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응급실에서의 3시간

조해진 기자 (jhj@medipana.com)2024-09-09 11:50

[메디파나뉴스 = 조해진 기자] "해진아, 아빠가 이상해"

지난 7일 밤, 자취방에서 마감을 치고 있는데 엄마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가 갑자기 몸을 떠는데 멈추지 않는다고 설명을 하는 엄마와, 먼 거리에서 뭐하러 전화를 하냐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웬만큼 아프다고 딸한테 전화하는 부모님이 아닌데, 엄마의 두려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아빠 목소리로 미루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택시를 잡았다.

'119에 응급조치를 물어보면 될까. 그런데 119에 상담을 받아도 되는 건가? 응급실은 못 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택시를 타고 가면서도 당황하지 않으려 애쓰며,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어떻게 대응할 지 고민하는 데 집중하려 했다. 

상황을 확인 하기 전 판단으로는 응급실을 찾는다는 것은 차순위로 미뤘다. 지금은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기 쉽지 않은 상황일 테니. 최대한 집에서 조치할 수 있는 만큼 해보는 것이 나을 듯 싶었다. 

집으로 들어가 엄마의 말과 같았던 아빠의 상황을 확인하고, 119에 전화를 했다. 의료상담을 받을지, 구급차를 부를지 먼저 물어본 대원에게 의료상담을 선택했다. 아빠의 상황을 말로 설명했지만, 집에 체온계가 따로 구비돼 있지 않았던 터라 구체적 수치까지 확인은 어려웠다. 오한이냐고 묻는데 당황감을 숨길 순 없는지 어떤 상황을 오한이라고 말하는 건지 정확히 인지가 되지 않았다. 결국, 첫 의료상담에서는 상황을 보다가 내일 날이 밝으면 빨리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잠깐 사이에 아빠의 상태가 더 이상해진 것 같았다. 차를 타고 응급실을 가야하나 싶었지만, 아빠를 제외하고 가족 중 유일한 남성인 남동생이 부재중인 상황에서 엄마와 둘이 아파서 늘어져있는 아빠를 차로 태우고 가기는 쉽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시 119에 전화해 구급차를 불렀다.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아빠의 상태를 체크했다. 열이 40도였고, 산소포화도가 정상보다 떨어져있다고 했다. 구급차에 아빠를 옮겨 코에 산소공급기를 꽂은 구급대원은 "어느 병원으로 갈 지 확실하지 않다, 수용 가능 여부 확인한 후 가능한 응급실로 이송하겠다"고 했다. 

2차 병원 2곳에 연락을 했지만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2차 병원임에도 수용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니, 응급실을 못 가는 것인지 걱정이 됐지만, 다행히 3차 병원 응급실을 갈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몇 년 전, 할머니가 다치셔서 왔을 때 북적였던 것과 달리 구급차는 우리가 타고 온 것 1대 뿐이었다. 대기실도 한산했고, 접수를 마치고 따라 들어온 응급실 내부도 환자가 2~3명이 전부인 듯 했다. 늦은 시간이기 때문인지, 지금 의료공백 상황 때문인지는 불분명했다.

아빠는 발열로 인해 격리가 된 공간으로 들어갔고, 코로나 및 독감검사 실시와 함께 혈액검사부터 조영제를 넣고 촬영하는 CT까지 검사를 진행했다. 사람이 없다보니 검사도 빠르게 진행됐고, 결과도 빠르게 나왔다. 염증 수치가 약간 높은 것을 제외하고는 다 이상이 없는데, 왜 열이 40도까지 올랐는지 의사도 의문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아빠가 고열이 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해열주사를 맞은 효과가 금세 나타나 약 3시간 만에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담당 의사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만큼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항생제를 3일 처방해줬고, 퇴원 수속을 밟았다. 아빠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두 건의 상황이 벌어졌다. 무연고자인 듯 '무명'이라는 이름으로 접수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고, 바로 뒤이어 '내 딸'이라며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응급실에 접수를 한 여성이 잠시 후 "안 돼. 이렇게 가면 안 돼. 살려달라고"라는, 너무도 슬픈 절규가 들렸다. 고요해 보이는 응급실이었으나, 오히려 그래서 무게가 더 무거워 보였다. 

11시 40분쯤 응급실에 도착해 2시 40분까지 약 3시간이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너무도 많은 일이 벌어졌다. 응급실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빠르게 기운을 차린 아빠가 말했다. 운이 좋았다고. 아니었으면 뉴스에 나오는 뺑뺑이 환자가 나였을 수도 있을 것이고, 지금은 괜찮지만 그런 상황을 맞이했다면 결과는 또 모르는 일이었을 거라고.

응급현장에서는 응급환자를 가장 먼저 확인하고 이송하는 구급대원들, 밤샘도 마다 않고 진료와 간호, 검사를 하는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인들과 약을 조제·관리하는 약사들이 여전히 바삐 움직였다. 그리고 조금 더 크게 본다면, 환자에게 필요한 약을 제조하는 제약사와 필요한 의료기기를 제조하는 의료기기 기업, 그리고 이를 유통하는 의약품 유통사들까지. 

아빠의 상태가 좋아질 수 있었던 과정을 함께한 모든 직능에 감사했다. 위에 의약업계 직능 그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응급 상황에서 환자들이 느끼는 당황과 공포가 말할 수 없이 커질 것이라는 것을 새삼 체감했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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