행정처분 취소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한 바 있다.
더불어 사측은 변론 과정에서 국내 무역상‧도매상 등에 제품을 넘기긴 했으나 이 제품들이 국내 병·의원에 유통되지 않았다고 강조했고, 식약처는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2년 8개월만에 내려진 이번 선고 해당 승소 판례는 휴젤을 포함한 다른 기업들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지난 1일 파마리서치바이오 역시 식약처를 상대로 승소를 거두는 결과를 불러왔다.
또한 재판부의 식약처의 재량권 남용·일탈이라는 언급을 고려했을 때, 이는 단순히 보툴리눔 톡신 간접수출 소송 외에도 빌베리건조엑스 급여삭제 취소 소송, 발사르탄 구상권 청구 소송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6월 태준제약의 빌베리 소송이 패소로 끝났던 반면, 11월 진행된 대원제약 등 총 34개사가 제기한 소송에서는 승소를 거두는 등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지난 11월 식약처가 메디톡스와의 소송 결과에 항소를 제기한 것과 더불어 오는 2024년에도 다수 소송이 계속되는 만큼, 향후 진행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8. 비만치료제로 주목받은 GLP-1, 글로벌 제약사 희비 갈라
올해는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수용체 작용제에 대한 주가가 높아진 한 해였다.
특히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는 GLP-1 제제 매출 확산을 통한 새 전기를 마련했다. 이 두 기업은 GLP-1 제제 상용화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회사들이다.
이에 릴리 시가총액은 지난 12일 종가 기준 5544억 달러를 기록하며, 존슨앤드존슨을 제치고 글로벌 제약사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등극했다.
마운자로가 올해 상반기에만 글로벌 매출 15억4800만 달러(약 2조689억원)를 기록,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다.
또한 릴리는 마운자로의 비만 치료 버전인 젭바운드를 최근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비만치료제 시장에 뛰어들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도 위고비의 선풍적인 인기로 인해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 상반기 매출은 20조9950억원으로 2022년 16조2427억원에서 30%나 증가한 것. 그 중 당뇨·비만치료제 매출은 19조3005억원으로 회사 실적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에 노보 노디스크의 기업가치도 크게 변모했다. 노보 노디스크 시총은 2022년 초 2516억 달러에서 수직상승해 한 때 4279억 달러를 기록, 유럽 시총 1위 기업으로 거듭났다.
현재는 3331억 달러로 다소 주춤하지만, 현재 개발 중인 경구용 위고비가 출시된다면 기업 가치는 다시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화이자는 글로벌 제약산업 캐시카우가 된 GLP-1 제제 개발에 도전했지만, 두 차례 임상시험에 실패하며 쓴 맛을 봤다. 이에 화이자 시총은 1617억 달러로 최근 1년간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한편 화이자 외에도 베링거인겔하임, 암젠, 로슈 등도 GLP-1 제제 후보물질 확보에 나선 만큼, GLP-1 제제에 대한 글로벌 개발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9. 비대면 진료 법제화 강력 반발한 약사회…일부 내홍도 겪어
코로나19 사태로 한시적 운영되던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 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약계는 약사법을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이뤄진 비대면 진료와 조제약 배송은 PCR, 진단키트 등 진단 도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특수한 상황이었으며, 평시 상황으로 비대면 방식 진료를 추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태도라는 주장이다.
약계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6월 1일부터 시행됐다. 비대면 진료는 ▲재진 ▲1차 의료기관 중심으로 하되, '약 배달(배송)'은 허용되지 않았다.
약계가 정부의 비대면 진료 정책 자체를 막지는 못했지만, 약 배송 부분 만큼은 대면투약 원칙을 고수하며 의약품 변질 우려나 오배송, 오남용, 처방전 위·변조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결코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처방 과정에서 활용되는 민간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국민 건강과 편의성 증진보다 수익창출을 앞세우거나, 의약품 유통 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는 부작용 등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비대면 진료 반대'가 약사회의 기본적인 입장이었지만, 정부의 정책 강행에 대응하는 움직임도 보였다.
약사회는 보건복지부에 고위험 비급여 의약품(탈모약, 여드름·주름완화약, 사후피임약) 리스트를 전달하거나, '약 배달'을 '재택 수령'이라는 용어로 순화해 사용할 것을 권고했고, 공적처방전달시스템(PPDS)을 개발해 일선 약국의 민간 비대면 진료 플랫폼 종속을 경계했다.
이러한 약사회의 대응에 약사사회 일각에서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PPDS 사용은 약계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모습으로, 최근 약사회 이사회에서도 관련 갈등이 표면 위로 나타나기도 했다. PPDS가 민간 플랫폼과 연동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은 결국 플랫폼 기업과 비대면 진료의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약사회 측은 PPDS가 미래 지향적 시스템이자 방어적 시스템으로 비대면 진료가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PPDS를 활용할 방침을 밝혔다.
한편, 지난 8월 31일자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계도기간이 종료됐다. 이후 비대면 진료 건수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모습이 나타나며 약계도 관련 이슈에서 숨을 돌리는 듯 싶었으나, 복지부가 12월 1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확대 방침을 발표, 15일 시행에 돌입하면서 약계에서 비대면 진료 이슈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0. 경기침체 지속에 메마른 돈…국내 제약바이오 구조조정·IPO 찬바람
계속된 경기침체 속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혹한기를 피해갈 순 없었다. 그간 국내 제약사들은 다국적제약사 한국법인과 달리 인력 감축에 보수적이었지만, 이 마저 옛말이 됐다.
올해 가장 먼저 구조조정을 단행한 곳은 경동제약이다. 경동제약은 올해 상반기 기존 영업인력을 대거 축소하고, CSO(영업·마케팅 대행업체) 활용 체제로 전환했다.
이어 일동제약도 지난 5월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일동이 내놓은 경영쇄신안은 임원 20% 이상 감축, 차장 이상 직원 대상으로는 희망퇴직(ERP)도 실시했다. 또 기존 임원들이 받던 급여 20%도 반납하도록 했다.
또한 유유제약과 GC녹십자도 조직 통폐합 등 구조조덩을 단행했다. 특히 GC녹십자는 11월 전체 조직의 10% 감축을 공식화하며, 상시 희망퇴직제도를 시행했다.
GC녹십자가 대대적인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건 회사 창립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회사 ERP 프로그램에 따르면 20년 이상 재직자에게는 1년치 급여를, 20년 미만 재직자에게는 6개월 치 급여를 보장한다. 이와 함께 국내 바이오 벤처 기업에 대한 신규 투자액도 메마른 한 해였다.
실제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 비상장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에 대한 상반기 투자액은 총 322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분의 1에도 못 미쳤다.
기존 IPO를 했던 바이오 기업들의 실적 하락과 투자자 자금회수 불확실성 증가로 인한 탓이다. 그런 만큼 단기간 바이오 투자 회복세가 나타나기까지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내년 미국·한국 선거로 인한 정치적 변수와 금리 문제, 부동산 PF 위기 등 직접적인 변수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장기화, 중국·필리핀 영토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으로 인한 변동성이 커지는 만큼 투심 회복에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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