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약속한 '정신건강 혁신'‥자살률 1위 '속 빈 강정'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구체적으로 정책 집행할지 의문‥'지속가능성' 염두해 두고 접근
'방안'의 핵심 과제 실행할 수 있는 세부적인 집행 계획과 사업 프로그램 갖춰져야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3-12-28 11:39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이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지난 12월 5일, '정신건강정책의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치료·요양에 편중된 현행 정신건강 정책 방향을 과감하게 돌리겠다는 방침이다.

앞으로 정부는 정신질환의 사후 수동적 관리를 넘어 사전 예방과 조기 치료, 회복 및 일상 복귀 지원에 초점을 맞추며 전 주기적으로 국민의 정신건강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응은 제각각이다.

정신질환자 가족 단체는 '방안'의 내용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어떻게 구체적으로 정책을 집행할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 정신 건강 전문가들은 환자 관리 체계가 잘 작동되지 않는 것을 놓고 객관적이고 현장 중심적인 분석이 기초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방안'이 구체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정부가 외친 혁신이 '속 빈 강정'이 되지 않으려면 '지속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의 실행을 위한 보완 과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정신건강정책 대전환, 예방부터 복귀까지'라는 비전을 선포하고 2027년까지 100만 명 심리상담 서비스 제공과 10년 내 자살률 50% 감축이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위해 ①일상적 마음 돌봄 체계 구축, ②정신응급대응 및 치료체계 재정비, ③온전한 회복을 위한 복지서비스 혁신, ④인식개선 및 정신건강정책 추진체계 정비 등 4대 전략 및 관련 핵심 과제를 선정했다.
 

그런데 국회입법조사처는 이 전략이 제대로 실행되려면 손볼 부분이 많다고 바라봤다.

전략①에는 국민 100만 명에 전문 심리상담 지원이 포함돼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신의료 및 치료서비스 이전에 정신건강검진이나 심리상담 서비스 등 조기 개입으로 중증 정신질환으로의 진행을 막는 예방 체계 구축이 필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국가정신건강포털'에서 자가진단을 통해 심리상담 서비스 수요자를 발굴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지역사회 고위험군을 추적하는 장치가 미약한 편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이만우 조사관은 "서비스 이용 신청도 스스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실제로 정신질환 고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해 개입하는 체계로 작동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라고 꼬집었다.

청년층(20~34세) 검진주기 단축(10년→2년)은 조기 개입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다만 우울증 외에 조현병, 조울증 등을 선별검사에 포함하는 것은 불필요한 '위양성(false positive)'만 증가시킬 가능성도 있으므로, 선별검사 자체가 비용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이다. 무엇보다 검사 결과, 위험군으로 판명됐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이들을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계하는 구체적인 수단이 명확하지 않다.

직장인 정신건강 관리 지원은 정부가 기업을 제재하기보다 EAP(근로자지원프로그램) 등 기업 스스로 고위험군을 보호하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게끔 인센티브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더불어 이 조사관은 "현재 자살 위험군이 100만 명 이상인 상황에서 내년에 100명 정도의 상담원을 확보한다고 해도 이 인원으로 얼마나 효율적일지 의문이다. 109 전화 상담으로 고위험군을 어떻게 분류해 대처할지 그 구체적 방법을 알 수 없다. 지역별, 연령별, 위험 수준에 따라 고위험군을 분류해 적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략②의 정신응급대응 강화에서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위기개입팀'이 실제적 역할을 하도록 처우 개선은 물론 지속적인 인력수급이 요구됐다.

급성기 정신질환자에게 정신의료 응급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병상 확보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입원 치료비의 차등화를 비롯해 대폭적인 수가 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

정신질환자 입원제도는 비자의 입원을 줄이고 가능한 환자 스스로 입원을 결정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동의를 얻었다.

그렇지만 행정입원을 사법입원으로 전환하는 것은 현행 사법체계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먼저 검토가 권고됐다.

이 조사관은 "정신질환자 인권 보호와 정신의료 응급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법입원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자연스럽게 대체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게다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부분이 마약 치료 경험이 없기 때문에 중독재활센터를 확대하고 상담센터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마약 환자는 알코올 환자와 다르게 법적 지원 혹은 처벌이 동반돼야 하므로, 기존 국공립병원을 충분히 활용해 치료 병상을 확보하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

전략③ 관련, 정신질환자 대상 복지서비스는 관련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이유로 그동안 '형식적' 사례 관리에 급급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의존해 왔다.

복지서비스 제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병원을 대신할 수 있는 지역사회 정신재활시설의 확보임에도 현재 일상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이 전국에 설치돼 있지 않다.

일상회복을 위한 고용·주거 지원은 '사회적 기업 육성법'상 취약계층에 중증 정신질환자를 포함해도 정신질환자를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 자체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울러 정신질환자 권리지원의 핵심은 일단 정신질환을 이유로 보험 가입에 제한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조사관은 "정신질환자만을 위한 보험 상품은 낙인과 또 다른 차별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차별의 여부와 수준에 대한 엄격한 심사를 통해 위험에 대한 손실을 정확히 반영한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정신건강 정책의 '혁신'은 정책 홍보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정책집행 방식을 바꿈으로써 정책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결국 '방안'의 핵심 과제들을 실행할 수 있는 세부적인 집행 계획과 사업 프로그램이 갖춰져야 안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조사관은 "방안이 중·장기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가에 대한 정책 집행의 '지속가능성' 분석이 필요하다. 집행 계획에 필요한 인력과 재원이 계속 투여될 수 있는가, 집행 과정에서 외부 정책 환경의 변화 또는 의도치 않은 영향이나 부작용을 제어할 수 있는가, 그리고 집행 결과 이해관계가 조정돼 정책의 수용성이 증대되고 국민 편익이 있는가 등을 세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기사
어때요?

실시간
빠른뉴스

당신이
읽은분야
주요기사

독자의견

작성자 비밀번호

0/200

메디파나 클릭 기사

독자들이 남긴 뉴스 댓글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